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3분의 1’ 된 청년 결혼 긍정자
불안한 일자리, 과도한 빚, 주거 불안…. 지금 한국 사회 청년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문제들이다. 물론 다 같지는 않다. 부모의 경제 상황에 따라 출발선이 달라진다. 가난한 청년들은 포기할 게 많다. 한번 쓰러지면 일어서기 힘드니 더 고통스럽게 스펙을 쌓아야 한다.
그들에겐 결혼도 힘겨운 선택지에 불과하다. 집값 상승은 소득 상승을 훨씬 앞지르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투자도 혼자 힘으론 어림없으니 가정을 꾸리는 문턱마저 부모 도움 없이는 넘기가 쉽잖은 것이다. 현실이 이러한데, 정부는 지난달 ‘혼인자금 증여 공제 확대’를 발표했다. 양가 부모로부터 받은 결혼자금 중 3억원까지는 증여세를 내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받을 수 있는 돈이 늘면 혼인을 더 많이 하지 않겠냐는 ‘막연한 기대’만으로 내놓은 정책인데, 그런 능력 있는 부모도 중상류층 이상이고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작용할 소지도 크다. 무엇보다 결혼을 조건으로 증여세 감면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조세 형평에 어긋난 것 아닌가.
정부가 이런 정책을 내는 걸 보고 있노라면, 이 나라에서 결혼 생각이 점점 없어지는 청년들의 현실에 수긍이 간다. 통계청이 28일 발표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를 보면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청년 비중이 36.4%에 불과했다. 10년 전보다 20.1%포인트 감소했다. 두 사람 중 한 명이던 긍정률이 3분의 1로 준 것이다. 청년들은 결혼하지 않는 이유로 ‘결혼자금 부족’을 압도적 1위로 꼽았다. 또 비혼 동거에 찬성하는 비중은 꾸준히 증가해 2022년 기준 80.9%에 달했다. 가족 형태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음은 이미 각종 조사를 통해 뒷받침됐다. 정부 지원이 여전히 ‘정상가족’ 중심에만 매여 있는 것이 문제다.
희망 없는 미래에 화난 청년들이 존재를 드러낸 지는 꽤 됐다. 하지만 청년이 끄덕이고 박수치는 정책은 쉬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간 우리 사회가 정치·상업적으로 청년의 삶을 멋대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고령화·저출생 시대, 청년들의 절망에 답하지 않고는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이젠 ‘푸른 청춘’이 되지 못하는 청년들의 ‘마음속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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