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G3' 인도 시대 열리나···장밋빛 낙관보단 정교한 외교·대응전략 필요
2030년 30세 이하가 3.6억명···최대 '젊은 소비시장'
미중 대립 속 '글로벌 사우스 리더' 전략적 가치 높아
中과 경제 격차에도 애플·현대차 등 기업 앞다퉈 진출
개방도 낮은 국가주도 경제···제도 불투명성 경계해야
“인도는 성취되지 않은 위대함(unfulfilled greatness)의 나라입니다.” 평생에 걸쳐 인도의 잠재력을 믿었던 싱가포르의 국부(國父) 리콴유 전 총리는 생전 미국의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석좌교수와의 대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누구보다 인도에 우호적인 그였지만 리 전 총리의 최종 결론은 ‘코끼리’가 뛰기에 카스트제도와 관료주의, 종교 갈등의 벽이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2014년 무렵 이뤄진 인터뷰에서 그는 인도가 중국을 견제할 ‘대국’이 될 것이라는 자신의 전망이 실현되지 않을 것이며 인도는 결코 오지 않을 ‘미래의 나라(country of the future)’에 머물 것이라고 했다. 2015년 리 전 총리가 사망하기까지 인도의 시대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8년여가 지난 2023년 8월 23일. 인도가 쏘아 올린 무인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가 세계 최초로 달 남극에 착륙했다. 인도는 이제 미국·러시아·중국에 이은 네 번째 달 착륙 국가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인도가 2027년 독일과 일본을 따돌리고 세계 3위의 경제국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의 국내총생산(GDP)은 이미 지난해 영국을 제치고 세계 5위로 올라선 상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도 인도가 세계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 중 가장 높은 6.1%의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다. 인도가 미중 대립과 경기 부진, 인구 감소로 성장 동력이 약화하는 중국을 대체하는 ‘세계의 공장’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올 6월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국빈으로 초청해 환대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모디 총리의 프랑스 방문에 맞춰 인도를 “세계사의 거인”이라고 추켜세웠다. 올 9월 열리는 뉴델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의장국을 맡은 인도가 국제사회에서 한층 목소리를 키우며 세계 주요국 반열에 오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보르게 브렌데 세계경제포럼(WEF) 이사는 최근 인도에서 개최된 한 서밋에서 “인도가 미국·중국과 함께 새로운 국제 질서를 주도할 것”이라며 주요 3개국(G3)의 새로운 글로벌 리더십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침내 ‘인도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기대가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인도가 국제사회의 ‘총아’로 떠오른 것은 세계 1위 인구 대국의 폭발적 잠재력에 대한 기대감이 큰 몫을 했다. 유엔에 따르면 인도 인구는 올 4월 약 14억 2577만 명으로 중국을 넘어선 데 이어 2050년에는 16억 7000만 명으로 불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 인구가 지난해 14억 2600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평균연령 29세의 ‘젊은 나라’ 인도는 늘어나는 생산 가능 인구 덕에 경제가 성장하는 ‘인구 보너스 효과’를 가장 크게 누릴 수 있는 나라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2030년 인도가 30세 이하 소비자 3억 5700만 명을 거느린 세계 최대의 ‘젊은 소비 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제조업 육성과 경제 부흥에 대한 모디 정부의 강력한 의지도 인도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2014년 카스트 하위 계급 출신으로 인도 총리직에 오른 모디 총리는 과거 북서부 구자라트주에서 14년간 총리를 지내면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제조업 육성으로 주 경제의 고속 성장을 이끈 인물이다. 성장 위주의 친기업 경제정책과 부패 척결을 앞세운 그는 서비스업 중심의 경제 시스템을 제조업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 10년째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을 펴고 있다. 반도체·배터리·자동차·휴대폰 등 제조 분야에 보조금을 집중 지원하는 ‘생산연계인센티브(PLI)’ 제도가 핵심이다. 달리는 ‘코끼리’에 올라타기 위해 애플이 지난해부터 인도에서 최신 아이폰 생산에 돌입했고 테슬라도 ‘반값 전기차’의 생산 거점으로 인도를 타진하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과 AMD, 대만 폭스콘 등 반도체 기업들 역시 인도 투자를 결정했다. 산자나 조시 인도 국제경제관계연구위원회(ICRIER) 선임연구원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인도가 ‘차이나 플러스 원’의 선택지 중 하나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기업 분위기가 ‘인도에 거점을 둬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자신했다. 지지율이 70%를 넘는 모디 총리는 내년 총선에서 3연임에 성공하며 인도 경제 활성화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라는 국제 정세의 흐름이 국제사회에서 인도의 전략적 가치를 끌어올렸다. 미국 등 서방과 중국·러시아의 진영 대립이 심화하면서 두 세력 사이에서 중립적 외교 노선을 취하며 실리를 추구하려는 개발도상국들, 일명 ‘글로벌 사우스’의 존재감이 부쩍 커졌다. 