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준의 돈 이야기 <28>] 인플레이션 이해하기
인플레이션(Inflation·물가 상승)은 공기를 불어 넣는다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inflare)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전반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물가가 상승함과 동시에 화폐 가치가 하락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자동차의 연료탱크를 채우거나 우유 1.5L를 사거나 머리를 자르는 데 종전보다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은 우리의 생활비를 증가시킨다. 물가가 오르면 같은 돈을 주고도 물건을 조금밖에 못 사게 되므로 우리 지갑이 더 얇아지고 생활수준은 더 낮아진다.
현재와 과거의 화폐가치를 비교하면 인플레이션이 화폐의 구매력을 감소시켰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서울 시내버스 요금이 1971년 10원에서 2020년 1300원으로 올랐다면, 50년 사이 생활필수품 가격은 대략 130배 오른 것이고 원화 가치가 130분의 1로 떨어진 것이다. 5년마다 기준년을 바꾸는 물가지수를 통하지 않고도 이러한 단순한 사례를 통해 화폐가치의 변화 정도를 비교적 쉽게 가늠해 볼 수 있다.
수요가 문제일까, 공급이 문제일까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을 발생 원인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수요 견인(demand-pull) 인플레이션이다.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은 상품 수요가 상품 공급을 초과할 때 발생한다. 사람들이 갑자기 콩나물을 더 많이 사 먹기 때문에 콩나물 가격이 오른다는 것이다. 2022년 코로나19 해제 이후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바로 이것이다. 코로나19 격리 기간 중 연방정부가 지급한 넉넉한 생활보조금을 코로나19 해제 이후 미국 국민이 사용하면서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비용 인상(Cost-push) 인플레이션인데, 공급에 문제가 발생해 물가가 인상되는 경우를 가리킨다. 콩값과 수도세가 올라서 콩나물 가격이 오른다는 것이다. 2022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달러가 강세를 보이자, 달러로 결제되는 석유, 농산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원화 약세(달러 강세)로 수입품(원자재) 가격이 인상되고, 이로 인해 다시 국내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면 이것에 해당한다.
어떤 사람은 내장(built-in) 인플레이션을 세 번째 원인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것은 미래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고려한다. 물가가 오르면 노동자들은 실질임금을 보존하기 위해 임금 인상을 주장하게 되고, 임금이 인상되면 기업의 생산 비용이 높아지기 때문에 다시 물가가 오른다는 것이다. 콩나물 공장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서 콩나물 가격이 오른다는 것이다.
소비자물가·개인소비지출물가·핵심물가지수
인플레이션은 지수(index number) 형식으로 측정된다. 지수란 기준시의 수치를 100으로 놓고 그 이후의 변화를 백분율로 표시한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1965년(기준시, 물가지수 100)에 비해 1966년 물가가 10% 상승했다면 물가지수는 110이 되고, 물가 상승률은 10%가 된다. 2023년 8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1.20으로 6월에 비해 0.1% 상승했다.” 여기서 111.20은 기준년인 2020년에 비해 물가가 11.2% 상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금 인상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3년 반 만에 월급이 약 11.2% 감소한 것이다.
물가지수는 통계기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여러 가지 상품 품목을 가상의 바구니(basket) 안에 집어넣고 그 바구니 전체의 가격 변동성을 측정한다. 그 바구니에 어떤 물건을 넣느냐에 따라 소비자물가지수(CPI), 개인소비지출(PCE)물가지수, 핵심(core)물가지수 등으로 구분한다. 이하에서는 전 세계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미국을 중심으로 설명하기로 한다.
CPI는 가정에서 소비하기 위해 구매한 주요 상품 및 서비스의 가격 변동을 나타낸다. 가계가 지불하는 사용료(예: 상하수도 서비스)와 물품소비세(부가가치세)도 포함하되, 소득세 및 투자 항목(예: 주식, 채권 및 생명보험)은 포함하지 않는다. CPI를 계산하는 데 사용되는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은 미국 전역 2만3000개의 소매 시설(마트)에서 수집된다. 임대료에 대한 데이터는 약 5만 명의 집주인 또는 세입자로부터 수집된다. 다만 8만개의 조사 대상 품목에 대해 동일한 가중치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가계의 전체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가중치를 달리 부여한다. 미국에서 CPI는 노동통계청(BLS)이 작성한다.
미국 경제조사국(BEA)이 작성하는 PCE 물가지수는 비교적 최근 미국 연준이 물가 안정 목표의 판단 지표로 선택하면서 유명해졌다. 2012년 1월 15일 미 연준은 인플레이션 주요 지표로 PCE를 사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과거에 사용해 오던 CPI에 비해 PCE가 소비자의 행동 변화를 더 잘 반영할 수 있고, 보다 포괄적인 지출 목록이 포함되며, 과거 데이터의 수정이 용이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달리 말하면 물가 바구니에 담는 상품 품목을 유행에 따라 바꿀 수 있고, 생활필수품이 아닌 사치재도 포함할 수 있으며, 과거 데이터의 시계열 조정(조작)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2012년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 때문이다. 2012년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수습을 위해 제3차 양적 완화를 앞둔 시점이었고, 연준이 정상 상황의 두 배 이상의 본원통화를 방출한 탓에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물가가 급등하던 시점이다.
2013년 7월 세인트루이스 연준 은행장(president)인 제임스 불러드는 “1995년 두 지수를 모두 100으로 설정한 후 2013년 5월 측정한 결과, CPI는 PCE보다 7%포인트 이상 높게 나타났다”고 말한 바 있다. PCE가 CPI보다 낮게 나타나기 때문에 연준의 물가 안정 목표 관리가 보다 수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핵심(core)인플레이션이란 CPI와 PCE의 헤드라인(전체) 지수에서 변동성이 큰 석유 및 농산물 가격을 제외한 것을 말한다. 원자재 시장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매우 크고, 미국인은 여름휴가철에 자동차를 몰고 전국 각지로 이동하기 때문에 봄이 되면 휘발유 가격이 급등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미국 달러 가치의 변화는 석유와 원자재 가격의 변화에 영향을 준다. 물가지수의 거품을 제거하고 실질 인플레이션에 대한 정확한 밑그림을 그려보고자 핵심인플레이션을 작성하는 것이다.
연준과 연방정부의 기호
현재 미 연준은 핵심 PCE 인플레이션율을 연준의 2% 목표 인플레이션율과 비교해 통화정책을 결정한다. 통상적으로 핵심 PCE 인플레이션율이 2% 미만이면 연준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낮추려 하고, 2% 이상인 경우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연방정부는 헤드라인(전체) CPI를 기준으로 재정 정책을 실행한다. 연방정부는 CPI를 기준으로 사회보장 지출 금액과 소득세를 조정한다. 물가 상승분을 반영해 사회보장 수혜 금액을 증액하고, 물가 상승으로 인한 세율 인상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CPI는 수백만 명의 푸드 스탬프(무상급식) 대상자와 어린이들의 수혜 자격에 영향을 미친다. 사기업과 개인은 CPI를 기준으로 임대료, 위자료, 자녀 양육비를 조정하며, 노조는 CPI에 연동해 임금 인상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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