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의 늪에 빠진 20대, 연체율 전연령대서 가장 높아
“아파트 경비일과 대리 운전, 배달업까지 하루에 ‘스리잡’을 뛰었지만 빚을 갚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현재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A(25)씨는 카드론 등으로 빌린 4000만원을 갚기 위해 이리저리 뛰다 결국 법률구조공단과 서민금융진흥원의 도움을 받았다. 빚 갚는 기간을 늘려 월 상환액을 줄이는 채무 조정을 받은 것이다. A씨가 빚더미에 빠지게 된 계기는 2020년 군 전역 후 저금리를 기회라고 보고 코인과 주식 등을 빚투(빚내서 투자)한 것이었다. A씨는 “처음엔 수익률이 나쁘지 않았지만 점점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결국 원금까지 날리고 말았다”고 했다.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딛는 20대들이 빚의 굴레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빚투 실패, 청년 실업에 더해 실생활에선 처음으로 겪는 고금리라는 3가지 악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시작됐던 저금리 시대는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 등 주요 국 중앙은행들이 급격히 금리를 올린 지난해부터 고금리 시대로 바뀌어 가고 있다.
경제활동 경험이 적은 20대가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방 출신인 B(27)씨가 처음 대출을 받은 것은 부모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하던 대학교를 가기 위해 서울로 온 2017년이었다. B씨는 당시 카페 알바를 접고 생활비가 필요해 저축은행에서 10%대 금리로 400만원을 빌렸다. B씨는 “그때는 몇 달 치 생활비를 어렵지 않게 빌릴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며 “금융에 대해 아예 무지했기 때문에 겁 없이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려 썼던 것 같다”고 했다. B씨가 지방은행, 카드사, 인터넷뱅킹 등에서 빌린 돈은 총 2850만원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꼬박꼬박 갚는 건 쉽지 않았다.
이는 A씨나 B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20대들이 빚의 굴레에 빠져 있는 걸 보여주는 지표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올 상반기(1~6월)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채무조정)을 통해 빚을 탕감받은 20대는 5년 새 최대 수준으로 불어났다. 신복위 채무조정이 확정되면 이자는 전액 감면되고, 원금은 최대 70%(사회취약계층은 최대 90%) 탕감해준다. 국민의힘 최승재 의원이 신복위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이 제도를 통해 원금 감면이 확정된 20대는 4654명이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30% 늘었다. 특히 다른 연령대는 2021년을 정점으로 주는데 20대만 늘었다.
일부 20대들은 월 몇 천원 수준의 이자도 제때 내지 못해 연체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희곤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소액 생계비 대출을 받은 20대 중 이자를 못 낸 미납자 비율이 24.5%였다.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고, 같은 기간 전체 연령대 미납률(14.1%)의 2배에 가깝다. 주택 담보 대출 연체율도 모든 연령대에서 ‘20대 이하’가 가장 높았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실에 따르면, 2분기 말 기준 20대 이하 연령층의 주택 담보 대출 연체율은 0.44%로 집계됐다. 0.17~0.21%를 기록한 다른 연령층의 두 배를 뛰어넘었다.
일자리가 있으면 빚을 갚아나갈 길이 생긴다. 하지만 청년 일자리엔 먹구름이 끼어 있다. 통계청의 ‘2023년 1분기 임금 근로 일자리 동향’에 따르면, 20대 이하 일자리는 모든 연령대 중 2분기 연속으로 나 홀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또 졸업 이후에도 미취업 상태인 ‘청년 백수’가 126만명에 이른다.
한국은행은 지난 6월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2020년 이후 취급된 가계 대출 중 30대 이하 차주의 가계 대출 비중이 과거에 비해 높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들의 소득 기반이 다른 연령에 비해 취약한 만큼 2020년 이후 취급된 가계 대출의 연체율이 예상보다 높게 상승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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