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과학영웅 신화
‘과학자가 장래 희망’이라는 어린 학생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세상이 보여주는 화려한 길보다 우주와 자연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과학 탐구의 매력에 이끌린 어린 마음이 너무 기특하고 고맙게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우수한 학생 중에는 간혹 노벨상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있다. 재능을 타고난 어린 스포츠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꿈꾸는 모습을 연상케 하지만 내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세속적 관점에서 보자면 기초과학자의 삶에는 폼나는 요소가 별로 없다. 부러움을 살만큼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이 눈치 볼 만큼의 권력도 없다. 대부분의 평범한 과학자들은 각자 자신의 연구를 일상처럼 묵묵히 지속할 뿐이다. 하지만 노벨상은 좀 다르게 보인다. 돈과 권력으로도 얻을 수 없는 명성이 생기고 인류 과학사에 기록될 위인이 된다. 최후의 승자로 살아남아 최고로 인정받는 금메달리스트나 열광하는 팬들에 둘러싸인 글로벌 아이돌의 인기에도 밀리지 않는 ‘짱’이 될 수 있다.
이렇게 과학 연구에서조차 타인에게 인정받고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동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대한민국은 K팝과 첨단 기술 분야에서는 세계적 인지도를 높이고 있지만, 과학 분야에서만큼은 여전히 노벨상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과학영웅’을 애타게 기다리며 과학사도 삼국지나 신화처럼 영웅들의 활약상을 중심으로 읽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탁월한 지략을 지닌 제갈량이나 괴력의 헤라클레스같이 비범한 능력을 지닌 ‘과학영웅’들이 기존 이론에 집착하는 보수적 과학자집단을 무찌르며 ‘과학혁명’을 성공시키는 신화. 혹은 고독한 영웅의 박해나 순교 후, 군중들이 직접 나서 과학 메시아의 명예를 복원하는 반전의 서사를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자들은 한결같이 상을 목표로 연구하지는 않았다고 회고한다. 성급한 발표로 대중적 관심을 끌거나 인정 결핍의 욕망을 채우는 일보다 그들이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연구 결과의 재현 검증과 논리적 견고함이었다. 과학은 예술작품 같은 개인적 업적의 측면보다 후대에 물려줄 인류의 지적 유산으로서의 공용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과학은 비행기다. 엔진이 만들어져도 200만 개의 부품과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안정적 비행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검증과 논의 단계가 필요하다. 따라서 과학은 새로운 학설에 대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오류의 가능성과 자칫 간과했을지도 모를 논리의 빈틈을 찾아야 한다. 단 하나의 결함으로도 비행기는 추락할 수 있다. 엔진만으로는 하늘을 날 수 없다.
또한 과학은 미완성의 석조 건물이기도 하다. 뛰어난 과학자에 의해 기둥이 세워지더라도 벽과 천정까지 촘촘하게 돌을 쌓아 하나의 건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수많은 과학자의 공헌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하늘을 향해 치솟은 과학첨탑은 개인의 영웅담이 아닌 공동체의 역사로 읽혀야 한다. 우리 사회는 자라나는 과학 새싹들에게 공동체의 가치보다 영웅의 신화만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한때 영미권 대학생의 청춘 지침서였던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마지막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자신을 속박해 왔던 가정 종교 국가의 다양한 편견을 깨달은 후 사제의 길 대신 예술가의 삶을 선택하는 장면은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자신만의 신화를 꿈꿀 수 있는 용기를 제공했다. 하지만 주인공 이름의 모티브인 ‘다이달로스’는 조카의 재능마저 질투해 그를 살해하고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급조한 날개로 인해 자기 아들 ‘이카루스’마저 추락사하게 만들었다.
“과학이 재미있고 좋아요. 그래서 과학을 계속하고 싶고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며칠 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강연을 열심히 듣던 한 아이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던 순간 마음속으로 해주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유명한 과학자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 대신 견고한 벽돌 같은 진정한 과학자가 되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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