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프리고진을 죽음으로 몰았나? [강윤희의 러시아 프리즘]
프리고진 전용기 뜻밖의 추락
응징·제거에서 협상 위반까지
가설 분분, 안갯속 푸틴 진의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사망 소식은 두 달 전 프리고진 반란 사건의 자연스러운 귀결로 보인다. 바그너그룹의 핵심 인물들이 탑승했던 비행기가 추락한 것은 누가 봐도 단순한 사고로 보이지 않는다. 그간 폴리트코프스카야부터 넴초프에 이르기까지 푸틴 정권의 정적들이 여러 명 암살된 것을 고려한다면 이번 사건도 크렘린과 무관하지 않다고 의심할 만하다. “놀랍지 않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반응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프리고진 암살설에 대해 크렘린은 적극 부인하고 나섰지만 이 말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다. 러시아 정부가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지만 이 조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누가 죽였는가는 정황상의 심증으로만 남을 것이다.
왜 죽였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가능하다. 가장 단순한 설명은 배반에 대한 응징이다. 배신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푸틴 대통령의 잔혹한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지는 설명이다. 푸틴 대통령은 비행기 추락사고 희생자에게 조의를 표하면서 프리고진을 “유능한 사업가”이지만 “실수”도 저지른 복잡한 운명의 사람이라 칭했다. 여기서 실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대부분 6월 반란을 떠올릴 것이다. 즉 푸틴 대통령이 지난 반란 이후 프리고진 및 바그너그룹 대표들과의 면담과 협상을 통해 사면했지만 결국 용서하지 않고 죽였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 정치적 위협 제거다.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전에서의 성과에 힘입어 푸틴에 대한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를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했다는 것이다. 프리고진이 결국에는 푸틴에게 정치적으로 도전할 것으로 예측했다면 이런 설명이 가능하다. 더욱이 러시아가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있기에 이러한 설명이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프리고진이 텔레그램 등 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접하는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층에게서만 지지도가 높다는 점 △프리고진 적극 지지층이 전체 러시아인의 22%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 △프리고진이 러시아 전역에 영향력을 미칠 만한 정치 조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주장은 프리고진의 정치적 영향력을 과대평가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프리고진이 푸틴과의 협상 내용을 어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이뤄진 협상에서 프리고진과 바그너 용병은 벨라루스로 간다는 조건하에 사면을 얻은 것으로 보도된다. 바그너 용병의 벨라루스행은 한편으로는 국가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용병들을 러시아에서 제거하는 효과를, 다른 한편으로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나토 공격에 대비하여 취약한 벨라루스 국방력의 강화라는 효과를 가질 수 있으니, 러시아와 벨라루스 모두 윈윈할 좋은 제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프리고진은 ‘벨라루스 미션’에 만족하지 않은 듯 보인다.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리고 아프리카의 말리까지 종횡무진 다닌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유배 생활’에 충실하지 않았다. 아마도 유능한 사업가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새로운 수익성 높은 사업을 구상하지 않았나 싶다. 바그너 그룹은 2017년 이후 아프리카에 진출해서 지역 정부에 군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금광 채굴권, 벌채권 등을 얻어 큰 부를 축적해 왔었다. 프리고진의 마지막 메시지가 50도가 넘는다는 사막지대, 즉 말리와 관련됐던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프리고진-푸틴 간의 구체적인 협상 내용을 소상히 알 수 없지만 벨라루스 임무가 아프리카 임무만큼 수익성이 높지는 않았던 듯싶다.
개인 이익을 국가 안보보다 중요시하는 바그너 용병 그룹, 어찌 보면 이것은 용병 사업의 성격상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방세계와의 장기전을 치르고 있는 푸틴의 눈에는 바그너 그룹이 선을 넘은 것으로 보였을 수 있다. 프리고진 반란 직후 ‘프리고진 저택에서 돈다발과 금괴 더미들이 나왔다’는 폭로성 보도도 나왔다. 프리고진 사망 이틀 후, 푸틴 대통령이 바그너 용병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 맹세’를 요구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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