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영웅’ 홍범도 장군 “공산주의 경력” 뭐길래?

신선민 2023. 8. 2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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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양순은 중대장이었다. 내 아들 양순이 죽었다”

독립기념관에 보관된 '홍범도 일지'의 한 구절입니다.

당시 열여섯이었던 장군의 장남, 양순은 1908년 함경도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에 순국했습니다.

같은 해, 장군의 부인도 일본 경찰의 고문으로 숨졌습니다.

가족 모두 평생 힘써온 독립을 못 보고, 타국에서 흩어졌는데 국가는 지난해 8월 “독립기념관로 1” 이라는 대한민국 본적 주소를 선물했습니다.

이렇게 역대 정부가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해왔는데 국방부가 왜 이른바 '공산주의 경력'을 문제삼는 건지 신선민 기자가 짚어봅니다.

[리포트]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감한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순국 78년 만에 봉환됐습니다.

[문재인/전 대통령/2021년 8월 18일 : "장군이 고향 흙에 흘린 눈물이 대한민국을 더 강하고 뜨거운 나라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독립전쟁 1차 대승리'로 기념한 1920년 봉오동 전투.

전투를 이끈 지휘관은 '백두산 호랑이'로 불린 홍범도 장군입니다.

수적 열세에도 골짜기 매복 작전을 통해 일본군을 대패시켰습니다.

이후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정식 입당해 활동했는데, 당시 약소민족 독립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소련과 항일투쟁 공조는 불가피했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우원식/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더불어민주당 의원 : "공산당에 가입한 경력이 있기는 하지만 공산당 활동을 위해서 한 것은 아닙니다. 홍범도 장군의 활동은 오직 조국의 독립이었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1937년 소련의 결정으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했고, 광복 2년 전인 1943년 현지에서 작고해 6.25 전쟁이나 북한 공산당과는 시기적으로 관련이 없습니다.

정부와 여당 일각에선 업적을 부정할 수 없지만 1921년 독립군 간 주도권 다툼 끝에 독립군 다수가 사망했던, 자유시 참변과 연관 의혹이 있다며 공과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유상범/국민의힘 수석대변인 : "봉오동 전투에서 대승을 이끈 독립전쟁의 영웅이시고, 또 한편 '자유시사변'에 있어서 여러 가지 논란도 있으신 분입니다."]

대통령실은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가 아닌 '이전'이고, 국방부와 육사가 결정할 일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히며, 거리를 뒀습니다.

KBS 뉴스 신선민입니다.

촬영기자:윤대민 박장빈/영상편집:박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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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민 기자 (freshm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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