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37] R&D 예산 삭감 유감
2015년에 MIT 대학에서 발간한 보고서는 MIT라는 한 대학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잘 보여준다. 이 분석에 따르면 MIT 졸업생들은 회사를 3만2000곳 설립했고, 460만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매년 매출을 1조9000억달러(약 2500조원) 올리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GDP와 거의 비슷하다. 팬데믹 직전에 MIT의 1년 연구비는 10억달러, 우리 돈으로 1조3000억원이었다. 미국 대학에서 수행하는 연구는 대부분 기초 연구 성격이 강한데, 코로나 팬데믹을 이겨낸 mRNA 백신은 RNA 연구에 나노 입자와 면역 반응에 관한 기초 연구가 결합해서 결실을 본 것이었다.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기업 혁신을 연구하는 모토하시 가즈유키(元橋一之) 교수는 특허와 논문 인용에 관한 빅데이터를 분석해서 21세기 혁신은 20세기와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보였다. 20세기가 주로 새로운 산업적 생산 방식의 혁신이었다면, 21세기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근거한 혁신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달라진 경제를 ‘과학 경제(science economy)’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불렀다. 기초 과학과 원천 연구의 혁신 없이는 기업이, 그리고 결국 국가의 경제가 도태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지난 6월 말 대통령은 각 부처에 ‘약탈적 이권 카르텔’과 싸워달라고 요구했다. 과기정통부에서도 카르텔과 담합을 개혁하는 예산 조정을 시작했고,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에 13.9% 삭감한 내년 예산안을 발표했다. 한국 과학기술 정책 역사상 이렇게 급하게, 그것도 3조4000억원이라는 큰 예산을 삭감한 사례는 없었다. 무엇보다, 카르텔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기초 연구비가 6.2% 삭감되었다.
한국의 연구 개발 정책은 그러잖아도 기초보다 응용·개발 연구를 지원하는 구조다. 기초 연구의 중요성을 공유한 연구자와 정책가, 그리고 관료들의 노력으로 연구비가 조금씩 늘어 지금에 이르렀는데, 최고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그간의 성취가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미국은 한 대학이 1조3000억원을 연구비로 쓰고 일본에서는 과학 경제를 외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카르텔과 싸우느라 연구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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