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로 21세기 신냉전이 완성됐다

한겨레 2023. 8. 2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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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한-미-일 정상회의]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로렐 로지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왜냐면] 김준현 | 한신대 글로벌인재학부 겸임교수

“미국 외교의 꿈이 이뤄졌다” 지난 18일(현지시각)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 내놓은 평가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최대 걸림돌이었던 한일간 불화가 해소됐다고 봤기 때문이다. 중국을 겨냥한 자유주의 동맹이 사실상 완성됐다고 본 것이다. 그 중심에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중국을 겨냥한 자유주의 동맹은 그의 냉전 자유주의에 대한 강한 확신으로 가능할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공산 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동시에 “한미동맹은 보편적 가치로 맺어진 평화의 동맹”이며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임을 분명히 하며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이 3국 공조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공산 전체주의 세력에 대항해 한미일 자유주의 동맹이 필요하다는 점을 밝힌 셈이다. 따라서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반공의 최전선으로서 모든 역할을 다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핵 오염수 방류조차 상관없다는 자세다. 반공을 통한 국가 생존이 최대 국익이란 인식이 있어야 가능한 논리다.

미국과 일본은 환호했다. 미국 언론들은 윤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일본 강제동원 배상 관련 해법을 내놓는 등 친일 정책이 한미일 정상회담의 결정적 계기였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역시 “우리 민주주의의 결속은 강해졌다”며 한일간 문제 해결을 위한 윤 대통령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일본은 한일 관계 개선이 자국의 안보에 큰 도움이 될 것임을 숨기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이 윤 대통령의 냉전 이데올로기를 부추겨 자국의 안보와 경제에 활용하겠다는 속셈이다.

일본의 발걸음은 빨랐다. 한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사실상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승인을 받은 기시다는 귀국과 동시에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를 방문해 다핵종제거설비(ALPS) 등을 점검한 뒤 24일 후쿠시마 핵 오염수를 전격 방류하기 시작했다. 우리 정부는 한덕수 국무총리를 통해 국민에게 일본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방침에 따라 핵 오염수를 방류한다면 큰 문제가 없으며 정부와 과학을 믿어달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사실상 핵 오염수 방류 지지를 선언한 셈이다.

중국은 일본 수산물 수입 전면 금지 등 초강경 대응을 내놓았고 북한 또한 “반인륜적 행위”라며 맹비난하며 중국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가 동북아 국제 정치 게임의 한가운데로 들어온 순간이다. 한미일 자유주의 동맹에 중국이 “아시아판 나토”라며 강력 반발하고 러시아와 북한이 이에 힘을 보태면서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가 복원됐고 21세기 신냉전이 완성된 셈이다. 무엇보다 신냉전의 성격을 둘러싼 국제적 논란에도 유독 우리만 냉전 이데올로기에 갇힌 형국이다.

이번 한미일 정상회담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패권 유지가 예전과 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미국의 유럽 이니셔티브가 흔들렸고 중국의 대국굴기(큰 나라로 우뚝 선다)가 현실화되자 미국은 새로운 전략을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경제와 안보 분야에 걸친 대중국 봉쇄가 절실해졌다. 미국은 오바마 시절부터 대중 봉쇄 정책을 구체화하기 시작해 바이든 정부 들어 중국을 배제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경제 질서 수립에 나섰다. 안보적 측면에서는 오커스(AUKUS: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 동맹) 등 동맹체제를 강화하고 이번 한미일 3각 협력체를 구축함으로써 대중 봉쇄망을 완성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국내 정치는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당장 내년 치러질 미 대선에서 바이든이 재선에 성공할지 여부가 불투명하고 한국 역시 언제든 3국 협력체에서 일탈(?)할 수 있는 국내 정치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바이든이 한미일 협력체의 제도화를 강조한 이유다.

탈냉전 이후 우리의 외교전략은 ‘경중안미’(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로 일관해 왔다. 이를 통해 경제적 번영을 이뤘다. 무엇보다 정권마다 온도 차는 있었으나 대북 관여정책을 일관하며 동북아 안보를 관리해 왔다. 그런데 냉전 이데올로기에 갇힌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가치 외교’로 우리의 실용적 균형 외교가 위기를 맞고 있다. 윤 대통령의 가치외교에 미국은 반색하고 중국은 손해 볼 것 없으며 북한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기 시작했다. 냉전 이데올로기에 갇힌 윤석열 대통령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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