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믿지 말라”던 서튼, 결국 거짓말쟁이로… 건강 악화 자진사퇴, 롯데는 어디로 가나(종합)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나요? 일단 말할 수 있는 건 인터넷을 너무 믿지 마세요”(웃음).
래리 서튼 롯데 감독은 지난 17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SSG와 경기를 앞두고 취재진과 만나 가벼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당시 오전에는 “서튼 감독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루머가 돌았다. 그런 서튼 감독이 취재진 앞에 앉았으니 사실을 확인하고자 한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서튼 감독은 루머에 고개를 저으면서 단순히 건강 검진 차원이었고, 피로도를 경감하기 위한 수액을 조금 맞고 왔다고 해명했다.
서튼 감독은 당시 “건강 검진 체크를 하러 (병원에) 갔다 왔다. 쓰러진 게 아니다”고 단호한 어조로 부인하면서 “오늘 경기가 끝나고 서울 원정이라 구단의 협력 병원에 갈 시간이 오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건강 이상설을 잠재우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서튼 감독은 결국 17일 경기의 더그아웃을 지키지 못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몸 상태가 나빠졌고, 트레이닝파트와 상의 끝에 귀가해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서튼 감독이 몸이 좋지 않아 더그아웃을 비운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다만 자주 있는 일이 아닌 것도 분명했고, 그 정도는 양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여겼다. “몸이 아파도, 가족에 문제가 있어도 더그아웃을 지키는 한국의 문화와는 다르다”는 이해의 해석도 있었다. 그런데 “인터넷을 믿지 말라”면서 자신의 건강을 호언장담하던 서튼 감독은, 불과 열흘 뒤 건강을 문제로 자진사퇴 의사를 전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는 거짓말쟁이가 된 셈이다.
롯데는 28일 “래리 서튼 감독이 8월 27일 사직 kt 경기 후 건강상 사유로 감독직 사의를 표했다”면서 “구단은 숙고 끝에 서튼 감독의 뜻을 존중하고 수용키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어 “8월 29일 대전 한화전부터 이종운 수석코치의 감독 대행체제로 잔여 시즌을 이어 나간다”고 덧붙였다.
가뜩이나 갈 길이 바쁜 롯데의 상황에 발생한 돌발 악재다. 시즌 초반 ‘기세’라는 단어를 유행시키며 ‘3강’을 형성할 정도로 잘 나갔던 롯데는 6월 이후 성적이 처지기 시작하며 ‘봄데’라는 오명이 다시 떠올랐다. 8월 초 다시 치고 올라가는 듯했으나 18일부터 20일까지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과 3연전을 모두 내주며 악몽이 시작됐다. 롯데는 지난 주에도 한 경기를 이기지 못한 채 7연패에 빠져 있다.
현재 7위인 롯데(50승58패)는 5위 KIA와 경기차가 5경기로 벌어져 있다. 남은 경기를 고려하면 충분히 따라갈 수도 있는 격차지만, 결코 만만한 격차도 아님이 분명하다. 9월 22일 소집되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선발 투수 두 명(박세웅‧나균안)이 차출된 것도 시즌 막판 예고된 악재다. 미리 준비한 플랜을 실행할 사람이 서튼 감독이었는데, 갑자기 건강 문제로 하차한 것이다. 계획을 준비하고 이해도가 높은 선장이 사라졌다.
설이 분분하다. 서튼 감독이 올 시즌 내내 성적에 대한 압박으로 스트레스가 컸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다만 성적 압박은 사실 모든 감독들이 다 받는다. 그 외의 다른 요인들이 있었다는 게 야구계의 의심이다.
시즌 중반 있었던 코칭스태프 내의 일련의 사건들 또한 서튼 감독의 입지를 크게 흔들고 불만을 키우는 트리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 일부 마찰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는 게 야구계 정설이다. 여기에 최근 성적까지 떨어지자 건강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당초 롯데는 서튼 감독의 임기를 일단 보장하고, 올 시즌 최종 성적을 평가하고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스탠스였으나 사표를 반나절 만에 수리했다.
어차피 포스트시즌에 가지 못했다면 서튼 감독의 재계약은 없었을 것이라는 게 야구계의 중론이다. 6월 이후 롯데의 성적이 떨어지고, 롯데의 가진 전력을 100% 발휘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동시에 차기 사령탑에 관심을 보이는 인사가 늘고 있다는 소문들이 돌면서 ‘서튼 불가론’은 더 힘을 받고 있었던 양상이었다. 다만 롯데는 자진사퇴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공헌도를 들어 잔여 연봉은 모두 지급할 예정이다.
1군에서, 그것도 롯데에서 감독 경력이 있는 이종운 감독대행이 급한 대로 팀을 이끈다. 다만 구단은 차기 감독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뜻을 밝히고 있다. 시즌이 끝난 뒤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올해도 포스트시즌에 가지 못한다면 성민규 단장을 비롯한 수뇌부 또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오프시즌이 더 복잡할 것으로 보이는 롯데다.
어쨌든 서튼 감독과 한국의 인연도 이렇게 끝이 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튼 감독은 현역 시절 KBO리그에서 뛴 외국인 선수이자, 1‧2군에서 모두 감독을 했다는 이색적인 프로필을 가지고 있다. 2005년 현대에서는 35개의 홈런을 치며 거포 펀치력을 보여주기도 하는 등 비교적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선수로 기억된다. 롯데에는 2019년 10월 2군 감독으로 선임되며 지도자로 인연을 시작했다.
서튼 감독은 2021년 5월 11일 허문회 감독이 경질되자마자 대행이 아닌 곧바로 정식 감독을 승격해 롯데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모았다. 허 감독 시절 현장과 프런트의 갈등이 분명히 있었던 만큼, 성 단장과 호흡이 잘 맞는 것으로 알려진 서튼 감독과 시너지 효과가 기대를 모았다. 실제 서튼 감독 부임 후만 따지면 롯데는 2021년 승률 5할을 기록했다. 구단은 2023년까지 계약을 연장하며 든든한 신뢰를 드러냈다.
하지만 일부 문제도 지적됐다.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한 서튼 감독의 경기 운영은 팬들이 기대했던 화끈한 ‘로이스터식’ 야구가 아닌, 한국식을 더 많이 접목한 야구임이 드러났다. 서튼 감독을 잘 아는 일부 야구 관계자들은 “한국의 조직 문화를 잘 안다. 미국인보다는 한국인에 더 가깝다”고 표현했는데, 실제 이 예상이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 셈이다.
지난해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서튼 감독은 올해 든든한 프리에이전트 지원(유강남‧노진혁‧한현희)을 받으며 가을야구 진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개인적으로도 계약 기간 마지막 해였던 만큼 배수의 진을 칠 만한 한 해였다. 시즌 초반 팀 성적이 좋자 서튼 감독의 얼굴에도 미소가 돌아왔다. 하지만 처지는 성적에 스트레스가 쌓여갔고, 결국 7위까지 떨어진 8월 28일 자진사퇴로 사실상 한국과 인연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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