‘공산당 활동한 독립영웅’ 홍범도… 육사 동상 이전, 원로 의견은
육군사관학교가 2018년 충무관(생도 학습 건물) 중앙 현관에 설치한 홍범도 장군 흉상을 독립기념관 등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여야 정치권은 물론 보수 진영 내에서도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소련공산당(1927년 입당)에서 활동했던 홍범도 장군의 경력이 이전 사유로 거론되자 여권 내부에서도 “인물의 공과(功過)를 고루 평가하지 못한 편협한 역사 인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8일 본지 인터뷰에 응한 군 원로와 학자들은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영웅인 홍범도 장군이 독립운동가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다만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기초한 국가관 확립’ 등 육사의 교육 목표를 상징하는 인물인지에 대해선 판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흉상 이전 결정이 여론 수렴 없이 추진되면서 애초 의도와 달리 국민적 갈등만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독립유공자 서훈심사위원장을 지낸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는 “육군사관학교의 설립 취지를 생각해 볼 때 홍범도 장군 흉상은 독립기념관에 이전하는 게 적절하다”고 했다. 신 전 교수는 “해방 이전 공산주의 활동은 독립유공자 제척 사유가 되지 않지만, 우선 ‘육사가 일본을 주적으로 하는 항일학교인가, 아니면 북한과 싸우는 학교인가’라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고 했다. 독립운동가는 독립기념관에서 예우하고 육사에는 육사 교육 목표와 직접 관련된 인물을 기리는 게 맞는다는 것이다. 현재 육사 교정에는 6·25 당시 육탄 공격으로 북한 자주포를 격파한 고(故) 심일 소령, 미8군 사령관을 지낸 밴 플리트 장군 동상, 안중근 의사 동상 등이 설치돼 있다.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육사 36기)은 “홍범도 장군에 대해 박정희, 문재인 정부가 서훈을 추서하고, 박근혜 정부는 손원일급 잠수함 7번함을 홍범도함으로 명명했듯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용 정신이 퇴색되면 안 된다”고 했다. 반(反)대한민국 활동을 하지 않은 이상 독립운동가의 인정 범위를 좁혀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 소장은 “체제를 수호하는 장교단을 양성하는 육사 교정에 홍범도 장군 흉상이 선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육사 교장을 지낸 박종선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장(육사 34기)은 “흉상 다섯 분의 독립 운동을 절대 부정하지 않는다”며 “다만 우리가 6·25 때 북한군 외 중공군, 소련군과도 맞서 싸웠는데 소비에트 복장을 한 홍 장군 흉상에 대해 육사 생도들이 ‘충성’하고 들어가는 게 좀 안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육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육사의 역사는 1946년 창설된 국방경비대사관학교에서 시작하지만, 군 내부에서는 국군의 뿌리를 독립군, 광복군에서 찾으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김명섭 연세대 교수는 “현재 (4년제) 육사는 미국 밴 플리트 장군의 지원으로 만든 것”이라며 “홍범도 장군 흉상을 교정에 세우는 일은 육사 출신들의 민주적 합의가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 흉상을 세우고 홍범도 장군에 대한 서훈 등급을 올릴 때 반대 의견이 있었는데, 일방적으로 추진됐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1921년 러시아 스보보드니(자유시)에서 독립군 간 주도권 다툼 과정에서 독립군끼리 교전을 벌인 ‘자유시 참변’ 당시 홍범도 장군이 러시아 공산 당국의 무장해제 지시를 거부한 독립군 재판에서 재판위원을 지낸 점을 들어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반병률 한국외대 교수는 “홍범도 장군은 자유시 참변에 참여하지 않았고, 재판위원 역시 쉽게 말해 이용당한 것으로, 땅을 치고 통곡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다.
흉상 이전 취지와 별개로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흉상 이전이 발표되고 여권과 보훈단체가 충돌하는 모습은 국민 통합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는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충분한 여론 수렴이 필요하다”고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군은 육사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5명의 흉상 중 홍범도 장군 흉상만 이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홍 장군 흉상도 이전을 검토 중이다. 국방부는 이와 관련, “홍범도 장군은 청산리 전투에서 같이 싸웠으나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만주로 돌아간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과는 다른 길을 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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