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IRA 1년] 롤러코스터 타는 미·중 관계, 갈등 재점화되나 | 바이든 “中 경제 시한폭탄”…대중국 반도체·양자·AI 투자 규제
미국 조 바이든 정부가 배터리·반도체 등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만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칩과 과학법(칩스법)’이 시행 1주년을 맞은 8월 중국을 상대로 또 하나의 칼을 꺼내 들었다. 미국이 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대(對)중국 투자까지 제한하기 시작한 것이다. 올 상반기 미 고위급 관료의 잇단 방중으로 미·중 관계의 해빙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갈등의 불씨가 재점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이 거세게 반발하는 가운데, 미국은 한국과 일본 등 주요 동맹국에 제재 동참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8월 9일(이하 현지시각) 사모펀드, 벤처캐피털(VC) 등 미국 자본이 중국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양자컴퓨팅 등 3개 분야에 투자하는 것을 규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해당 분야에서 중국에 투자하려는 기업들은 사전에 투자 계획을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투자 금지 등의 결정은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내린다.
이번 행정명령에 대해 중국은 즉각 “미국이 무역과 과학기술 이슈를 무기화하려 국가 안보를 남용하는 데 반대한다”라며 “중국의 권익을 보호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8월 11일에는 미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규칙 위반 사항들을 정리한 보고서를 공개하며 “미국은 다자무역체제의 파괴자”라고 비판했다. 중국은 작년 12월에도 “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IRA가 WTO 규정에 위반된다”며 “미국의 이중 기준과 따돌림 행위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투자 업계에서는 이번 바이든 정부의 규제가 중국에 치명적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AI와 양자컴퓨터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후발주자인 중국이 미국 자본 없이 기술 발전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조지타운대 연구에 따르면 미국 투자자들은 2015~2021년 중국 AI 스타트업에 총 402억달러(약 53조5102억원)를 투자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중국 AI 기업들이 유치한 전체 투자금(1100억달러)의 37%에 달한다. 중국이 지난 수십 년간 구사해 온 ‘시장환기술(市場換技術·시장을 내주고 기술을 취하는 것)’ 전략에도 지장이 생길 전망이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부터 중국산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등 중국을 노골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다. 바이든 정부도 지난해 8월 IRA를 도입하고 중국의 첨단 반도체 산업 발전을 견제하는 대중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하하는 등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전략을 추진해 왔다.
미국이 대중국 전략 수위를 조절하기 시작한 것은 5월 21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 직후 바이든 대통령이 “미·중 관계가 조만간 해빙될 것으로 믿는다”고 발언한 이후다. 옐런 장관은 6월 13일 “디커플링은 큰 실수이며 재앙이 될 것”이라며 “디리스킹(de-risking· 위험 제거)은 맞지만, 디커플링은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후 미·중 관계는 6월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과 7월 옐런 재무장관 등 잇단 고위급 방중 등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미국의 추가 규제와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으로 다시 틀어질 위험이 생겨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8월 10일 “중국 경제는 시한폭탄”이라며 “악당들(bad folks)은 문제가 생기면 나쁜 일을 한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조치는 미국 자본의 중국 투자를 막으려는 것인 만큼 한국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에도 어떠한 형태로든 동참 압박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8월 18일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국인 한국·일본과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에 대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유사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결 포인트 1
미국의 中 견제, ‘자충수’ 될까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미국 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까.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8월 10일 “바이든 대통령의 중국에 대한 전략은 효과가 없다”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은 여전히 핵심 원자재 공급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라며 “대미 수출이 확대된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으로부터 중간재 수입을 크게 늘린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대중 정책의 혜택을 받은 멕시코는 지난 5년간 중국에서 수입하는 자동차 부품 양을 두 배로 늘렸다.
미국산 농산물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 심화는 양국 관계 악화가 미 농가에 타격을 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미국은 중국 경제의 불안이 미국 경제에 위험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8월 14일 옐런 장관은 “중국 경제성장의 둔화는 이웃 아시아 국가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미국에도 어느 정도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미국 경제 전망을 좋게 보지만, 중국 경제 문제는 리스크 요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연결 포인트 2
라이칭더 대만 부총통 ‘美 경유’에
반발하는 중국
대만 집권 민주진보당의 차기 총통 유력 후보인 라이칭더(賴清德) 부총통은 8월 12일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특사 자격으로 대만의 유일한 남미 수교국인 파라과이의 산티아고 페냐 팔라시오스 신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위해 6박 7일 일정의 파라과이 방문길에 올랐다. 출국길에는 뉴욕을 귀국길에는 샌프란시스코를 각각 경유했다. 라이 부총통은 뉴욕을 경유하는 중 한 연회에 참석해 “전체주의가 위협의 힘을 키운다고 해서 절대 두려워하고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만 문제를 국내 문제로 간주하는 중국은 라이 부총통의 외교적 행보에 분노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라이 부총통의 미국 입국 후 “라이 부총통은 대만 독립이라는 분리주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전면적 문제아”라며 “주권과 영토 보전을 위해 단호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중국은 8월 13~14일 중국인민해방군 군용기 6대와 군함 6척을 대만해협에서 훈련시키며 군사 압박을 가했다.
연결 포인트 3
中·日, 관계 안정화 시도 9·11월
정상회담 추진
중국과 일본 정부는 9월과 11월 국제회의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한다. 미·중 패권 다툼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이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과 관계 안정화를 도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도 올해 일·중 평화 우호조약 체결 45주년을 맞아 양국 간 고위급 대화 기회를 모색해 왔다.
8월 12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양국 정부는 9월 인도에서 개최되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과 기시다 총리의 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11월 미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맞춰 중·일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에 대한 동참 압박에 일본 경제산업성은 7월 23일 첨단 반도체 분야 23개 품목을 수출규제 대상에 추가한 ‘외환 및 외국 무역법’ 성령(시행령)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7월 24일 일본의 조치에 대해 “중국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선례를 맹목적으로 따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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