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中침략 나팔수 정율성 사업 철회" 광주 보훈가족 분노…호남학도병 모신 보훈부

한기호 2023. 8. 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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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 공원 파문 계속…보훈단체 직접 나서, 전사자 유족 김오복 여사 동참
"시진핑의 한중우호 인사" 받든 강기정, 1988년 노태우정부 끌어와 "중앙사업"
野시의회 "철지난 색깔론" 강변…親尹 주기환 비판, 보훈장관 '순천 학도병' 챙겨
28일 오후 광주광역시청 앞에서 대한민국상이군경회 광주지부를 비롯한 지역 보훈단체 관계자들이 중국 3대 혁명음악가 일원인 정율성을 기념하는 역사공원 조성사업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28일 오후 광주광역시청 앞에서 열린 광주지역 보훈단체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 반대' 기자회견에서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도발로 당시 전사한 고(故)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 여사가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박민식(사진 오른쪽) 국가보훈부 장관이 28일 오전 전남 순천역에서 6·25 학도병으로 참전한 고병현(94·왼쪽) 옹과 함께 헌화하고 있다.<연합뉴스>

광주 출신 중국공산당 혁명음악가 정율성 '역사공원'을 광주광역시가 조성 강행하는 데 대해, 정부·여당뿐만 아니라 광주지역 보훈단체들이 정율성의 6·25 침략 부역행적을 비판하며 사업 철회를 촉구했다. 광주·전라에서 1당 독주를 해온 더불어민주당 측은 대한민국 정체성과 엇나간 사업의 이념 색채를 비판받자 '철 지난 이념 공세'라는 프레임을 제기하며 반발했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대한민국월남참전자회 광주지부는 28일 오후 광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 영웅 정율성 공원 조성에 호국영령들이 통탄한다"며 시에 사업 철회를 촉구했다. 전국 보훈단체 차원에서 오는 30일 광주시청 앞에서 회원 2000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반대집회를 예고하기도 했다.

광주시민이었고, 2010년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도발로 전사한 고(故) 서정우 하사의 모친 김오복 여사도 참석해 "광주 정신은 공산주의자를 기념하는 정신이 아니다"고 성토했다. 앞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1948년 2월8일 정율성이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 김일성' 명의로 받은 포상장을 공개, 역사공원 철회를 촉구한 다음날(23일) 강기정 광주시장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훈가족의 피눈물을 나게 한다"며 항의한 바 있다.

4·19 민주혁명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4·19혁명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등 5개 단체는 조선일보·동아일보·문화일보 등 3개 일간지에 역사공원 건립 반대 광고를 실었다. 원외정당인 자유통일당 광주시·전남도당도 이날 광주시청 앞에서 정율성 공원 반대 집회를 열었고 참여자들은 "시민 혈세 48억원 정율성 사업 반대", "여기가 평양이냐, 광주냐", "공산당 나팔수 정율성 사업 철회" 등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이자 검찰 수사관 출신인 주기환 국민의힘 광주시당위원장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정율성은 광주 태생일 뿐 지역 발전에 공헌한 인물도 아니다. 중국에서 민족의 우상으로 평가받는다면 표지석 정도 설치하는 게 맞지, 수십억원 세금을 들이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역사학자와 시민 공청회를 통한 검증도 제안했다. 강기정 시장은 같은 날 정율성을 줄곧 "선생"으로 치켜세운 한편 2020년 발표됐지만 '중앙정부'에서 출발한 사업이라며 철회를 또 거부했다.

강 시장은 당초 박민식 장관과의 SNS 설전에서 정율성을 시진핑 중국 주석이 꼽은 '한중우호' 상징 인사라거나, 중국 관광객 유치에 필요하다며 정율성 공원 조성 강행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그러던 그는 이날 시청 출입기자들과 차담회에서 노태우 정부(1988~1993년) 시절 한중수교 기조까지 끌어들였다. "(정율성 기념) 시작은 노태우 대통령 재임시기인 1988년으로 서울올림픽 평화대회 추진위에서 '정 선생' 부인인 '정설송 여사'를 초청해 한중우호 상징으로 삼았던 일"이란 것이다.

