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페미니즘에 불 댕긴 축구연맹 회장의 ‘강제 키스’

최서은 기자 2023. 8. 2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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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월드컵에서 우승한
자국팀 선수에 입맞춰 물의
피해 선수 지지 목소리 속
축구계에서 영구 퇴출 추진

2023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 시상식 무대에서 루이스 루비알레스 스페인왕립축구연맹(RFEF) 회장(왼쪽 사진)이 우승을 차지한 스페인 대표팀 헤니페르 에르모소 선수(오른쪽)의 얼굴에 강제로 입을 맞춘 사건의 파장이 확산하면서 스페인 전역의 페미니즘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27일(현지시간) 엘파이스 등에 따르면 사건 발생 후 동료 선수들을 비롯해 축구팬과 스페인 국민은 에르모소 선수에게 지지를 보냈다. 이들은 “우리는 에르모소와 함께한다”고 적혀있는 티셔츠를 입거나 포스터를 들고 찍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올려 응원을 보냈고, SNS에는 ‘#(루비알레스는) 끝났다’는 해시태그 운동이 확산됐다. 스페인 대표팀은 연맹 지도부가 물러날 때까지 국가대표로 뛰지 않겠다고 밝혔으며, 코치진 6명은 루비알레스를 규탄하며 사퇴했다.

이 같은 논란에 루비알레스는 자신이 “마녀사냥의 피해자”라면서 “사회적 암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논란을 “거짓된 페미니즘”이라며 사임을 거부했다. 이후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뒤늦게 유감을 표명했지만, 자신이 에르모소 선수에게 의사를 묻고 합의하에 입맞춤을 했다고 주장하며 거짓 해명 논란을 키웠다. 이에 대해 에르모소는 “루비알레스의 말과 달리 (의사를 묻는) 대화는 결코 이뤄지지 않았고, 그 키스는 합의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면서 “그 어떠한 사람도 직장에서나 스포츠에서나, 사회적 환경에서 이러한 동의 없는 행동의 피해자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사건을 알려야 한다고 느낀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이 단순히 루비알레스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스포츠계 전반에서 여성 선수들이 겪는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스포츠 매체는 “여성 선수들이 오랫동안 직면해 온 뿌리 깊은 시스템 문제를 엿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스페인 축구에 ‘미투’의 순간이 도래했음이 분명해졌다”고 전했다.

사건의 파장은 스포츠계를 넘어 사회 전역에 남아 있는 성차별·성폭력에 대한 문제로도 확산하고 있다. 스페인 언론인 이란트수 바렐라는 자신의 SNS에 “루비알레스에 대한 반응에 놀란 모든 분들께: 이런 일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상사, 고객, 선생님, 친구, 낯선 사람, 당신에 의해”라고 썼다. 엘파이스는 “(이번 사건으로) 폭력과 권력 관계를 인식하고, 역사적으로 이어져 온 ‘정상성’을 지우도록 가르쳐온 페미니즘 의식이 연쇄반응으로 활성화됐다”며 “불과 6일 만에 스페인 사회에 내면화된 페미니즘이 루비알레스를 휩쓸어 버렸다”고 보도했다.

정치권에도 진영을 뛰어넘은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 대행은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여성단체의 비판을 받아온 보수 정당 국민당(PP)의 쿠카 가마라 의원도 “우리 국민은 그런 일을 당해선 안 된다”며 “이는 국가 전체의 수치이며, 주인공이 되어야 할 여자 대표팀의 승리를 더럽히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 정부는 루비알레스에 대한 영구 퇴출을 추진하는 한편 권력 남용 혐의와 스포츠 행사의 품위를 훼손한 혐의로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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