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한국술 탐방 | 안동소주협회 초대 회장 맡은 박성호 맹개술도가 이사] “안동을 ‘한국 증류주 메카’로 만들겠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2023. 8. 2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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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안동소주협회 초대 회장현 맹개술도가 이사 사진 박순욱 기자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생산이 시작된 것은 1494년이지만, 안동소주는 그보다 200년 앞선다. 그만큼 우리의 증류주 기술이 유럽보다 앞섰다. 안동소주는 ‘세계 명주’라 부르는 스카치위스키, 중국 백주, 일본 사케와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전통술인데, 저평가됐다.

스카치위스키가 오랜 기간 세계적인 위스키로 전 세계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라벨, 지리적 표시제 등 10가지가 넘는 자체 규정을 만들어 까다로운 생산공정과 블렌딩을 통해 엄격한 품질관리를 거치기 때문이다. 700년 역사의 안동소주 역시, 안동소주가 지닌 문화적 가치와 우수한 품질을 인증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고 이를 엄격히 적용해, 대한민국 대표 전통주로 소비자의 신뢰와 인지도를 확보하고 더 나아가 세계적인 명주로 발돋움시킬 계획이다.”(경상북도 이철우 도지사)

경상북도(이하 경북도)가 안동소주 세계화를 위해 총 114억원을 투자하고, 우선 2026년까지 48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안동이라는 지역명과 한국의 대표적 증류주인 소주가 결합된 안동소주는 지역 소주로 명맥이 이어오고 있는 흔치 않은 경우다. 한산소곡주, 진도홍주 등이 안동소주와 유사하게 지역명이 술과 결합된 경우다.

외국의 경우는 지역명을 내세운 사례가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스카치위스키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생산, 3년 이상 숙성 등의 규정을 지킨 위스키에만 스카치위스키라는 이름을 허용하고 있어, 스카치위스키는 고급 위스키의 대명사로 통한다. 샴페인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곳곳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지만,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만드는 스파클링 와인에만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허용한다. 그래서 샴페인이라는 이름만 붙어도 ‘고급 스파클링 와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2023년 안동소주는 어떤가. 안동소주라는 이름만으로 전통주 업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증류주’로 대접받고 있을까. 현재 안동소주의 위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우선, 젊은 소비자는 안동소주를 ‘꼰대 술’이라며 외면한다. 전부는 아니지만, 도자기 병을 고수하고 있는 제품이 여전히 많은 데다 누룩 향이 강하고 탄내(소주는 열을 가해 증류하기 때문에 탄내가 날 수 있다)가 난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안동소주의 해외 성적은 더 초라하다. 안동소주가 ‘세계화의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스카치위스키에 비해 그렇다는 얘기다. 스카치위스키 총수출액은 2018년 기준 7조1400억원에 달하며, 연간 200만 명의 관광객이 위스키 투어에 참가하는 등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안동소주는 2022년 총수출액이 6억원에 그쳤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경북도가 나서서 안동소주의 품질과 소비자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인증제를 도입하기로 하는 등 ‘안동소주 세계화’에 앞장선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경북도는 최근 안동소주 세계화 추진단을 결성하고, 안동 지역에서 술을 제조하고 있는 9개 양조장을 회원으로, 안동소주협회를 새로 발족시켰다.

경북도 이철우 도지사는 이들 중 안동 지역 6개 양조장 대표와 함께 지난 2월 영국 스코틀랜드를 방문, 스카치위스키협회 관계자들을 만나 양국 전통주 협회 간 교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안동소주협회 회원사들은 박성호 맹개술도가 이사를 초대 회장으로 선출했다. 박성호 신임 회장은 농부 출신 양조인이다. 2007년 지금의 맹개마을에 정착, 9만9000㎡(약 3만 평) 밀농사를 지어오다 직접 기른 유기농 밀로 술을 빚어, 2019년 안동진맥소주를 내놓으면서 술 양조에 뛰어들었다. 다음은 박성호 안동소주협회장과 일문일답.

