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는 지금…드론공격과 버스킹 공존
스타벅스 대체한 '스타스'엔 긴 줄…시민들의 일상 여전
프리고진 사망도 몰라…휴대폰·GPS 먹통 "드론 탓"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지난 21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있는 전시 단지인 엑스포센터. 불과 사흘 전인 지난 18일 방공망에 요격된 드론(무인기)의 파편이 떨어졌던 장소다.
모스크바의 중심이자 대통령 관저가 있는 크렘린궁에서 약 5㎞ 떨어진 곳이기도 하다. 이번 드론 파편 추락에 대해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군이 드론으로 모스크바 지역을 공격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을 전개한 지 약 1년 6개월이 지난 가운데 최근 모스크바를 겨냥한 드론 공격 시도가 잇따르면서 우크라이나 사태의 무대가 러시아 본토로 확대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막상 엑스포센터에 들어가 보니 불안한 분위기가 감지되지는 않았다. 외신 보도 사진상으로는 엑스포센터 내 '8번' 건물이 드론 파편을 맞아 손상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접근할 수 있는 구역에서 해당 건물을 아무리 둘러봐도 손상 흔적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대신 이 장소에서는 자동차 부품·장비 전시 박람회인 'MIMS 오토모빌리티 모스크바' 행사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중국 업체가 대거 참가해 중국인들이 박람회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이곳이 드론 파편이 떨어진 곳이 맞는가'라고 물으니 행사 안내원은 "그렇다"라면서도 "파편이 정확히 어디에 떨어졌는지는 모른다. 지금은 안전하다"고 답했다.
엑스포센터 밖으로 나가니 현대식 고층 건물 밀집 지역인 '모스크바 시티'가 나왔다. 정부 부처와 기업의 사무실, 쇼핑몰 등 상가가 몰려 있어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다.
모스크바 시티는 최근 드론 공격의 표적이 된 곳이기도 하다. 지난달 30일과 이달 1일, 23일에도 이 지역에 드론이 날아들어 일부 건물들이 파손됐다.
하지만 잇단 드론 공격에도 모스크바 시티 거리는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모스크바 시티에 거주하는 한 20대 여성은 "집에 있다가 드론이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면서도 "걱정이 많이 되지는 않는다.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러시아의 상징적 장소인 붉은광장도 평온했다. 수많은 관광객이 성 바실리 성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바로 옆 굼 백화점은 쇼핑객들로 붐볐다. 백화점 앞 거리에서는 10대 소녀들이 K팝 걸그룹 '블랙핑크'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서울 인사동이나 명동과 비슷한 아르바트 거리는 버스킹(거리공연)을 하는 현지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미국의 인기 팝 밴드 '마룬5'의 노래를 부르는 청년들, 전자 바이올린 연주를 펼치는 밴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할머니 등이 거리 곳곳에 있었다.
모스크바강변에 위치한 래디슨 컬렉션 호텔(옛 우크라이나 호텔) 앞 유람선은 당일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특별군사작전 이후 많은 서방 기업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철수했지만, 모스크바 시민들은 나름대로 서방식 생활문화를 즐기고 있었다.
세계적 커피 체인 스타벅스를 인수한 '스타스 커피'와 햄버거 체인 맥도날드를 인수한 '브쿠스노 이 토치카' 매장은 번화가 곳곳에 위치했고 내부에는 긴 줄이 있었다.
스타스 커피는 메뉴와 로고, 손님의 이름을 컵에 적어주는 주문 방식과 매장 분위기 등도 스타벅스와 유사했다. 브쿠스노 이 토치카에서는 맥도날드의 대표 메뉴 '빅맥'과 비슷한 '빅히트'라는 햄버거를 팔고 있었다.
특별군사작전 초기와 부분동원이 발령된 지난해 9월 많은 러시아인이 해외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 모스크바에 남은 시민들의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서방의 각종 제재에도 가스, 석유 등 풍부한 자원을 기반으로 경제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러시아 내에서도 모스크바를 비롯한 대도시 지역일수록 일상이 유지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6월 무장 반란을 일으켰던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지난 23일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몰랐다", "진짜인가?"라며 놀라는 러시아인들도 많았다.
모스크바 시민들이 특별군사작전에 관심이 없는 건지 외면하는 건지 속내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이 현 사태의 영향을 전혀 안 받는 것은 아니었다.
전화가 자주 끊겨 모스크바에서 애플 아이폰 매장을 찾아갔더니, 담당 직원은 "그건 나도 겪는 문제다. 드론 공격이 일어나면 통신이 일시 차단되기 때문"이라며 ""뉴스를 찾아보면 알 것이다. 거의 매일 드론 공격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모스크바 교민은 "드론 공격이 발생하면 위치정보시스템(GPS) 신호도 끊긴다. 그래서 최근 택시 호출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할 때 기사가 위치를 잘 못 찾는 경우가 빈번해진 것 같다"고 귀띔했다.
아르바트 거리 한복판에서는 '도네츠크 어린이들'을 주제로 한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는 러시아가 특별군사작전 이후 통제하고 있는 지역이다.
사진들은 러시아 특별군사작전의 정당성을 강조하려는 듯 '우크라이나군의 지속적인 포격에 도네츠크 어린이들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돈바스) 지역에서는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군과 친러시아군의 교전이 이어져 왔다. 러시아는 '서방의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 정권이 돈바스 지역에서 벌인 전쟁을 끝내기 위해' 특별군사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1년 반 이상 이어지고 있는 특별군사작전에 대한 러시아인의 견해도 모두 똑같지는 않다.
20대 여성 알료나 씨는 "안전 문제 때문에 모스크바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반면 한 러시아 중년 여성은 "작년까지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상황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삶을 살고 있다"며 "한국도 북한 문제로 위험한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도 그런가"라고 되물었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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