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이념 아니다”…여당 연찬회에서 ‘이념전’ 설파한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국가의 정치적 지향점과 지향할 가치에서 중요한 게 이념이다.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어갈 철학이 이념”이라고 말했다. 최근 공산전체주의와의 대결을 집중적으로 언급하며 ‘이념 투쟁’에 나선 것을 정당화하고 여권 내 이념적 결속력을 강화하려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전임 정부 국정은 ‘망하기 직전 기업’에 비유하고 야권과 언론을 싸잡아 강경비판했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방류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에는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인천 중구 인천국제공항공사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연찬회에 참석해 “철 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에 우리가 매몰됐고, 또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우리 당은 이념보다 실용이다’ 하는데 분명한 철학과 방향성 없이 실용이 없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취임 첫해에 현직 대통령 최초로 집권여당 연찬회에 참석한 데 이어 2년 연속 연찬회장을 찾았다.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당·정·대 일체감을 높이려는 행보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전임 정부 국정 전반과 현재의 여소야대 국회 구도, 언론 지형 등을 강경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망하기 전 기업을 보면 껍데기는 화려한데 인수해 보면 안이 아주 형편없다”면서 “국가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를 담당해보니까 우리가 지난 대선 때 국정운영권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됐겠나 하는 아찔한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여소야대 국회에다가 언론도 전부 야당 지지세력이 잡고 있어서 24시간 우리 정부 욕만 한다”면서 이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목소리와 연결지었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 후쿠시마 거기에 대해서 (비판이) 나오는 것을 보라”며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세력들하고 우리가 싸울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24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후 이 문제를 공식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첫 언급에서부터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를 ‘비과학적’ ‘정부 욕만 하는 세력’으로 못박아 비판한 것이다.
대통령의 핵심 책무 중 하나인 통합과 협치에는 ‘(여권의) 확고한 방향이 우선’이라는 취지로 전제조건을 깔았다. 윤 대통령은 “협치, 협치 하는데 새가 날아가는 방향이 정해져 있어야 왼쪽, 오른쪽 날개인 보수와 진보가 힘을 합쳐 성장과 분배로 발전하는 것”이라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우리는 앞으로 가려고 하는데 뒤로 가겠다고 하면 그건 안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정치영역의 타협은 늘 해야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어떤 가치로 할 것인지부터 우리 스스로 국가 정체성을 성찰하고 확고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같은 발언은 윤석열 정부식 ‘이념 투쟁’에 여당의 확고한 지지를 호소하며 결집력을 높이려는 행보로 보인다. 이는 ‘반국가세력과는 협치가 어렵다’고 선을 그었던 지난해 10월 발언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사실상 야권을 ‘반국가세력’으로 상정하고 ‘통합 불가’ 선언을 반복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지난 대선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는 “정치는 대통령과 여당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며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랜만에 다 같이 보니 신이 난다”, “저에게 많은 기가 지금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인사말 마무리 단계에서는 오른 주먹을 쥐고 흔들며 “국민의힘 파이팅. 같이 갑시다”를 외쳤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윤 대통령 인사말 도중 박수를 보내고 ‘맞습니다’ 등을 외치며 호응했다. 윤 대통령 발언 전 마이크를 잡은 김기현 대표는 “매년 연찬회 때마다 격려해주시는 그 마음을 잘 새기고 받들면서 윤석열 정부가 대한민국 업그레이드를 완성시킬 수 있도록 내년 총선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서 실질적인 정권교체를 이뤄야 윤석열 정부가 성공하고 대한민국이 성공할 수 있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내가 윤석열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여권이 총출동한 자리였다. 윤 대통령이 2년 연속 참석한데다 장관급 국무위원들과 대통령실 핵심 참모들도 대거 모습을 보였다. 이같은 총출동 기류에는 그만큼 이번 정기국회가 정부 성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기국회는 내년 총선 레이스의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여야의 각축장이 될 거란 분석이 많다.
이날 연찬회 참석은 윤 대통령이 취임 초기부터 집중해 온 여권 장악력 강화 행보의 연장선으로도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회동을 비롯해 여당 전당대회, 국회의원 연찬회, 당협위원장 초청 오찬 간담회, 당 특위 오찬 간담회 등에 참석하며 스킨십을 강화해왔다. 이는 대선 직전 입당해 선거를 치른 만큼 당과의 화학적 결합을 높이려는 행보로 풀이됐다. 이번에도 여당 연찬회 ‘2연속 참석’이라는 기록을 이어가면서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의 존재감과 여당 장악력을 단단히 하려는 뜻이 담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소통 확대 행보’라며 정치적 해석에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대통령은 민생을 위한 일과 성과를 내는 것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정기국회를 앞두고 당에 협조를 당부하는 의미가 있다”며 “여소야대 국회에서 여당 의원들과 직접 대면해 소통하면 더 적극적인 협조가 이뤄질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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