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마주침 알아차리고 몸 바꾼 나무
미국의 인류학자 애나 로웬하웁트 칭은 역저 <세계 끝의 버섯>에서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체와 끊임없이 마주치면서, 알아차리게 되는 대상에 맞춤하게 변화하는 과정이 생명의 기본 원리라고 강조했다. 다양성을 갖추며 살아가는 생태계의 발전 원리이기도 하다. 칭의 이야기처럼 전남 장흥에는 곁에 있는 나무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나무 형태를 바꾸며 살아온 특별한 나무가 있다. ‘장흥 삼산리 후박나무군(群)’이다.
후박나무는 원래 정자나무로 많이 쓰일 만큼 나뭇가지를 넓게 펼치며 크게 자란다. 후박나무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나무에는 나뭇가지를 펼칠 공간이 필요하다. 광합성을 하기 위해 햇빛을 제대로 받으려면 그늘을 드리우는 방해물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흥 삼산리 후박나무군으로 불리는 세 그루의 후박나무는 나뭇가지를 펼칠 공간이 없을 만큼 바투 붙어서 태어났다. 자리를 옮겨갈 수 없는 나무는 처음에 햇빛투쟁에 몰두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 흐르며 나무는 공간 확보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공간을 나눠 쓰는 쪽으로 스스로를 변화시켰다. 가운데 나무는 나뭇가지를 위로만 뻗고, 양옆의 나무는 바깥쪽으로만 나뭇가지를 뻗었다. 본래의 생태를 내려놓고 새로운 형태로 자신의 모습을 바꾸었다.
1580년쯤 경주이씨(慶州李氏)의 조상이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면서 심은 세 그루의 나무는 누가 보더라도 한 그루처럼 보이는 큰 나무들이다. 각각의 규모도 작지 않다. 가슴높이 줄기둘레가 제가끔 3m, 2.8m, 2.7m다. 세 그루가 모여 한 그루처럼 자라며 11m쯤으로 솟아올랐다. 세 그루가 모여 펼친 나뭇가지는 동서로 23m, 남북으로 20m나 된다.
살아남기 위한 나무의 안간힘은 생명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결과를 이뤘다. 살아남는다는 건 다른 생명을 착취하고 홀로 우뚝 서기보다 다른 생명과의 마주침을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스스로를 바꾸는 데에 있다는 사실을 침묵으로 웅변하는, 세 그루이지만 한 그루인 위대한 나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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