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더운 여름[임용한의 전쟁사]〈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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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무더위가 한반도를 덮고 있다.
1950년 8월도 최고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가는 등 상당히 고온이었다고 한다.
8월 한 달 내내 한미 연합군과 북한군은 낙동강 변의 가파른 고지에서 밀고 밀리는 싸움을 반복했다.
고지의 참호에서 적의 총탄은 피할 수 있어도 8월의 땡볕은 피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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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한 달 내내 한미 연합군과 북한군은 낙동강 변의 가파른 고지에서 밀고 밀리는 싸움을 반복했다. 대한민국에는 마지막 방어선이었고, 북한군에겐 마지막 한 걸음이었다. 당시 한국의 산은 거의가 민둥산이었다. 고지의 참호에서 적의 총탄은 피할 수 있어도 8월의 땡볕은 피할 수가 없었다. 두꺼운 군복, 철모, 물도 음식도 부족한 상황에서 병사들은 뜨거운 총신을 붙잡고 싸웠다. 일사병으로 쓰러진 병사가 몇 명인지는 통계도 없다. 체력이 바닥나고 정신이 혼미해서 판단력이 흐려지거나 동작이 느려져 죽고 다친 병사는 판정할 수조차 없다.
그 여름의 낙동강 전선, 이 전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보다 더 위태롭고 치열했다. 대구도 함락될 뻔했다. 그때 어떤 이유든 북한군이 시가 진입을 망설이지 않았더라면 한국전쟁의 향방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른다.
8월 16일에 미군은 B-29 폭격기로 960t의 폭탄을 다부동 전면에 퍼붓는 융단폭격을 감행했다. 이 폭격의 효과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갈리지만, 그만큼 뜨겁고 폭렬하는 전선이었다.
최초에 투입된 미 24, 25사단에 이어 전통의 미1 기병사단, 해병대 등 정예부대가 투입되기 시작했다. 그런 준비가 없었던 한국군은 훈련도 받지 못한 징집병을 투입해야 했다. 이 부분은 북한군도 마찬가지였는데, 보급선이 길어지고 희생이 늘면서 전투력이 소진되기 시작했다.
인천상륙작전 이전인 8월 하순이 되자 북한군은 이미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할 기력이 소진되었다. 그때쯤 무더위가 물러가며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전쟁이지만, 병사들에게 일단 제일 반가운 건 그 시원함이 아니었을까?
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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