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이유로 수사·재판 기록 보겠다는 국정원…검수원복에 이은 국수원복?

강연주·이혜리 기자 2023. 8. 2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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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청사. 국정원 제공

국가정보원이 대공수사권 폐지를 앞두고 수사에 준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행령 제정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시행령은 국정원이 업무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수사·재판 기록에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사건 관련자가 소지하고 있는 물품을 ‘임의제출’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국정원은 정보 수집 업무를 지속하고 유관기관과의 정보 공유를 지속하기 위해 시행령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한 입법 취지를 무력화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정원은 대공수사권 폐지를 앞두고 잇따라 관련 법령의 제·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국정원장의 정보사범 신병처리 권한을 일부 축소하는 ‘정보 및 보안 업무기획·조정규정(대통령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지난달 12일부터 지난 21일까지는 검찰과 경찰이 진행 중이거나 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수사·재판 기록에 국정원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안보범죄 등 대응업무규정(대통령령)’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안보범죄 등 대응업무규정’이다. 해당 시행령 제정안 6조는 재판에서 확정된 사건의 소송기록뿐만 아니라 수사 중인 사건과 불송치·불기소 결정된 사건 기록도 국정원이 받아볼 수 있도록 돼 있다. 국정원은 이 시행령 6조 3항에 수사 및 재판 기록의 열람·복사 요청을 받은 국가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요청에 따라야 한다’는 의무 조항도 명시했다.

유류물 및 임의제출물 수거 조항을 명시한 시행령 제정안 4조도 문제로 꼽힌다.이 조항대로라면 국정원은 수사권이 폐지된 이후에도 정보 수집 과정에서 관련자가 소지하고 있는 물품을 임의로 제출받아 보관할 수 있다. 유류물이나 임의제출물이 북한에 대한 정보 활동일 경우 국정원장이 별도로 처리 방법을 정할 수 있다. 시행령 제정안 8조는 ‘수사기관과의 협력’을 목적으로 합동수사기구 또는 수사기관에 국정원 직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국정원은 정보 수집 및 안보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들을 시행령 제정안에 담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민사회에서는 ‘수사권’에 준하는 권한이 제정안에 담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달 26일 국정원에 의견서를 내고 시행령상 ‘수사기관에 열람 또는 복사를 요청한다’는 문구를 ‘각급 수사기관에 열람 또는 복사를 요청할 수 있다’로 수정할 것 등을 권고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시행령 조항 상당수를 개정하거나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정원에 전달했다. 민변은 의견서에서 ‘시행령상 국정원이 수사·재판 기록에 접근할 수 있는 범위가 포괄적이라 수사절차의 객관성과 재판절 차의 독립성을 침해할 위험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또 국정원 직원을 수사기관에 참여하도록 한 조항에 대해 ‘일부 삭제’ 의견을 제시하면서 “정보활동은 국가비밀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수사활동은 수사기관인 경찰이 각각 담당 하도록 하는 국정원법의 취지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임의제출물 수거 조항(시행령 4조)에 대해서는 “국정원이 자의적으로 정보나 물건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며 조항을 일괄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

국정원의 권한남용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장동엽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간사는 28일 “이명박 정부 시절 정부가 홍보수석실을 중심으로 국정원에 특정 사안을 지시하고 보고받은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며 “국정원의 권한을 규제하는 조항이 보다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정원의 수사·재판 기록의 열람 요청은 수사권을 폐지한 이상 행사해서는 안 되는 권한이며, 임의제출 수거 관련 권한은 (물품에 대한 국정원의) 사전 제출 요청을 전제하므로 법률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정원 측은 “해당 법령 제정안은 국가정보원법상 위임 규정에 따라 직무수행 관련 내용을 구체화한 것”이라며 “안보범죄등에 대한 국가정보원법상 확인·견제·차단 등의 대응조치를 위한 규정”이라고 해명했다. 수사·재판 기록을 열람할 수 있게 한 것을 두고는 “안보범죄 등의 징후를 포착할 시에 과거 사건과의 유사성 및 연계성 등을 확인하는 대응조치의 일환”이라고 했다.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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