그 리더 격인 인도 포섭은 신냉전 구도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특히 미국은 중국과 오랜 국경 분쟁을 겪고 있는 인도를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파트너로 꼽으며 특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재편에서 인도가 큰 혜택을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인도에서 제트기 엔진 제조 합작에 나서고 반도체 기업들이 인도에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첨단 기술 협력을 강화하는 데는 지정학적 이유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을 편 지 10년이 돼가지만 인도 경제에서 제조업 비중은 2014년 15%에서 지난해 13.3%로 오히려 후퇴했을 정도로 정책은 실질적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도가 ‘포스트 차이나’ 생산 기지로 각광받게 된 것은 미중 갈등의 반사이익이라는 측면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조시 선임연구원은 “지정학과 경제학의 결합이 인도를 보다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물론 인도 경제의 앞날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인도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현재’가 아닌 ‘미래’에 초점을 둔 기대라는 것이다. 리 전 총리의 지적대로 인도는 늘 ‘미래의 나라’였다. 1991년의 경제개혁과 시장 자유화 선언 이후에도 국제사회는 인도발(發) ‘경제 기적’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이에 부응하지 못했다. 인도가 ‘차이나 플러스 원’을 넘어 중국을 대체할 수 있다는 기대 역시 실현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앨리슨 교수는 최근 미국 외교 매체 포린폴리시를 통해 중국의 5분의 1 수준으로 격차가 벌어진 경제 규모, 낮은 생산성, 높은 빈곤율 등을 근거로 인도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폈다. 낙후한 인프라, 민족·종교 간 갈등, 문맹률 22%의 낮은 교육 수준 등은 여전히 열악한 인도의 현실이다. 아무리 젊은 인구가 넘쳐나도 ‘양질의 노동력’이 많지 않다면 인구 보너스 효과를 제대로 누리기는 쉽지 않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 재정수지·무역수지의 쌍둥이 적자와 수십 년간의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인도 경제의 취약점이 크게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강성용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남아시아센터장은 “인도에 대한 세계적 기대는 중국의 전체주의에 맞선 민주주의 체제의 우위를 강조하기 위해 미국이 만들어낸 거품”이라며 “인도의 역량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인도가 중국을 따라잡거나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에는 현실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민주주의국가이면서도 비(非)시장적 경제정책과 비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해지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이달 초 인도 정부가 자국 내 생산을 늘리겠다는 목적으로 돌연 노트북과 PC·태블릿 수입을 제한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강 센터장은 “인프라에 투자하고 제조업을 육성하려면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데 전국 각지에서 365일 선거가 치러지는 나라이다 보니 세수 확보가 안 된다. 결국 관세를 올려 외국 기업들을 상대로 세수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시사지 타임도 “인도 경제가 고속 성장을 이어가려면 주요 국가 및 경제블록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관세와 반덤핑 장벽을 동원한 보호무역주의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도의 잠재력이 마침내 폭발할까. 아니면 또 한번의 실현되지 않는 기대로 끝날까. 아직 예단하기는 이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중국 리스크가 고조될수록 인도의 지정학적·경제적 중요성도 더욱 커진다는 점이다. 중국 공장을 축소하는 현대차그룹이 제너럴모터스(GM) 인도법인 공장 인수에 나섰다는 소식은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사업 전략에서도 인도가 중요한 한 축이 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김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인도남아시아팀장은 “인도는 전략적 위상과 시장의 성장성, 경제 협력의 잠재력 등을 고려할 때 중요성은 확실한 나라”라면서 “다만 중국과 인도의 경제 격차 때문에 인도가 중국 생산 기지를 대체하는 것은 먼 미래의 얘기”라고 진단했다.
인도는 중요하지만 쉽지 않은 나라다. ‘포스트 차이나’의 장밋빛 전망과 열악한 빈국이라는 편견을 거두고 보다 치밀한 대(對)인도 전략을 짜야 하는 이유다. 김 팀장은 “인도는 자국에 투자하고 현지에서 생산하라는 입장인 만큼 한국이 획기적으로 수출을 늘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투자와 기간산업 협력 분야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도의 제도적 불투명성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말아야 한다. 강 센터장은 “인도는 개방경제가 아닌 국가 주도 경제”라며 “지역 패권국으로서의 자존심이 강한 인도가 국수주의를 타고 해외 기업들의 뒤통수를 치기 시작한다면 중국보다 더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경고했다.
신경립 논설위원 klsi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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