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비리백화점 오명 쓴 은행

이은정 기자 2023. 8. 2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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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최대 1000억 대 횡령, ‘대구’ 고객 몰래 계좌개설, ‘국민’ 정보 활용 부당이득
고액 연봉에도 각종 비위…금감원·감사 제 역할 안해

얼마전 시중은행 입출금 통장을 인터넷으로 개설했다. 그런데 모바일뱅킹으로 하루 이체 금액이 30만 원에 불과한 한도계좌였다. 직장생활을 오래한 터라 재직증명서나 건강보험 득실자격 확인서를 첨부하면 일반계좌로 바로 전환될 줄 알았다. 영업점에서는 월급을 해당 계좌로 3개월 이상 넣어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지시로 대포통장을 막겠다며 2016년부터 ‘한도계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등 사기는 더 늘어났고 국민 불편만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업주부 학생 신규 창업자와 은퇴 고령자 등 소득 증빙이 어려운 고객은 거래 한도가 낮은 통장을 상당 기간 이용해야 한다. 한도계좌 해제 요건도 은행 입맛에 따라 제각각이다. 신용카드를 발급받거나 대출을 이용하면 바로 해제해주는 곳이 많다. 최근 국무조정실이 현행 규제를 개선하라고 했으나 얼마나 바뀔지는 의문이다. 과거에도 이런 권고는 여러 차례 있었다.

은행이 범죄를 막겠다고 한도계좌 제도를 운영하면서 정작 횡령 등 내부 범죄 행위는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은행에서 700억 원대 횡령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은행 직원 한 명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빼돌릴 수 있었는지 놀랐다. 금융당국이 여러 대책을 마련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일 년 만에 BNK경남은행에서 최대 1000억 원대의 횡령 사건이 벌어졌다. 간부급 직원 A씨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상환자금 등을 횡령해 유용했으나 15년이 지난 최근에야 적발됐다. 은행 측은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다 검찰의 금융거래 정보 조회 요청을 받고서야 수상함을 깨달았다.

지난해 우리은행 횡령 사건을 계기로 금융당국은 은행 내부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혁신 방안을 내놓았다. 금융당국은 특정 업무를 오랫동안 맡아온 직원들을 대상으로 순환근무나 명령휴가제 등 내부통제를 강화하라고 했으나 ‘소귀에 경 읽기’였다. A씨는 해당 업무를 15년간 맡았다. 경남은행은 지난해 자체 점검에서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금융당국의 주문이 전혀 먹히지 않은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경남은행 직원이 불법으로 차명 거래를 하다가 금융당국에 적발돼 제재를 받은 일도 있었다. 또 고객이 지점에 오지 않았는데도 계좌를 개설해주고 사모펀드도 불완전 판매를 하는 등 법규 위반 사례가 여럿 적발됐다.

안타깝게도 은행 금융사고가 굴비 엮듯이 이어지고 있다. 연내 시중은행 전환을 추진 중인 DGB대구은행에서는 직원들이 고객 몰래 문서를 위조해 1000여 개의 계좌를 개설한 사실이 적발됐다. 대구은행은 이 사실을 알고도 금융감독원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시중은행도 마찬가지다. KB국민은행의 증권업무 대행 업무를 맡은 직원들은 상장사 관련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00억 원대의 부당 이득을 챙기다 적발됐다. 해당 부서 직원들은 은행 내 다른 부서 직원들을 비롯해 본인들의 가족 친지 지인들에게도 관련 정보를 전달했다. 이는 도덕적 해이가 아닌 범죄 행위다.

금융의 본질은 신뢰다. 돈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는 믿음을 고객에게 줘야 할 은행원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 직원들의 비리가 적발된 은행들의 평균 연봉은 1억 원이 넘는다. 고금리에 시달리는 국민이 많은 데 횡령·부당이득을 취하려는 은행원들을 보면 직업 윤리가 땅에 떨어져 버렸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들을 제대로 감시해야 할 금융당국의 잘못도 크다. 사고가 터지고 나면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금융회사의 비리를 찾아내야 할 감사들은 전직 금감원 간부들이 독식하고 있다. 이들은 수억 원의 연봉을 받는다. 금융사고가 난 우리은행 국민은행 대구은행 경남은행 모두 전직 금감원 출신이 상임감사를 수년간 꿰차고 있으나 비리를 적발하지 못했다. 자신의 경험을 금융 회사 내부통제 강화에 활용해야 하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은행이 전관예우를 노리고 상임감사를 금융당국과의 소통 창구로 활용하기 위해 금감원 출신을 영입하는 것이다. 결국 금융계 이권 카르텔이 공고해지고 금융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은행권 비리가 잇따르자 금융당국은 지난 17일 17개 은행장을 소집해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위한 간담회’를 진행했다. 사고 예방을 위해 감독·검사 기능을 강화하고 금융사고에 책임 있는 은행 임직원에 대해 엄중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고경영자(CEO)까지 책임을 묻는 강력한 제도개선을 통해 철저한 내부통제 체계를 갖추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횡령범죄의 양형기준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제도를 강화한다 해도 은행원의 도덕적 의식이 낮다면 무용지물이다. 은행과 직원 스스로 뼈저린 반성과 노력으로 자정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이은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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