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세상만사 <8>] UAE 경제·외교력 총동원, 아프리카서 영향력 확대
대한민국의 80% 면적에 1000만 명의 인구로 이뤄진 아랍에미리트(UAE)는 21세기 들어 우리에게 매력적이며 미래의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모델로 여겨져 왔다. UAE는 일찌감치 원유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해 과감한 규제 폐지를 통해 대규모 해외투자를 유치해 중동 지역의 경제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입지와 국가 차원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에미레이트 항공, 에티하드 항공은 세계 최대 규모의 항공사로 성장했다. 두바이는 이제 중동을 넘어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핵심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시작된 이후 UAE는 러시아에 서방을 대체할 무역 파트너로 부상하면서 연간 100만 명 이상의 러시아인이 방문하고 있다. 누구도 적으로 만들지 않고 아쉬운 면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면서 UAE는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아프리카 FDI 늘리는 UAE
최근 UAE는 자국의 영토 범위를 넘어서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특히 아프리카 지역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UAE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오만, 쿠웨이트, 바레인과 걸프협력회의(GCC)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 국가들은 아프리카에 대한 가장 큰 외국인 직접투자(FDI)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대륙과 달리 지속적인 인구 증가로 인해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큰 아프리카의 인프라, 에너지, 운송, 물류 및 기술 등 고성장 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아프리카에 이뤄진 외국인 직접투자 가운데 UAE의 투자 규모는 총 594억달러(약 79조원)에 달해 사우디아라비아(256억달러·약 34조원), 카타르(72억달러·약 9조5000억원), 쿠웨이트(50억달러·약 6조6000억원), 바레인(42억달러·약 5조5000억원)을 크게 웃돌았다. UAE는 앙골라, 케냐,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탄자니아 등 6개 국가와 교역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UAE는 특히 물류 부문에 대한 투자 확대에 주력하고 있는데 두바이의 대표적인 물류 기업인 DP월드(DP World)는 지난 10년 동안 아프리카에 18억달러(약 2조3000억원) 이상을 투자했으며 향후 30억달러(약 3조9000억원)를 추가로 투자할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모리타니, 부르키나파소, 차드, 말리, 니제르를 포함하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사헬(G5 Sahel)에 대해서는 인도적 지원과 경제원조 등을 확대하고 있다.
인도·중국과 협력…사우디와는 갈등도
UAE는 아프리카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인도, 중국과도 협력하고 있다. 특히 인도와 협력은 두드러진다. 인도는 현재 UAE의 두 번째로 큰 무역 파트너이며 UAE는 인도의 세 번째로 큰 무역 파트너다. 최근 인도와 UAE는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을 체결하면서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아프리카 투자에 있어 인도와 UAE 간 긴밀한 협력의 대표적 사례는 탄자니아의 수도인 다르에스살람을 선도적인 교통 및 물류 허브로 전환하려는 수십억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다. UAE와 인접한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지부티, 에리트레아 등의 지역에 대해서는 이곳에 전략적 이해관계가 있는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UAE의 영향력 확대는 이곳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곳이 수단이다. 홍해와 접하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대규모 금 생산국인 수단에 대해 UAE는 136억달러(약 18조원) 이상을 항만과 농업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으며, 사우디는 인프라와 광업을 중심으로 240억달러(약 32조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경쟁하고 있다. 양국의 경쟁은 단순히 경제적 차원을 넘어서 대리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4월 수단에서 발생한 쿠데타는 정규군과 무장단체인 RSF와 갈등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사우디는 정부군을 지원하는 데 비해 UAE는 러시아의 민간 군사 기업인 바그너그룹을 통해 RSA를 지원하면서 대립하고 있다.
UAE로 향하는 아프리카 ‘금’
아프리카에 대한 UAE의 영향력 확대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는 ‘금’이다. 아프리카에서 생산된 금은 대부분 UAE로 향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비공식, 불법적 요소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은 대량의 금이 아프리카에서 UAE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2020년 유엔(UN) 무역 데이터에 따르면 UAE가 신고한 아프리카로부터의 금 수입량과 아프리카 국가들이 UAE에 수출했다고 밝힌 금액 사이에는 최소 40억달러(약 5조3000억원)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대량의 금이 불법적으로 채굴돼 어둠의 경로로 UAE로 흘러들고 있는 것이다.
수단과 더불어 나이지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짐바브웨, 말리, 가나, 부르키나파소,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니제르 등은 매년 엄청난 양의 금이 국경을 넘어 유출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두바이로 향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말리의 경우 연간 70t에 이르는 금을 공식적으로 수출하고 있는데 실제로 더 많은 금이 채굴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UAE로 향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단 재무부는 금 생산의 80%가 UAE로 불법적으로 수출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따르면 르완다는 올해 7억3200만달러(약 9000억원) 상당의 금속을 출하할 예정이며 이는 2019년 수출액의 2.5배 이상이다. 문제는 르완다는 자국 내에서 금을 거의 채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근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불법적으로 채굴해 수출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르완다뿐만 아니라 UAE는 이에 대해 무시하고 있다. 이렇듯 아프리카 국가들은 UAE로 향하는 불법 금 수출로 인해 대규모 세수 손실은 물론 불법 채굴을 둘러싼 충돌과 내전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UAE는 여행객이 반입하는 금에 대한 세관 통제가 취약하고, 추적할 수 없는 현금 거래에 대한 제한이 없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또한 UAE 내부의 금 시장 및 제련소에 대한 감독도 거의 이뤄지지 않으면서 불법 거래를 부추기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UAE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불법 금 수입 의혹에 대해 단호히 부인하고 있다.
한국의 전략적 영향력 범위 고민할 때
UAE는 규모가 작은 국가이지만 자국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간적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지정학적 차원의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경제력과 외교력뿐만 아니라 군사력까지 동원하면서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중국, 인도 등 상호 경쟁하는 강대국들과 협력하기도 하지만, 전통적 우방과도 갈등을 불사하고 있다. 매번 주변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데 익숙한 우리로서는 낯설기도, 부럽기도 한 모습이다.
UAE의 이러한 시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UAE의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선진국으로서 그에 걸맞은 국제사회의 평판과 대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지도를 놓고 어디까지를 대한민국의 전략적 영향력 범위로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일 것이다. 한반도와 4대 강국 외교에 매몰된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한반도를 넘어선 지역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 이때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인지에 대해 본격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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