그러면서 현 정부와 여당에 "보훈단체와 보수단체를 부추겨 광주를 다시 이념의 잣대로 고립시키려는 행위를 중단해 달라"며 "국가와 함께 추진했던 한중우호 사업인 정율성 기념사업은 광주시가 책임을 지고 잘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2월 '대통령 혼밥·기자단 폭행·중국몽' 논란을 낳은 국빙 방중 전후, 정율성을 '국가유공자'로 추서하는 절차를 진행하려 한 의혹도 받고 있다. 강 시장은 문재인 청와대의 정무수석(2019년 1월~2020년 8월)을 지냈다.

강 시장의 소속당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정율성 행적 논란에 공식입장 없이 침묵한 가운데, 민주당 소속 광주시의원들은 광주시의회에서 성명을 내 "윤석열 정부는 철 지난 색깔론과 이념 몰이를 즉각 중단하라"고 화살을 돌렸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도 유상범 수석대변인이 국회 기자들을 만나 북한군가, 중공군가를 작곡하고 6·25 침략에 가담한 정율성 행적을 부각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정율성을 기리는 공원을 만드는 건 국가의 정신에도 맞지 않다"고 했다.

신주호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도 이날 논평에서 강 시장을 향해 "반대한민국 세력을 추앙하고 기리는 일에 이토록 목숨을 거는 이유는 무엇이냐"며 "정율성 역사공원을 추진한다면 지방자치법에 따른 법률 검토나 헌법소원, 감사원의 감사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여 그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맹폭했다. 특히 "진정으로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분들을 기념하겠다면, 엄한 곳에 힘을 낭비하지 말고 금일 순천에서 열리는 '호남학도병 행사'부터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라"고 지적했다.

'호남학도병 행사'는 박 장관이 호남학도병의 성지인 전남 순천역을 찾아 6·25전쟁 호남학도병 현충시설 건립 계획을 발표한 것을 가리킨 것이다. 박 장관은 이날 행사에서 "정율성은 우리에게 총과 칼을 들이댔던 적들의 사기를 북돋웠던 응원대장이었다"면서 "학생들에게 공산당의 나팔수를 기억하게 하고 기리겠다는 시도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국민의 소중한 예산은 단 1원도 대한민국의 가치에 반하는 곳에 사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서도 "대한민국의 적(敵)을 기념하는 사업을 막지 못한다면 보훈부 장관으로서 있을 자격이 없다"며 직을 걸었다. 광주시의 강행 입장엔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이 존중돼야 하지만 국민의 뜻을 정면으로 배반할 수는 없다"며 "수많은 광주 시민, 호남 주민들, 대한민국 국민들이 반대하는 사업을 지자체장이 강행하지 않으리라고 본다"고 에둘러 경고했다. 보훈부는 조성사업을 막기 위한 법적 조치나 헌법소원, 감사원 감사 청구 등을 검토하고 있다.

지방자치법 184조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지자체의 사무에 대해 조언 또는 권고나 지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고, 188조는 '지자체장의 명령이나 처분이 법령을 위반하거나 공익을 해친다고 인정될 경우, 주무 장관이 서면을 통해 시정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지자체장이 시정하지 않을 경우 명령이나 처분을 취소하거나 정지할 수도 있다. 박 장관은 정율성이 소속? 의열단 단장이었던 김원봉을 기념한 공원이 경남 밀양에 조성된 데 대한 입장 질문도 받았다.

약산 김원봉은 의열단장으로 일제에 맞선 무장투쟁을 벌였지만, 공산주의 계열로서 김일성 세력에 협력했고 6·25 전쟁 전후 북한 국가검열상·노동상(장관급)을 지낸 바 있다. 박 장관은 "(김원봉 기념이 아닌) '의열단 기념관'이고 그중에 김원봉이 살짝 들어가 있는 것"이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독립 최고 훈장을 달아드리고 싶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런 문 전 대통령의 역사관은 잘못된 것"이라고 직격했다.

한편 순천역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순천·여수·광양·벌교 등 호남지역 17개 학교 180여명 학생이 참전을 결의한 곳이다. 6·25전쟁 최초 학도병 중대를 이룬 이들은 1950년 7월25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서 북한군 6사단 1000여명과 첫 학도병 전투인 '화개전투'를 치렀고, 국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을 버는 데 크게 기여했다. 박 장관은 매산고 충혼벽화 기념비에 헌화·참배했고, 6·25 학도병으로 참전한 고병현(94) 옹과 만나 '영웅의 제복'을 전달하기도 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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