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3각 동맹과 가리비의 역습
[뉴스룸에서]
[뉴스룸에서] 길윤형 | 국제부장
국제부장을 맡은 뒤 지난 2년 새 가장 정신없었던 ‘한주’를 꼽으라면, 지체 없이 2023년 8월 말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한·미·일 세 나라 협력을 사실상 ‘동맹 관계’로 격상시킨 캠프 데이비드 회담(18일)과 이에 맞서는 ‘대항 축’을 만들려는 중국·러시아의 브릭스(BRICS) 정상회담(22~24일)이 이어졌고,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24일)이 시작됐다.
한·미·일 3각 협력의 동맹화는 극히 우려스럽고, 일본의 오염수 방출 역시 매우 부당한 일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지적한 문제들 대신, 좀 다른 얘길 해보려 한다. 앞으로 한국은 향후 중-일 관계의 변화를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지난 18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은 사실상 동맹으로 나아가는 첫발을 내디뎠다. 두 나라가 동맹이 된다는 것은 외부의 위협을 인지한 뒤 그에 공동 대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인식’과 ‘대응’ 사이엔 꼭 필요한 게 있다. ‘협의’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헌장(1949)을 보면, “한 나라에 대한 공격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공동 대응한다”는 집단안보 조항(5조) 바로 앞에 “안보가 위협받을 때 함께 협의한다”는 협의 조항(4조)을 두고 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1954)의 구조도 똑같다. “외부 위협에 서로 협의한다”는 2조 뒤에 상호방위 의무를 담은 3조가 따라온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세 나라는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도전·도발·위협에 대응을 조율하기 위해 협의할 것을 공약”했는데 이는 나토 헌장으로 치면 4.5조,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라면 2.5조에 해당하는 매우 중요한 선언이라 평가할 수 있다. ‘한·미·일 간 협의에 대한 공약’이라는 제목의 선언문에 조약상 강제력은 없다 하나, 한 나라 정상이 전 세계 앞에서 이 정도 약속해놓고 향후 엉덩이를 빼면 사방의 비웃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그만한 각오가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이 선언을 통해 한국 외교는 중국을 상대로 ‘루비콘강’을 건너고 만 것이다.
중국은 한·미·일의 동맹화를 매우 강하게 반대해 왔다. 그렇기에 한국은 그에 상응하는 대응을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 보통 가장 ‘약한 고리’(한국)를 희생양으로 삼기 마련인데, 때마침 매우 기묘한 상황이 발생했다. 일본이 24일 오염수 방출을 시작한 것이다. 중국 해관총서는 ‘바로 그날’ 일본산 수산물의 ‘전면 수입 금지’를 선언했고,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을 향해 “극히 이기적이고, 극히 무책임하다”고 비난했다.
일본인들이 이따금 쓰는 말 중에 ‘소테이이가이’(想定以外)라는 말이 있다. 예상치 못했다는 의미다. 만약 어떤 일본인이 이 말을 쓴다면, 진심으로 당황했거나 매우 화난 것이라 보면 틀림없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지금 ‘소테이이가이’를 되뇌며 혼연일체가 되어 중국을 비난하는 중이다.
왜 그러나 궁금해 일본 수산백서를 살펴봤다. 일본의 지난해 수산물 수출(3873억엔, 약 3조5000억원) 가운데 중국의 비율은 22.5%, 홍콩은 19.5%였다. 전체 수산물 수출 가운데 4분의 1은 판로가 ‘당장’ 막히고 또 다른 5분의 1 역시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게 된 셈이다. 단순 계산으로 어림잡으면, 일본 수산업계에 연간 1조원 넘는 피해가 예상된다. 만약, 일본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내세우며 ‘대중 포위망’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첨병으로 나서지 않았다면, 중국 역시 좀 더 너그럽게 대응했을지 모를 일이다.
중-일 간엔 앞으로 2012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사태 때와 버금가는 갈등이 이어질 수도 있다. 중국이 어떻게 공격하고 일본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또 미국은 어떤 자세를 취하고 한국엔 어떤 도움을 요청해 올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세계 2·3위의 싸움이니 쉽게 승부가 나지 않을 것이다. 당장 걱정되는 것은 일본산 가리비의 한국 폭격이다. 일본 가리비의 지난해 수출액은 911억엔(23.5%)으로 전체 수산물 가운데 단연 1위였다. 일본은 이 가운데 절반(51.3%)을 중국에 수출해 왔는데, 이제 저 가리비들을 다 어쩔 것인가.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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