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사·재판 기록도 보겠다는 국정원, 다시 ‘빅브라더’ 꿈꾸나
국가정보원이 국가안보와 관련해 수사 중인 사건이나 재판 기록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시행령 제정을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시행령에는 경찰·검찰 등과의 합동수사기구를 통해 수사에 참여할 수 있는 규정도 명시됐다. 국정원이 내년부터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이관토록 한 국정원법 취지를 무력화하고, 사실상 대공수사권을 존치하려는 것이어서 매우 우려스럽다.
국정원은 지난달 12일부터 지난 21일까지 입법예고한 ‘안보범죄 등 대응업무 규정’ 제정안에서 국정원이 ‘재판 확정 사건의 소송기록’과 ‘수사 중인 사건 및 불기소·불송치 결정 기록’의 열람·복사를 검찰청·법원, 각급 수사기관에 요청하도록 했다. ‘요청할 수 있다’가 아니라 ‘요청한다’는 의무 조항으로 했고, 요청받은 국가기관 등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따르도록 했다. 국정원이 안보 관련 사건으로만 판단하면 수사 시작부터 끝까지 자료 일체를 광범위하게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공수사는 국정원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고, 재판 절차의 독립성도 침해될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국정원은 지난 2월 경찰·검찰과 함께 출범한 ‘대공 합동수사단’을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공수사 기법 등을 공유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국정원은 이 시행령에서 ‘합동수사기구’ 등을 통해 수사에 계속 참여하고, 안보범죄 수사를 위한 유관기관 협의회를 설치해 국정원이 관장하도록 명시했다.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간 이후에도 국정원이 참여하는 상설 수사기구를 만든 뒤, 경찰을 ‘국정원 하청조직’ 삼아 지휘권·주도권을 쥐겠다는 걸로 볼 수밖에 없다. 국정원은 수사기관과의 협력을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대공수사를 경찰에 넘기라는 국정원법 개정 취지에 어긋나는 처사이다. 국정원법 개정은 시대적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국정원이 과거 대공 업무를 명분으로 인권유린, 권한남용, 국내 정보 수집 등 숱한 폐해를 낳았던 ‘빅브러더’ 시절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원 개혁을 후퇴시키고 있다. 3급 이상 고위공직자 신원조사를 명분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했고, 기업 정보 수집도 재개했다. 모두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을 금지한 국정원법 취지에 역행하는 일이다. 국정원은 국내 문제에 기웃거리지 말고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대북·해외 정보 분야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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