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작전 실패가 대장 탓이란 거가?
종종 2014년 4월7일이 떠오른다. 부끄러운 날이다. 저녁 무렵 한 병사의 사망 사건이 알려졌다. 군은 냉동식품과 과자를 내무반에서 먹다가 우발적 폭행이 있었고, 기도가 막혀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썼다. 이후 사건은 4개월 가까이 잊혔다. 뒤늦게 사망한 병사가 지속적인 구타와 가혹행위에 시달렸음이 폭로됐다. 끝까지 ‘질식사’를 고집하던 군은 나중에야 구타로 인한 쇼크사임을 시인했다. 바로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이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김관진은 사건을 보고받고도 진상 파악과 책임자 처벌보다 ‘군 기강 확립’을 주문했다. 사건이 왜곡된 시발점이다. 취임하자마자 “사고 유무로 지휘관을 평가해선 안 된다”고 외친 장관다웠다. 폭로 후 그는 사건의 엽기성은 알지 못했다고 했다. ‘몰랐다’는 그의 주특기다. 북한 무인기 침투도 몰랐다고 했다. 최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 지시로 징역 2년형을 받았지만, 처음에는 ‘몰랐다’고 일관했다. 김관진은 한때 강직한 군인의 표상이었지만, 그 이미지조차 ‘셀프’로 만들어냈음이 뒤에 밝혀졌다.
그 김관진이 지난 5월 윤석열 정부의 무려 ‘국방혁신’ 특별자문위원회 위원이 됐다는 소식은 하나의 징후였다. 무리한 작전 투입으로 순직한 해병대 채모 상병의 비극도 그 연장선상에서 읽힌다. 사단장 등 윗선의 잘못을 명시한 수사 결과를 장관이 결재까지 하고도 뒤집고, 되레 수사 책임자에게 ‘항명죄’를 씌우는 일도 벌어졌다. 윗선이 책임지지 않는 군의 전통은 이미 김관진이 세운 바 있다. 무인기 침투, 노크 귀순, 총기난사와 윤 일병 사망 사건에도 그는 장관직을 지켰다.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허구가 아니었다. 드라마에서 헌병대장은 탈영병이 발생하자 대규모 수색보다는 조용한 자체 해결을 지시한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자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부하에게 술잔을 집어던지면서 말한다. “어이, 작전 실패가 지금 이 대장 탓이라는 거가?” 구명조끼보다는 빨간 셔츠를 입혔느냐만 따졌던 사단장 등이라고 다를까.
지휘관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긴 어렵다. 그러나 책임지라고 앉혀놓은 사람이 지휘관이다. 일이 터질 때마다 아래로 책임을 떠넘긴다면 비상시 누가 그런 지휘관의 명령을 따를 것인가. 이태원 참사, 잼버리 부실 운영 등이 벌어져도 장관이나 고위공직자가 ‘내 책임 아니다’라며 꿋꿋이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등을 두드려주는 건 이 정부의 특기이기도 하다. 대통령실의 외압 의혹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책임은 한가한 얘기인지 모른다. 군 사망사건은 조작·은폐될 가능성이 더 높다. 경향신문이 2000년 이후 157건의 군 사망사건을 살펴봤더니, 군은 72.6%가 복무 부적응 등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었다고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같은 사건을 조사한 군의문사/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반대로 98.1%가 가혹행위 등 군 내부 문제가 원인이었다고 진상규명했다. 군은 멀쩡한 병사를 게임중독자로 만들기도 했다.
지난해 7월 군 사망사건의 수사가 민간으로 넘어가지 않았다면,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는 어떻게 됐을까. 군은 군사법원법 개정에 반대하며 입버릇처럼 ‘군의 특수성’을 외쳤다. 책임지자는 이가 항명죄를 뒤집어쓰는 블랙코미디 같은 일이야말로 ‘특수성’이라 할 만하다.
황경상 데이터저널리즘팀장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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