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종이 학과 거북의 기적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중환자 집중치료실에 날카로운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린다.
1000번을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어머니의 간절함과 정성이 담긴 3000마리의 학과 거북에게 그 이야기는 한낱 비과학적인 세속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종이를 접는 행위이든, 장독대 '정화수'에 기원하는 행위이든,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희망과 기적을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면 그것은 '성물(聖物)'이지 않을까? '더 열심히 살겠다'는 환자의 말에 그동안 힘들었던 모든 일들이 한순간에 행복으로 바뀌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환자 집중치료실에 날카로운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린다. 공기가 얼어붙는 듯한 차가운 긴장감이 순식간에 주변을 에워싼다. 모든 의료진의 시선은 1주일 전에 심장수술을 받았던 환자에게 향했다. “삐삐삐삐삐~~~뚜우~~!” 그의 심전도가 마구 요동을 치다가 갑자기 평평하게 일직선으로 변했다. 코드블루(Code blue)!. 심장이 멎어버린 초응급 상황이다. 지체 없이 달려온 의료진과 심폐소생술을 시행했고, 다행히 환자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번이 벌써 3번째 심장정지…. 살아날 수 있을까?
지난 5월, 체중 100㎏의 건장한 34세 젊은이가 응급실에 실려왔다. 도착하자마자 격렬한 경련과 함께 심장정지가 발생했다. 심폐소생술 후 겨우 회복되었으나 그의 상태는 매우 위중했다. 응급검사 결과 ‘폐동맥색전증’으로 진단되었다. 과거 협심증으로 진단받았으나 환자는 투약을 임의로 중단했고, 오랜 시간을 앉아서 작업하던 중 생긴 다리 정맥의 혈전이 혈류를 타고 심장으로 이동하여 폐동맥을 막아버린 것으로 추정되었다. 비행기의 일반석에서 좁고 불편하게 장시간을 여행하는 경우 같은 원리로 사망에 이르는 ‘이코노미클래스증후군(Economy Class Syndrome)’으로 불리기도 하는 질병이다.
환자의 좌우측 폐동맥은 혈전으로 거의 완전히 막혀버렸고, 혈액을 뿜어내지 못하는 우측 심장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빵빵하게 확장되어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최소한의 산소를 공급받지 못한 뇌와 심장은 결국 그 기능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폐와 심장의 역할을 대신해 주는 에크모(ECMO)를 서둘러 삽입하고 응급심장수술을 진행했다. 심장을 열어 혈전은 성공적으로 제거했지만 이미 늘어나버린 심장은 너무 약해졌고, 여러 장기(폐 간 신장 등)의 기능이 함께 나빠지는 다발성 장기부전이 진행되었다. 이제부터 중환자 집중치료의 시작이다.
“○○어머니, 이제 그만 집에 가서 좀 쉬세요. 다른 변화가 있으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자신이 곁에 없어서 아이가 나빠졌다는 자책으로 환자의 어머니는 오늘도 보호자 대기실 의자에서 불편하게 밤을 지새울 모양이다. 벌써 몇 주 동안 의료진의 권유에도 막무가내인 모습이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어미의 간절한 마음인 듯하여 더는 제지하지 못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이것을 아이 옆에 둘 수 있을까요?” 1개월 이상 계속되는 집중치료에 서로가 힘들던 어느 날, 환자의 어머니는 1000마리의 종이 학이 담긴 유리병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그리고 또 한 달 뒤, 인공호흡기에 힘들게 의존하던 환자의 곁을 1000마리의 종이 거북이 함께 지키게 되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기적적으로 환자는 회복해 주었다. 마침내 89일 만에 환자가 퇴원하는 날은 작은 잔칫날이었다. 치료를 담당했던 흉부외과 팀원들, 담당간호사는 물론이고, 미화원 아주머니도, 환자 이송을 해주던 의료기사들도 축하의 인사를 건네며 함께 기뻐했다. 아들의 병실을 내내 지키던 어머니는 필자에게도 1000마리의 거북을 감사의 선물로 내밀었다.
1000번을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어머니의 간절함과 정성이 담긴 3000마리의 학과 거북에게 그 이야기는 한낱 비과학적인 세속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종이를 접는 행위이든, 장독대 ‘정화수’에 기원하는 행위이든,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희망과 기적을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면 그것은 ‘성물(聖物)’이지 않을까? ‘더 열심히 살겠다’는 환자의 말에 그동안 힘들었던 모든 일들이 한순간에 행복으로 바뀌었다. 학과 거북이 물고 온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정말, 정말로 감사하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