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톡톡] 그림을 닮은 정원, 영국의 풍경식 정원

진혜윤 한남대학교 회화과 조교수 2023. 8. 28.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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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풍경을 보면 "그림 같다"는 감탄사가 나올 때가 있다.

영국인들은 한 폭의 풍경화를 닮은 정원을 만들고 이를 '풍경식 정원(Landscape Garden)'이라 이름 붙였다.

영국의 풍경식 정원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야생에 가까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특징이다.

화가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이 조성한 영국의 풍경식 정원은 울타리 너머의 자연까지 정원으로 끌어들여 개방감이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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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혜윤 한남대학교 회화과 조교수

멋진 풍경을 보면 "그림 같다"는 감탄사가 나올 때가 있다. 분명 그림은 풍경을 모방한 재현물인데, 풍경이 그림 같다니. 언제부터 이런 모순된 표현을 쓰게 된 걸까. 영국에서는 이런 표현을 18세기 초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영국인들은 한 폭의 풍경화를 닮은 정원을 만들고 이를 '풍경식 정원(Landscape Garden)'이라 이름 붙였다.

영국의 풍경식 정원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야생에 가까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특징이다. 오랜 시간을 거쳐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태양왕 루이 14세의 프랑스가 선도한 엄격한 정형성과 기하학적 패턴의 폐쇄적인 정원 문화를 대체하며 18세기 후반 유럽 전역으로 전파됐다. 이러한 전환점에서 엘리트 계층의 그랜드투어(Grand Tour)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랜드투어란 쉽게 말해 유럽의 귀족과 상류층 자제들의 현장 체험 학습이다. 이들은 짧게는 한달에서 길게는 수 년에 걸쳐서 고전주의 문화유산을 직접 보고 체득하는 시간을 보냈다. 특히 고대 로마문명과 르네상스 문화가 살아 숨쉬는 이탈리아가 주된 교육장소가 됐다. 공부를 마치고 아쉬운 귀국길에 오를 때면 여행자들은 역사문화 유적지와 자연 경관을 담은 그림을 기념품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회화 속 풍경을 자신들의 영지에 실제로 구현하길 원했다. 이와 같은 요구에 부응해 탄생한 것이 바로 풍경식 정원이다.

화가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이 조성한 영국의 풍경식 정원은 울타리 너머의 자연까지 정원으로 끌어들여 개방감이 크게 느껴진다. 이러한 특징은 특히 영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17세기 고전주의 풍경화의 두 거장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 1600-1682)과 니콜라스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이 그린 아르카디아적(Arcadian) 이상향과 닮았다. 이들의 그림에 등장하는 목가적인 이상세계를 그대로 옮겨 놓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쉽게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집안에 무릉도원을 들여놓는 형태다.

이렇듯 영국의 낭만적인 정원 양식은 윌리엄 길핀(William Gilpin, 1724-1804)의 '픽처레스크(Picturesque: 그림 같은)' 미학을 통해 구체화될 수 있었다. 이를 실천한 조경가로 윌리엄 켄트(William Kent, 1685-1748)와 랜슬롯 캐퍼빌리티 브라운(Lancelot Capability Brown, 1716-1783)을 손꼽을 수 있다. 이들이 만든 픽처레스크 정원은 이후 프랑스와 벨기에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을 뿐만 아니라 동시대 시인과 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 1775-1851)의 그림 또한 이러한 흐름에서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의 작품 중 적지 않은 수가 케이퍼빌리티 브라운이 디자인한 정원으로 유명한 페트워스 하우스(Petworth House)에서 제작됐다. 페트워스 하우스는 영국 웨스트 서섹스에 자리한 컨트리하우스로 약 85만 평에 달하는 정원이 저택을 감싸고 있다. 터너는 이곳에서 케이퍼빌리티 브라운이 디자인한 정원을 배경으로 일몰이 인상적인 그림을 수십 점 제작했다. 그림에서 영향받은 정원, 정원에서 영향받은 그림, 예술은 이렇게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림 같다'는 표현이 널리 쓰이는 이유일 것이다. 진혜윤 한남대학교 회화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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