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미술관 산책 <1>] 나도 그릴 수 있는 그림, 왜 예술 작품일까

정철훈 2023. 8. 28. 18: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 마크 로스코의 작품 ‘No.7’. 2 1957년 이브 클랭이 전시한 그림. 구글

지난 2021년 11월 미국의 한 부동산 개발업자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관심을 끄는 미술 작품이 경매에 출품됐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 ‘No.7’이다. 그런데 팔린 가격이 상상을 초월했다. 8250만달러(약 1098억원)에 아시아 입찰자에게 낙찰됐다. 도대체 어떤 그림이기에 이런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될 수 있는 것일까.

추상표현주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마크 로스코가 1951년 그린 18점의 추상화 중 하나로 따뜻한 계열의 세 개의 색상을 따라 선명한 채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리고 단순한 표현 속에 복잡한 마음의 심상을 나타내는 작가의 의도처럼 보는 이에 따라서는 회화의 숭고함과 환희 등의 마음의 근원적인 속성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이 보기에는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이 단순한 색상의 그림이 왜 그렇게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매시장에서 어떤 작품이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가격에 관한 것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1000억원이 넘는 미술품 가격 기사를 접한 독자들이 그림 가격에 놀란 부분도 있겠지만, 일부는 ‘이런 그림은 나도 그릴 수 있겠다. 이 작품이 무엇이 의미 있고 심오하기에 이렇게 비쌀까’라는 질문을 한다. 이에 대한 답을 찾다 보면 미술을 보는 시각을 키우게 된다.

정철훈미술 칼럼니스트, 고려대 대학원 문화 콘텐츠 박사 수료, 소장전 ‘리틀 사치전’ 개최

미술,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특히 미술에서 많이 쓴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그려져 있는 것을 보는 것 즉 ‘가시성’ 이면에 다른 무엇인가를 볼 수 있는 것은 각자의 궁금증과 배경지식, 또는 이전의 경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미술가들의 미술 작품이 무엇인지, 미술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들여다보자.

프랑스 화가 이브 클랭. 이 작가를 아는 독자들은 언뜻 ‘IKB(인터내셔널 클랭 블루)’라고 하는 자신만의 파란색을 특허 등록한 작가 그리고 파란색의 단색화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34세의 짧은 생애를 열정적으로 살다 간 프랑스 화가 이브 클랭은 여러 작업을 통해 미술가들이 추구하는 미술이란 무엇인지, 미술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미술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에 대해 자신만의 작업으로 해답을 추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는 세계인이 사랑하는 인상파 작품을 보면서 빛의 오묘한 조화가 일으키는 회화의 아름다움에 대해 경의를 나타낸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에게 개인의 감성에 따라 다양한 예술적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우리는 예술 작품을 ‘보는 것’에 익숙하고 또 이런 행위를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브 클랭은 예술 작품을 ‘보는 대상’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예술적 경험’ 또는 ‘회화적 경험’이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영역을 더 중요시했다.

이브 클랭은 파리의 센 강변에서 구매자에게 자신의 첫 번째 작품을 매매했다. 사진 구글

같은 그림인데, 가격은 제각각

1957년 밀라노 아폴리네르 갤러리에서 열린 ‘모노크롬의 제안, 청색시대’ 전시에서 작가인 이브 클랭은 전시장 안에 같은 크기, 색감, 구성을 가진 서로 구별하기가 어려운 복제품 같은 11점의 청색 단색화를 전시했다. 그리고 이 11점의 작품에 대해 각각 다른 가격을 책정했다. 놀랍게도 모두 매진됐다. 이는 작품이 외형적 동일성을 갖추더라도 구매자는 자신이 구매하는 작품에 다른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는 이 전시에서 각 작품의 가치는 물질적, 물리적 외관 이외의 다른 것에 의해 지각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선택한 사람들이 작가가 ‘회화적 감성’이라고 부르는 사물의 상태를 인식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즉 ‘작품의 가치’는 작품이라고 하는 대상의 가격 이면에 ‘예술가의 경험’과 회화적 감성 같은 다른 무언가에 의해서도 매겨진다는 사실을 작가는 이 전시를 통해 말하고 있다.

예술의 정신성은 무엇일까

다음 실험은 더욱 진일보했다. 1959년 3월 벨기에 앤트워프 헤센후이스에서 열린 ‘움직이는 비전-비전 속의 모션’ 전시에서 이브 클랭은 전시 당일 전시 벽면에 아무것도 전시하지 않은 채 전시장에 태연히 나타났다. 그리고는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을 인용했다. “우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그리고 더 심오한 부재가 있고, 더 깊어진 청색이 있다.” 그리고 “자신은 더 이상 누군가가 자기 작품을 돈으로 구매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고, 눈에 보이게 전시되진 않았지만, 세 작품에 작품당 황금 1㎏의 가격을 요구한다고 외쳤다. 그런데 뜻밖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작품에 실제 구입자가 나섰다. 몇 달 후 이브 클랭은 파리의 센 강변에서 구매자에게 자신의 첫 번째 작품을 매매하고, 황금 1㎏과 매매 영수증을 교환했다. 그리고 구매자는 영수증을 태우고, 이브 클랭은 황금 절반을 센 강에 던지는 의식을 진행했다.

누군가는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보다 더 한 사람이 이브 클랭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비물질적 예술 세계에 대한 작가의 경배이자 의식이었다. 첫 번째 작품 판매 이후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작품의 두 번째 버전 작품은 1962년 다른 수집가에게 황금 1㎏에 판매되었고, 구매자는 그 작품에 대한 법적 소유권을 가지게 되었다. 황금 1㎏이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9000만원 정도 되는 돈이니, 당시에도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다.

이는 예술가라는 전문가가 이런 작업을 거친 행위 그 자체도 예술 작품이 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돈 대신에 황금이라는 교환 가치를 제시함으로써 당시 자본주의 소비사회를 고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예술의 정신성과 예술성의 회복을 주장했다.

진품만이 지니는 가치

누구나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 1000억원을 호가하는 것은 바로 ‘쉽게 그린 듯 보이는 그 작품’이지만 권위를 인정받는 전문적인 예술적 경험과 행위를 하는 작가가 그림으로써 그 그림에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BTS’의 사인을 아이가 선물로 받고 싶다고 할 때, 부모가 BTS 사인과 똑같이 사인을 만들어 아이에게 주면 아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BTS가 직접 사인하지 않은 사인은 아우라가 없는 그저 한낱 의미 없는 문자일 뿐이다.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림도 인정받은 작가의 예술적 경험을 수반한 작업을 했을 때 그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지, 내가 똑같이 그린다고 그 가치가 부여되지 않는 이치와 같다. 이것이 예술이고 예술 작품이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임톡beta

해당 기사의 타임톡 서비스는
언론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