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 칼럼] 야당의 비판이 힘을 잃는 이유

기자 2023. 8. 28.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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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행보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평가는 박하기 그지없었다. 공식 논평만 보더라도 미국을 대신해 중국 때리기 최전선에 내몰리면서 얻은 것은 대중국 수출 감소와 경제위기뿐이라든가, 한국이 외교의 먹잇감이 됐다든가, 나라의 미래를 ‘시계제로’에 빠뜨리고 안보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든가, 심지어 ‘한반도 핵전쟁의 공포를 조장’한다고까지 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문제에 이르면 말은 더욱 거칠어진다. 민주당 의원 몇몇은 후쿠시마로 건너가 일본 시민들과 함께 항의 집회도 했고, 이재명 대표는 ‘제2의 태평양전쟁’이라고까지 했다. 본인이 임명한 장관들이 국회에서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는 잠잠하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뜬금없이 소셜미디어(SNS)에 방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태평양전쟁과 비슷한 점을 굳이 찾으려면 없지는 않다. 후쿠시마에서 방류된 오염수가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한국과는 정반대 방향인 캘리포니아를 향해 가는 길에 진주만 근처를 지날지도 모르니 말이다. 차이점은 넘쳐난다. 태평양전쟁 때 미국의 인명피해가 약 20만명, 일본의 인명피해가 약 1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번 방류로 예상되는 인명피해는 아마 없을 것이라는 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또 하나의 차이는 태평양전쟁 때 서로를 말살시키는 데 골몰했던 미국과 일본이 이번엔 같은 편에 서 있다는 점이다. 방류가 시작된 후 미 국무부는 성명을 내고 “미국은 안전하고 투명하며 과학에 기반한 일본의 방류 절차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또한 “자연재해로 큰 고통을 겪고 복구 과정에서 용기와 탄력성을 보여준 일본 국민과 함께 애도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은 방류수가 해류를 타고 가장 먼저 도착할 핵심 당사국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멜트다운으로 일본에서 2만명이 사망했다. 그런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 방류 이외의 다른 방법을 찾으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안전하면 일본 국민들이 식수로 마시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일본이 방류를 시작하기 이전까지 과학계와 국제사회의 여론은 거의 전적으로 일본 편으로 기울어 있었다. 과학적 연구의 결과들이 압도적으로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고, 일본이 여러 해에 걸쳐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려는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방류 안 한다고 해서 무조건 안전한 것도 아니고, 1000개 넘는 탱크에 보관하고 있다가 또 한 번 쓰나미라도 온다면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고려사항도 있었다.

세계 각국 언론의 보도를 두루 살펴봐도 한국과 중국을 빼고는 비판적 보도를 찾기 어렵다. 대부분은 그간의 절차와 과학적 연구결과 등을 설명하고 방류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담백하게 보도하고 있었고, 반대 여론을 언급하는 경우엔 한국과 중국에서 반대 여론이 강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린피스 같은 국제환경단체들은 비판적 성명을 내놓았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일본의 입김에 좌우된다는 음모론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우리가 이러고 있는 사이 북한은 동창리에서 석 달 만에 위성발사체를 쏘아올렸다. ‘한반도 핵전쟁의 공포’란 이런 것 아닐까. 한·미·일 정상회담이 없었다면 북한은 핵 도발을 멈췄을까. 지난 30년 북한 핵 도발의 역사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증언해주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남아공에서 브릭스(BRICS) 정상회의가 열렸다. 기존의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에 더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연합,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 6개국이 새로 가입했다. 미국 중심 국제질서에 경쟁마로 거론될 수 있는 유일한 경제블록이다. 동맹을 기반으로 뭉친 인도·태평양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비해 결속력은 약하지만 기존 5개국만 해도 전 세계 GDP의 25%와 인구의 42%를 차지하는 연합체이다. 가입에 관심을 보이는 국가만 40여개에 달하고 한국의 가입을 원하고 있기도 하다. 외교안보가 미국으로 치우치는 것이 그리도 걱정된다면 미국의 유일한 대항마인 브릭스 정상회의에 대해 한마디 언급이라도 있어야 앞뒤가 맞는 것 아닐까.

정부·여당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야당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과학적 발견에 정면으로 반하고 국제사회에서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 비판은 오히려 의제의 동력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총선을 의식해 강성 지지층에만 호소한다든가, 더 나아가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비판 앞에 무력하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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