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홍범도,독립군몰살 자유시참변 때 재판관, 소련군 대대장…文 정부 육사 설치 강행”

정충신 기자 2023. 8. 2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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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정부 육사 내 설치 당시에도 문제제기,홍 장군 흉상 설치 충분한 공감대 형성 없이 강행”
국방부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입장’…“홍범도 흉상 육사 정체성 고려시 부적절”
“소련 공산당 자유시 참변 재판에 재판위원, 소련 적군 제5군단 소속 ‘조선여단’ 제1대대장 임명”
“독립군측 400∼600명 사망, 약500명 재판 회부때 홍 장군 독립군 재판하는 위원으로 참가”
“레닌으로부터 권총, 상금, 친필서명된 ‘조선군대장’ 증명서 접수, 1927년 소련공산당 입당”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8월 봉오동 전투 101년 만에 유해가 귀환한 홍범도 장군. 대통령장에 이어 대한민국장 이중 서훈이 논란이 됐다. 국방부는 28일 문 정부 때 육사 내 홍 장군 흉상 설치 당시에도 부적절하다는 문제제기가 있었으나 ,홍 장군 흉상 설치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 형성 없이 강행됐다고 밝혔다. 국가보훈부 제공

국방부는 28일 ‘육군사관학교(육사) 내 홍범도 장군 등 독립군·광복군 영웅 5인의 흉상 이전 추진’이 이념 갈등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는 것과 관련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 업적은 업적대로 평가하되, 이후 소련공산당 활동에 동조한 사실들에 대해서는 달리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며 "더욱이, 북한의 김일성이 소련공산당의 사주를 받고 불법 남침해 6·25전쟁을 자행한 엄연한 사실을 고려할 때 공산주의 이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해 기념하는 것은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시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 기자단에게 보낸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국방부 입장’에서 홍 장군에 대한 학계의 평가 내용을 상세히 공개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홍 장군에 대한 학계 평가를 정부가 상세히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방부는 입장문에서 "홍범도 장군께서 항일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운동을 하신 업적은 부정할 수 없으며, 정부도 이를 인정해 1962년에 건국훈장을 수여했다"며 "국방부가 이를 폄훼하거나 부정할 의도는 전혀 없지만 장군께서 1921년 소련 자유시(스보보니드)로 이동한 이후 보이신 행적과 관련해서는 독립운동 업적과는 다른 평가가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홍 장군이 소련공산당 군정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군 통합을 지지했고, 소련 공산당의 자유시 참변 재판에 재판위원으로 활동한 사실, 자유시 참변 발생 후 이르쿠츠크로 이동해 소련 적군 제5군단 소속 ‘조선여단’ 제1대대장으로 임명 등의 역사적 사실이 있다"며 "이로 인해 1921년 6월 러시아공산당 극동공화국 군대가 자유시에 있던 독립군을 몰살시켰던 자유시 참변과 연관돼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적시했다.

2018년 3월 1일 육군사관학교 사관생도의 상징건물인 충무관 중앙현관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군·광복군 등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 제막식을 갖는 모습. 뉴시스

국방부는 1991년 한·소 수교 직후 발굴한 소련 측 정부문서 내용도 공개했다. 홍 장군이 1930년대에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기 위해 작성한 이력서에는 "자유시 유혈사태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한인 빨치산 지대 대표단원 자격으로 레닌 동지를 만나러 모스크바로 갔다"는 내용이 기술돼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자유시 참변사태는 1921년 6월에 자유시에서 무장해제를 거부한 독립군이 공격당한 사건을 말하는데, 홍 장군은 순순히 무장해제하는 편에 섰다는 평가"라며 "이때 독립군측이 400명에서 600명까지 사망했고, 약 500명이 재판에 회부됐다고 하는데, 당시 홍 장군이 독립군을 재판하는 위원으로 참가했다"고 소개했다.

국방부는 "따라서 홍 장군은 청산리 전투에서 같이 싸웠으나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만주로 돌아간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과는 다른 길을 간 것"이라며 "특히, 홍범도 장군의 빨치산 증명서에는 활동기간이 1919∼1922년으로 기록돼 봉오동과 청산리전투에도 빨치산으로서 참가했다는 의혹도 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이어 "홍 장군은 1922년 코민테른 ( 국제공산당 ) 이 개최한 ‘극동민족혁명단체대표대회’에 한인대표 52명의 일원으로 참석했고, 동년 레닌으로부터 권총, 상금, 친필서명된 ‘조선군대장’ 증명서를 접수했다"며 "1927년에는 소련공산당에 입당하는 등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번 독립운동가 흉상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육사는 공산주의 북한의 침략에 대비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호국간성을 양성하는 기관이며 6·25전쟁 발발 당시 육사 선배들은 전선에 투입돼 북한 공산군에 맞서 싸웠고,6·25전쟁 기간에 다시 개교해 지금까지 북한과 공산주의 위협에 맞서 왔다"고 소개했다. 이어 "육사의 전통과 정체성, 사관생도 교육을 고려할 때 소련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논란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더욱이 사관생도 교육의 상징적 건물인 충무관 중앙현관에 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있어 왔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이번 사안은 육사 내에 설치할 당시에도 적절하지 않다는 문제제기가 있었으나, 그럼에도 홍 장군 흉상 설치가 충분한 공감대 형성이 없이 강행됐다"며 "이후에도 지금까지 이에 대한 논란이 지속돼오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28일 오전 비를 맞고 있는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현관 앞 홍범도 장군 흉상. 국방부는 육사 홍범도 흉상 이전 추진 논란이 확산되자 공산주의 이력의 홍범도 장군 국방부 흉상도 이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정충신 선임기자

국방부는 "육사는 2022년부터 학교종합발전계획을 마련하면서 우리나라의 국난극복사, 6·25전쟁 영웅, 육사의 표상, 한미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함께 기리는 방향으로 교내 기념물 재정비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러한 검토과정에서 논란이 돼왔던 홍 장군의 흉상은 육사 교내보다는 독립운동의 업적이 가장 잘 선양될 수 있는 독립운동의 성지인 독립기념관에 모시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국가보훈부와 독립기념관에 협조를 요청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국방부는 향후 계획과 관련 "육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내 기념물 재정비계획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 수호를 위한 장교양성이라는 학교의 정체성에 맞게 최적화된 교육환경을 조성할 것"이라며 " 특히, 사관생도들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포함하여 국난극복의 역사 전체를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를 이념전쟁과 친일행각으로 부추겨 정치 쟁점화시키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국방부는 "정치적 쟁점과 무관하게 사관생도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육사에서 육사의 정체성에 부합하도록 생도교육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수립하고 추진할 것"이라며 "국방부는 육사를 포함한 사관학교들이 독립운동과 6·25전쟁을 포함해 순국선열과 호국영웅들을 추모하고 그 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계승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정예강군으로 육성하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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