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이 문전박대하는 노키즈존…인권위 "명백한 차별"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박홍주 기자(hongju@mk.co.kr) 2023. 8. 2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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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백화점 VIP라운지 노키즈존 철회 권고
"헌법이 보장한 평등권 침해"
백화점 3사 "검토후 변경"
온라인 등록 노키즈존 500곳
실제로는 수천곳 달할 듯
문제아 취급 vs 업주 자유
갑론을박에 정부 실태조사
28일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카페 입구에 노키즈존 팻말이 걸려 있는 모습. 외식 업계에 따르면 노키즈존으로 운영되고 있는 카페와 식당은 전국적으로 400~500곳에 이른다. 이승환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영유아 출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는 백화점 VIP(우수고객) 라운지에 대해 아동차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누구나 납득할 만한 합리적 근거 없이 나이를 이유로 아동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헌법상 영업의 자유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백화점 측에 이 같은 '노키즈(No Kids)' 형태의 VIP 라운지 운영 방식을 철회할 것을 권고하기로 했다. 현재 롯데·신세계·현대 등 국내 백화점 3사 모두 VIP 라운지 대부분을 노키즈존으로 운영하고 있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28일 인권위에 따르면 인권위 조사국 아동청소년인권과는 최근 한 백화점을 상대로 제기된 진정 건과 관련해 백화점 VIP 라운지 이용 대상에서 아동을 일률적으로 배제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내용의 결정문을 다음달 초 발표할 예정이다. 인권위는 앞서 2017년에도 노키즈존으로 운영되는 제주도 소재의 한 식당에 같은 내용을 권고한 바 있다. 노키즈존은 주류 판매, 성인물 상영 등 아동을 배제해야 하는 법률적 사유가 없는 일반 상업시설에서 업주가 '만 13세 이하 금지' '미취학 아동 금지'와 같이 나이로 이용 제한을 두는 장소를 일컫는다.

이번 인권위 결정과 관련해 주요 백화점들은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이다. 백화점 A사 관계자는 "VIP 라운지는 고객이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으로 일반 식당과는 시설의 취지 자체가 다르고, 상위 등급 라운지를 제외하면 영유아 동반 입실이 가능한 곳도 있다"면서 "상위 등급 라운지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아동 출입 제한 외 다른 대안이 있을지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백화점 B사 관계자도 "인권위 권고 사항에 대해 내부 검토를 거쳐 필요시 운영 방식을 변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권위는 노키즈존이 헌법이 보장하는 아동의 평등권(제11조)·행복추구권(제10조)뿐만 아니라 한국이 비준한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따른 아동의 기본 권리를 침해한다고 봤다. 특히 노키즈 같은 일률적인 아동 금지는 일부 아동의 사례를 합리적 이유 없이 전체 아동으로 일반화한 것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또 노키즈존 운영·찬성 측에서 주요 근거로 들고 있는 헌법 제15조에 따른 영업의 자유는 무제한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며 공익을 크게 해칠 정도의 사익 추구까지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놨다. 조정희 인권위 아동청소년인권과장은 "헌법에 근거한 아동의 기본적인 평등권·행복추구권과 사업주의 영업의 자유가 서로 충돌하나 여러 측면을 고려했을 때 노키즈존이 사익보다는 공익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 권고는 실제 정책에 반영되기도 하고 특히 민간에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부분 수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니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2017년 인권위가 노키즈 식당 금지를 권고한 후에도 국내에서 노키즈존은 가파르게 늘어왔다. 외식 업계와 보건복지부 추산에 따르면 현재 온라인상에 노키즈존으로 운영한다고 밝힌 카페·식당 등 사업장만 400~500곳에 달할 정도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2세 아이를 둔 경기 용인 수지구의 직장인 이 모씨는 "입구의 노키즈 안내 문구를 못 보고 아이와 함께 자리를 잡고 주문까지 했는데 환불해줄 테니 나가 달라는 요구에 황당했다"며 "아이가 실제로 소란을 피운 것도 아닌데 나이를 이유로 잠재적인 문제아 취급을 당한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만 9세 자녀와 함께 카페를 방문했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나 모씨는 "아이는 출입이 안 되고 강아지는 된다고 해서 아이가 더 속상해했다"고 전했다.

업주들은 매장 운영 방식은 영업의 자유이고 아동의 안전사고 예방, 조용한 분위기 등을 위해선 노키즈존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경기 용인 수지구의 브런치 카페 '테라스478'은 3년 전까지만 해도 영유아 이용을 제한하지 않았지만 매장 앞 계곡으로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며 노키즈존으로 바꿨다.

그러나 일부 사례로 아동 전체를 원천 차단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 행위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의 저출산을 노키즈존이 간접적으로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업주가 자기 사업장이라고 손님을 차별하는 행위까지 무제한 용인받는 것이 영업의 자유는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에는 일괄적으로 아동을 금지하는 노키즈존 대신 아이에게 주의를 시켜줄 것을 부모에게 당부하는 '케어키즈존', 2층이나 테라스·루프톱 등 일부 공간만 아이들 출입을 제한하는 '부분 노키즈존' 등이 주목받고 있다. 노키즈존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계속되자 정부도 실태조사에 나섰다.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와 저출산 담당 부서인 인구정책총괄과는 전국 노키즈존 운영 현황과 배경 등을 조사하고 있다.

[송경은 기자 / 박홍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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