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단독 1위 이끌었던 KBO 홈런왕의 비극…이제 운명의 9월이 다가온다
[스포티비뉴스=윤욱재 기자] 비극도 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 올 시즌 롯데를 이끌던 래리 서튼(53) 감독이 끝내 지휘봉을 내려 놓는다.
서튼 감독은 27일에도 사직구장에서 열리는 KT와의 경기를 지휘하기 위해 경기장에 출근했으나 몸살 기운과 더불어 어지럼증이 발생하면서 결장하고 말았다. 롯데는 이종운 수석코치에게 임시 지휘봉을 맡겼다.
자택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한 서튼 감독은 경기 종료 후 구단에 사퇴 의사를 밝혔고 롯데는 28일 오전까지 심사숙고를 하다 이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서튼 감독이 경기를 결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7일 사직 SSG전에서도 어지럼증으로 인해 경기를 지휘하지 못한 것. 당시 오전에 병원을 다녀왔음에도 출근을 강행, 경기 전 취재진과 브리핑 시간까지 가졌지만 증세가 악화되면서 경기장을 떠나야 했다.
롯데는 28일 "서튼 감독이 건강상 사유로 감독직 사의를 표했다"라고 밝혔다. 이미 서튼 감독이 두 차례나 건강상 사유로 경기를 결장한 만큼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전쟁'에 나서는 선수들을 이끄는 사령탑이 현장에 없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롯데 관계자도 "서튼 감독이 팀에 더는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나타냈다"라고 전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병원에 갈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서튼 감독은 조만간 신변을 정리하고 출국길에 오를 예정이다. 현재 가족도 모두 한국에 입국해 함께 지내고 있다. 아직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
롯데는 29일에 열리는 대전 한화전부터 이종운 수석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겨 잔여 시즌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서튼 감독이 한국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선수 시절이던 2005년이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현대는 외국인선수 스카우트에 일가견이 있는 팀이었다. 2004년 클리프 브룸바가 타율 .343 33홈런 105타점을 폭발하고 일본 무대로 진출하자 현대는 새 외국인타자로 서튼을 영입해 그 공백을 메우려 했다. 역시 현대의 눈은 정확했다. 서튼은 2005시즌 타율 .292 35홈런 102타점을 기록하면서 홈런왕에 등극하는 파란을 연출했다.
당연히 재계약도 맺었다. 그러나 서튼은 2006년 타율 .266 18홈런 61타점에 그쳤고 2007년 KIA에서 기회를 얻었지만 타율 .274 3홈런 10타점을 남긴 것을 마지막으로 한국 무대를 떠나야 했다.
이미 한국에서 뛸 당시에도 나이가 30대 후반에 접어 들었던 서튼은 지도자의 길을 걸었고 2020시즌을 앞둔 시점에 롯데 2군 감독으로 전격 부임하면서 다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2021년 5월 허문회 감독이 물러나면서 1군 감독직을 수행했다.
평소 서튼 감독은 "롯데에 챔피언십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다. 우승이라는 절대적인 목표를 가져가는 것은 물론 지속 가능한 강팀을 만들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서튼 감독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서튼 감독 체제로 처음 144경기 풀타임 시즌을 치렀던 지난 해 롯데는 8위에 머물렀다. '레전드' 이대호까지 은퇴하면서 위기감은 고조됐다. 그러나 롯데는 유강남, 노진혁, 한현희 등 FA 3총사에 총액 170억원을 투입하면서 공격적인 투자를 했고 마침 시즌 초반부터 돌풍을 일으키면서 "올해는 다르다"라는 목소리가 모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롯데는 단독 1위로 4월 레이스를 마쳤고 파죽의 9연승을 달리면서 LG, SSG와 3강 구도를 형성하며 리그 분위기를 뜨겁게 만들었다. 지난 6월 3일 사직 KIA전에서는 노진혁의 끝내기 안타가 터지면서 승패 마진이 무려 +11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이후 롯데는 급격히 추락하고 말았다. 타선의 빈약한 파워를 득점권 상황에서의 집중력으로 메웠으나 이는 한계가 있었다. 이제 뎁스가 조금씩 두꺼워지는 과정에 있는 팀이다보니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을 대처하는 것 역시 미흡했다. 여기에 외국인선수들의 부상과 부진도 겹쳤다. 그렇다고 벤치의 용병술로 극복하는 팀도 아니었다. 나균안, 김민석, 윤동희 등 장차 롯데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선수들의 성장은 반가운 일이었지만 이대호의 후계자로 각광을 받던 한동희의 부진은 롯데 타선의 부진을 야기했다.
끝내 승패 마진 -1로 전반기를 마친 롯데는 후반기를 앞두고 외국인선수 교체카드 2장을 모두 사용하면서 승부수를 띄웠고 지난 17일 사직 SSG전을 15-4로 크게 이기고 5위 KIA를 0.5경기차로 접근, 가을야구를 향한 의지를 불태웠지만 이후 롯데는 7연패라는 시련을 맞아야 했다.
롯데는 18일 고척 키움전에서도 8회초까지 4-2로 앞서며 전형적인 '이기는 야구'의 페이스를 이어갔지만 8회말 한현희가 이주형에 역전 3점홈런을 맞으면서 4-5로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결국 롯데는 역전패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최하위에 머무르던 키움에 스윕패를 당한 것은 물론 선두 LG에 2연패, '8월 최강자' KT에 3연전을 모두 패하면서 5위 KIA와의 격차가 5경기차로 벌어지는 악몽을 피할 수 없었다. 잇따른 성적 부진은 사령탑에게도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롯데의 2023시즌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롯데에게는 아직 36경기가 남아 있다. 이제 롯데는 이종운 감독대행 체제로 새 출발한다. 이종운 감독대행은 2015년 롯데 사령탑으로 선수단을 이끌었던 경력이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2군 감독으로 롯데에 컴백, 지난 6월부터 1군 수석코치를 맡았다. 자칫 뒤숭숭해질 수 있는 팀 분위기부터 전환이 필요하다. 아직 포기할 단계는 결코 아니다.
물론 경기수는 많이 남았지만 결코 여유가 있는 입장은 아니다. 오는 9월에는 선발투수진의 주축 투수인 나균안과 박세웅이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차출되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반등할 필요가 있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9월 말에 소집할 예정. 물론 다른 팀에서도 균등하게 차출이 되지만 선발투수 2명이 한꺼번에 빠지는 롯데로서는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다시 반등할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도 분명 존재한다. 롯데는 현재 애런 윌커슨과 찰리 반즈가 외국인 원투펀치로 든든히 마운드를 지키고 있고 필승조 또한 마무리투수 김원중을 필두로 구승민, 최준용, 김상수 등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필승조와 필승조가 아닌 투수들의 격차가 큰 것이 문제이지만 분명한 승리 공식은 갖추고 있다. 타선도 '홈런 0개'인 니코 구드럼이 햄스트링 부상을 안고 가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후반기 타율 .442인 정보근이 새롭게 롯데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고 전준우, 안치홍, 정훈, 박승욱 등 고참들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연 롯데는 하루 빨리 분위기를 수습하고 반등에 성공할 수 있을까. 운명의 9월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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