경북 안동에는 안동소주란 이름을 쓰는 양조장이 8곳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일품 안동소주, 로얄 안동소주(법인 명은 유토피아), 안동 진맥소주(법인 명은 밀과노닐다), 민속주 안동소주, 회곡 안동소주, 올소 안동소주(법인 명은 버버리찰떡), 느낌 안동소주(법인 명은 명품안동소주), 명인 안동소주. 이들 8개 양조장 외에 안동 농암종택 종부가 안동소주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일엽편주(탁주, 약주, 소주) 브랜드로 술을 빚고 있어 총 9개 양조장이 안동소주를 빚고 있다. 사진 밀과노닐다

안동소주협회 설립 취지는.
“안동소주협회는 안동소주 업계 상호 간의 협력과 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한 마케팅을 돕는 것이 우선이지만, 무엇보다 장기적 숙제로, 안동소주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작업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안동소주의 규약 제정 및 품질 인증제 도입, 나아가서 지리적 표시제 시행이 안동소주협회 결성의 1차 목표다.”

지리적 표시제란 무엇인가.
“지리적 표시제는 장기적으로 브랜드 보호 목적도 있지만, 더 중요하게는 안동소주란 브랜드를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다. 지리적 표시제는 단순하지 않다. 특히 품질 규정이나 제조 방법, 사용 원료나 브랜드 사용 방법까지 규정해야 한다. 결국 품질 면에서 최소한의 규정을 꼭 지켜야 하고, 이것이 소비자 신뢰와 브랜드 가치 강화로 이어진다. 결국 마케팅의 기본을 시작하는 일인 셈이다. 많은 제조자가 안동소주란 브랜드를 쓰고 싶어 하고, 많은 소비자가 안동소주 브랜드 술을 찾게 되는 시작점에는 엄격한 지리적 표시제 도입이 선행돼야 한다.”

지리적 표시제와 경북도가 추진하고 있는 ‘도지사 인증 기준’은 서로 부딪히지 않나.
“경북도가 준비하고 있는 인증 제도와 지리적 표시제는 사실 같은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지리적 표시제가 도입되고, 그 품질 기준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이미 안동소주란 브랜드를 남용하고 있는데, 신생 협회가 새 규정 미달이라고 기존 생산품을 금지하기는 어렵다. 그에 대한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

하지만 품질 규정을 만들고 그 기준에 맞는 인증을 주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쉽지 않은 길이고, 반발이 예상되는 고난의 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안동소주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엄격한 원료 규정부터 전반적인 품질관리가 곧 브랜드 관리이고 소비자 신뢰도를 높이는 지름길이지 않겠나.”

그동안 각자도생하던 안동소주 업체들이 협회 결성을 계기로 ‘경쟁적 협력 관계’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안동소주 업체들은 그동안 안동소주의 유명세에 힘입어 각자의 방식으로 생산, 판매를 해왔다. 그러나 지금 전통주 시장은 안동소주에 대해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품질 규정 없이 난립해 온 안동소주는 국내외에서 저가, 저품질 경쟁에 나섰고, 브랜드 훼손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협회 결성을 계기로 지자체의 다양한 지원, 단일화된 협상 창구인 협회를 통해 안동소주 위상 제고를 위한 마케팅에 기대하고 있다.”

협회 회원사들은 최근 일본과 영국 스코틀랜드를 다녀왔다. 안동소주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었나.
“스코틀랜드와 일본의 증류주 시장은 오랜 세월 쌓아온 자율 규약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강력한 지리적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브랜드 가치를 만드는 것을 짧은 순간에는 할 수 없지만, 이번에 얻은 교훈은 지금부터라도 안동소주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디딤돌(교두보)을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안동소주가 스카치위스키보다 출발이 200년 앞섰다고 하지만 지금의 스카치위스키 브랜드 가치를 만든 주역인 스카치위스키협회가 생긴 것은 1942년이다. 올해 발족한 안동소주협회보다 80년 앞선 셈이다. 그에 비하면 안동소주협회는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신생아나 다름없다. 서두르지 말고 멀리 내다보며 안동소주 브랜드를 높이는 작업을 차곡차곡 해나갔으면 한다. 안동소주 세계화의 성공 여부는 9개 회원사의 결단과 실천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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