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의 '정율성 논쟁' 두 쪽 난 광주 지역사회(종합)

변재훈 기자 2023. 8. 2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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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식 "장관직 걸고 정율성 공원 저지"…보훈단체도 반대 가세
강기정 "35년 전 정부가 기념사업 시작" 반론…정치권 갑론을박


[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자유통일당원들이 28일 오후 광 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 동상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율성 공원 조성 철회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08.28. hyein0342@newsis.com

[광주·순=뉴시스] 변재훈 이영주 김혜인 기자 = 항일 무장단체 의열단 출신 중국 3대 작곡가인 정율성의 생가에 광주시가 조성키로 한 역사공원 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뜨겁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과 강기정 시장 사이의 설전이 연일 이어지고 있고, 지역 보훈단체와 일부 5·18단체까지 논쟁에 가세해 당분간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박 보훈부 장관은 28일 오전 전남 순천역에서 열린 '잊혀진 영웅, 호남학도병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행사에 참석해 "정율성의 행적은 도저히 대한민국이 받아들일 수 없다. 장관직을 걸고 반드시 저지시키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람을 기리는 사업에 국민의 예산을 쓴다는 것은 단 1원도 용납할 수 없다"며 "공이 얼마나 큰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국적도 중국으로 바꿨을 뿐만 아니라 (6·25 당시) 중공군과 북한군이 잘 싸우라고 응원한 나팔수 역할을 한 사람이지 않느냐"라고 지적했다.

박 장관은 앞서 지난 22일 자신의 SNS를 통해 광주시의 정율성 기념공원 조성 사업계획 전면 철회를 요구하며 논란에 불을 지핀 바 있다.

보훈부는 최근 광주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에 대한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보훈부 차원의 헌법 소원 또는 공익 감사 청구 등도 거론되고 있다.

[순천=뉴시스] 이영주 기자 =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28일 오전 전남 순천역에서 광주시가 추진하는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과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2023.08.28. leeyj2578@newsis.com

상이군경회·전몰군경유족회 등 광주 지역 보훈단체도 이날 광주시청 앞에서 '정율성 기념공원 조성 철회' 기자회견을 열어 "조국을 지킨 호국 영령과 참전 영웅을 모독하는 것"이라며 정율성 공원 조성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당시 전사한 광주 출신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62)씨도 회견에 참석해 "광주정신은 공산주의를 기념하는 정신이 아닌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오전에는 보수 성향 원외정당 자유통일당 당원 100여명이 광주시청 앞에서 '공산당 나팔수 정율성 철회', '돌격행진곡 작곡한 정율성 반대' 등 손팻말을 든 채 정율성 공원 조성 폐지 구호를 외쳤다.

주기환 국민의힘 광주시당위원장도 "공청회 등 검증 작업을 통해 기념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면 태어난 곳에 생가 표지석 정도로 설치하는 게 낫지, 수십억원을 들여 공원까지 조성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반대 의사를 표했다.

[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광주 보훈단체가 28일 오후 광주시청 앞에서 '정율성 공원 조성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3.08.28. hyein0342@newsis.com

5·18부상자회, 5·18공로자회와 4·19 관련 공법단체들도 일간지에 정율성 역사공원 반대 광고를 게재, 눈길을 끌었다.

특히 현 5·18부상자회장인 황일봉 회장은 광주 남구청장 재임 당시 정율성 기념사업 유치에 적극 나선 바 있어 10년여 만에 '180도 뒤집힌 행보'를 보였다. 그가 구청장으로 재임한 2009년 전후로 현 남구 양림동 정율성로(路) 조성·정율성 흉상 건립 사업 등이 이뤄졌다.

황 회장은 "당시엔 정율성의 행적을 잘 알지 못했지만 이번에야 문제를 알았다. 중국 우호 관광 활성화 차원의 사업이었다. 광주는 오월 영령 추념 사업이 우선"이라고 거듭 반대 입장을 밝혔다.

[광주=뉴시스] 강기정 광주시장이 28일 오전 시청 5층 기자실에서 출입기자들과 차담회를 열어 시정 주요현안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광주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강 시장은 이날 기자들을 만나 "정율성 기념사업은 중앙정부가 먼저 시작했다. 35년 전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기인 1988년 서울올림픽 평화대회추진위에서 정율성 선생 부인인 정설송 여사를 초청, 한중 우호 상징으로 삼았다"며 맞대응했다.

그러면서 "김영삼 대통령이 재임한 1993년에는 한중 수교 1주년 기념으로 문체부가 정율성음악회를 개최했다. 1996년에도 문체부 주관 정율성 작품 발표회를 진행했고, 국립국악원은 그의 소장 자료를 기증받으면서 문체부장관이 부인 정 여사에게 감사패를 직접 전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또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 정율성 음악이 연주되는 퍼레이드를 참관했으며 당시 언론들도 정율성 선생의 노래에 대한 많은 보도를 한 바 있다"면서 보훈부를 향해 "오랜 기간 대한민국 정부도, 광주시민도 역사정립이 끝난 정율성 선생에 대한 논쟁으로 더 이상 국론을 분열시키지 말라"고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주시의원 22명도 공동성명을 내 "광주는 노태우 정부부터 이어져온 한중 친선과 문화교류를 충실하게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결코 정율성 선생을 영웅시하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보고 있다"며 "광주를 표적 삼아 이념 갈라치기 하려는 정부와 집권 여당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규탄했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23일 오전 광주 동구 불로동 내 작곡가 정율성 선생 생가에서 역사공원 조성 공사가 펼쳐지고 있다. 정 선생은 항일단체 조선의열단 출신 중국 3대 음악가로 꼽히나 최근 생가터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놓고 이념 논쟁에 휘말렸다. 2023.08.23. wisdom21@newsis.com

김대중 정부 청와대 선임행정관을 지낸 김명진 더연 정치연구소 소장도 "해묵은 이분법적 사고로 정율성 선생을 더 이상 폄훼하지 않기를 촉구한다"며 "역사공원은 '정율성 우상화'가 아니다. 문화 콘텐츠에 이념적 잣대를 댄 정치공세야 말로 시대착오적이다"라고 날을 세웠다.

현재 광주시는 동구 불로동 정율성 생가를 복원, 사업비 48억원을 들여 역사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공원은 내년 초 완공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wisdom21@newsis.com, leeyj2578@newsis.com, hyein034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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