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상/김지영]책상 하나, 명함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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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세상 사람들이 다 목걸이 매고 출퇴근하는 직장인인 줄 아냐'라는 비아냥을 들은 적 있다.
'객원 마케터'라 적힌 명함 한 통에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명함은 비단 소통과 열없는 인정 욕구의 충족을 넘어, 사회인으로서 개인의 기능을 정의하고 사명을 부여한다.
고작 책상 하나, 고작 명함 한 장이면 언제 어디서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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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형태가 꼭 ‘피고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하지만 11년을 ‘목걸이 매고 출퇴근하는 직장인’으로 살아오면서, 최소 ‘일’이라고 하면 반드시 갖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형태는 있다.
첫 번째는 책상. 아침 지하철의 번잡함을 뚫고 마침내 내 이름이 붙은 책상 앞에 앉는다. 모니터를 켜고 이런저런 뉴스를 훑으며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묘한 안정감이 찾아든다. 뭐든 배우고 싶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기분이 좋아서 어쩌면 오늘도 출근을 한다. 내게 할당된 책상은 단순히 이 사회에 내 자리가 있음을 넘어,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에 하나의 세계를 부여한다. 팔 한 폭 남짓한 좁디좁은 세계에서 몰입하고 좌절하고 인내하고 극복하며 나는 성장한다.
두 번째는 명함. 첫 명함의 설렘을 기억한다. 스물한 살, 소위 ‘스펙 쌓기’의 일환으로 한 기업의 대학생 마케터로 활동했다. ‘객원 마케터’라 적힌 명함 한 통에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고작 한 달짜리 체험 주제에 소속감마저, 사명감마저 느꼈다. 그때부터 살면서 가져본 모든 명함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명함은 비단 소통과 열없는 인정 욕구의 충족을 넘어, 사회인으로서 개인의 기능을 정의하고 사명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변천사 행간에는 크고 작은 도전과 성취와 타협의 역사가 있다.
가끔씩, ‘경력 단절’의 두려움이 내게도 스친다. 멀게는 여전히 ‘여성 최초’를 수식으로 달거나 달지조차 못한 자리들이 생각보다 아주 많다는 것을 깨달을 때. 가깝게는 누구보다 일을 좋아하던 친구가 육아 때문에 마지못해 일을 그만둘 때. 애써 씩씩한 척하는 눈이 사실은 젖어 있을 때. 그때마다 가장 또렷하게 다가오는 시각화된 공포는 더 이상 출근할 책상, 내밀 명함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은퇴한 아버지, 취업 준비하는 후배 모두가 같은 두려움을 품고 사는 건 아닐까.
그러다 최근 퇴사한 지 오래된 지인이 구직을 시작하며 직접 프리랜서 명함을 만들었다. 명함에 넣을 이미지와 문구, 직책을 고민하며 그는, 행복해 보였다. 고작 명함 하나 만들었을 뿐인데 다시 사회에 자리가 생긴 기분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회사명이 박혀 있지 않은 내 몫의 명함을 그려 보았다.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기에, 당장 내년 내후년 내가 어디서 어떤 형태로 밥벌이를 하고 있을지는 확언할 수 없다. 그리고 사실 그렇기에 인생이 재미있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회사’ 또는 누군가가 내어 준 공간, 쥐여 준 역할이 아니더라도 나는 나의 무대를, 배역을, 만들고 지켜 나갈 것이라는 믿음이다. 고작 책상 하나, 고작 명함 한 장이면 언제 어디서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는.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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