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꾸준히 하면 언젠가 뜻깊은 날이 온다”
2021년 도쿄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8강전에서 당시 19세였던 안세영이 중국 천위페이에게 0대2로 졌다. “엄마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셨는데…”라며 눈물을 쏟았다. 안세영은 네 살 많은 천위페이와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맞붙어 1회전 탈락의 쓴맛을 봤는데, 도쿄올림픽에서 또 그에게 가로막혔다. 5전 전패였다.
▶중3 때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된 안세영은 어린 나이에도 당대 최강자들을 차례로 꺾어봤다. 그러나 빠른 발과 강한 힘을 두루 갖춘 천위페이를 넘기는 어려웠다. 인내심과 집중력에서 천위페이에게 밀린 것 같다고 스스로 돌아본 그는 “정말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되는 거면, 이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하나 봐요”라고 했다.
▶안세영은 코칭 스태프가 말릴 정도로 지독하게 훈련했다. 100kg 이상 무게로 스쿼트와 데드리프트 등 하체 근력 운동을 했고, 코로나 사태로 운동시설을 이용할 수 없을 땐 아파트 45층까지 하루 7번씩 걸어 올라갔다. 강약과 완급 조절을 익혔고 공격 기술을 다양화했다. 상대를 철저히 분석해 맞춤형 전략을 짰다. 지난해 7월 말레이시아 마스터스 결승에서 안세영은 ‘천적’ 천위페이를 처음 꺾었다. 4년 동안 7연패 한 끝에 마침내 따낸 승리였다. “이제 한 번도 못 이겨본 선수는 없다”는 자신감이 안세영을 더욱 밀어올렸다.
▶올해 들어서는 천위페이와 7번 맞붙어 안세영이 5번 이겼다. 가장 최근 맞대결이 지난 26일 세계선수권대회 준결승전이었다. 안세영은 대각 스매싱 공격을 앞세워 빈 공간을 노렸고, 몸을 날리는 끈질긴 수비로 상대 범실을 끌어냈다. 천위페이를 2대0으로 누르고 한국 선수로는 30년 만에 결승에 오른 그는 한국 사상 첫 배드민턴 세계선수권 단식 챔피언이 됐다. 김학균 대표팀 감독은 “상대 선수가 누구든 세영이가 압도해 끌고 갈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천위페이와의 상대 전적은 이제 6승 10패. 더 이상 ‘천적’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됐다.
▶이번 세계선수권에 나선 서승재-채유정 조도 세계 랭킹 1위 중국 조를 꺾고 20년 만에 한국에 이 대회 혼합 복식 금메달을 안겼다. 2018년부터 9번 내리 패한 상대를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다시 만나 극적으로 ‘9전 10기’를 이뤘다. 채유정은 “묵묵하게 자기 자리에서 꾸준히 준비한다면 언젠가는 이렇게 뜻깊은 날이 온다”고 했다. 안세영과 서승재, 채유정이 그 말이 가진 깊은 진리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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