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장택동]70년 된 작량감경, 손볼 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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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량이 적절하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들로서는 피하기 어려운 숙명 같은 일이다.
판사는 법에 정해진 형량에 수많은 양형요소를 따져 형을 가중하거나 감경하면서 선고형의 범위를 정해나간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거나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는 것도 자주 등장하는 작량감경 사유다.
그렇다 보니 항간에서는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면 작량감경을 받느니, 판사에게 밉보여 형량이 높아졌느니 하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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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제도 개선해 자의적 판단 여지 줄여야
양형 과정은 복잡하고 정해진 답도 없다. 판사는 법에 정해진 형량에 수많은 양형요소를 따져 형을 가중하거나 감경하면서 선고형의 범위를 정해나간다. 기본적으로 형법에는 경합범, 누범 등은 형량을 높이고 심신장애, 종범(從犯) 등은 낮출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요소들을 양형에 얼마나 반영할지는 판사가 정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판사는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 형량을 절반까지 추가로 줄여줄 수 있다. 이 조항은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작량감경(酌量減輕)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고, 2020년 ‘정상참작감경’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그대로다. 그런데 ‘참작할 사유’가 뭔지, 어느 정도까지 형을 줄여줄 수 있는지는 법에 언급돼 있지 않다. 판사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 만큼 판사들 간에 편차가 발생할 소지도 크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진지한 반성’이다. 파렴치범도 반성한다는 이유로 형을 깎아주는 일이 흔한 게 현실이다. 성범죄 피고인의 약 70%가 잘못을 뉘우쳤다는 이유로 형량이 낮아졌다. 아동학대로 집행유예를 받은 사례 중 62%가 진지한 반성을 이유로 감형됐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진정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반성을 이유로 감형을 받는 사례가 잦다 보니 피해자는 비분강개하고, 반성문 대필 시장은 성행하고 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거나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는 것도 자주 등장하는 작량감경 사유다. 피고인이 ‘잔인하고 포악한 본성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해서 형을 낮춰준 사례도 있었다. 이런 이유들이 감형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도 판결문에 적혀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항간에서는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면 작량감경을 받느니, 판사에게 밉보여 형량이 높아졌느니 하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다.
판사는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헌법상 권리는 존중돼야 한다. 잇따른 특별법 제정으로 범죄의 형량이 높아지는 추세에서 작량감경이 처벌의 형평성을 맞추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렇더라도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형량을 정하는 데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는 최소화하는 것이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본다.
‘진지한 반성’ 등은 대법원 양형기준에 감경요소로 제시된 것들이므로 별문제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양형기준은 법원이 내부적으로 정한 참고 사항일 뿐이다. 감형 사유를 법률에 구체적으로 명시해 법적 근거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 양형 논란을 줄이는 한 방법일 것이다.
작량감경 도입 이후 70년이 흐르는 동안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훨씬 높아졌고, 이는 양형에도 적용된다. 2020년 한 여론조사에서 ‘법원에서 선고하는 형벌에 일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이 10%,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86%였다. 양형에 대한 여론이 이 정도로 부정적이라는 점은 사법부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나치게 틀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객관성을 담보할 양형제도를 만드는 일은 고난도의 작업이다.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사법부가 주도적으로 고민하고 해법을 내놔야 할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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