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가 이념 논쟁에 난타당한 동안 ‘눈감은’ 광주시의회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023. 8. 2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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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 역사공원 논란 ‘뒷북’ 가세…‘시의회 있으나마나’ 비판
시의회, 정부·여당 맹폭에도 공개입장 없다가 달랑 성명 발표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광주시가 조성 중인 '정율성 역사공원'을 둘러싼 이념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국가보훈부와 여당은 광주 시민에 대한 모욕이자 혈세 낭비라고 광주시를 비난했고, 강기정 광주시장은 이념 공세에 광주 정신이 멈추진 않을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광주시에 집중포화를 퍼붓고, 때 아닌 이념 논쟁으로 광주가 뭇매를 맞는 동안 광주시의회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가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명의로 달랑 뒷북 성명만 내놓아 '있으나마나'한 의회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광주시의회 전경 ⓒ시사저널

정부·여당 '집중포화' vs 홀로 맞선 강기정 시장

광주출신 정율성은 6·25전쟁에 중공군으로 참전했으며 중국군과 북한군 행진가를 작곡한 음악가로, 광주시는 예산 48억 원을 들여 광주 동구 불로동 생가 일대에 역사공원을 조성 중이며, 올해 말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율성이 기릴 만한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정율성은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에 가입해 항일 독립운동과 작곡활동을 했다.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인민해방군을 위해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으며, 해방 후 6·25 전쟁 등을 겪으며 북한과 중국을 오가다 56년에 중국으로 귀화했다. 하지만 과거 공산주의 행적을 두고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박민식-강기정 SNS 글 ⓒ페이스북

포문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열었다. 박 장관은 22일 SNS(페이스북)에서 이 부분을 문제 삼고 광주시에 '정율성 기념사업' 철회를 요구했다. 그는 "정율성이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인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한 장본인"이라며 "그는 대한민국을 위해 일제와 싸운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북한 정부 수립에 기여하고 중국 인민해방군의 행진곡을 작곡한 인물을 기리는 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반면, 강기정 광주시장은 '철 지난 이념 공세'라고 맞받아쳤다. 강 시장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념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을 두 가지 색깔, '적과 나'로만 보인다"며 박 장관의 주장을 철 지난 색깔론으로 치부했다.

강 시장은 "광주는 정율성 선생을 영웅시하지도, 폄훼하지도 않는다"며 "뛰어난 음악가로서의 그의 업적 덕분에 광주에는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찾아온다. 광주는 정율성 선생을 광주의 역사 문화자원으로 발굴하고 투자할 것"이라고 맞대응했다. 정율성이 중국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고, 이미 다른 지역에도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들을 기리는 시설들이 있다고 했다. 

논쟁은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정율성이 비록 항일운동을 했다고 하나 6.25전쟁이 우리 국민에게 남긴 깊은 상흔을 생각하면 과가 공보다 더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북한과 중국 인민군 군가를 작곡한 인물을 칭송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며 "정율성 공원 조성 계획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전날 국민통합위원회 관계자들과의 비공개회의에서 부정적인 뜻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시는 동구 불로동 정율성 생가 일대에 48억원을 들여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두고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과 강기정 광주시장은 SNS에서 설전을 벌였다. 23일 오전 정율성 생가 모습 ⓒ시사저널 정성환

5개 구청장·기념사업회 성명에도…입장 없이 '잠잠'

이처럼 정부여당과 광주시의 공방에 이어 윤 대통령까지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면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에 민주당 소속 5개 광주시 자치구 구청장들은 성명을 내고 "정율성 선생은 다양한 작곡으로 항일전선에 참여했다"며 역사공원 조성을 촉구했다. 정율성기념사업회도 "평가는 역사에 맡기는 것이 옳다"며 논쟁 중단을 요청했다. 

정부는 이념 공방을 뛰어넘어 광주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에 대해 이번 주부터 범정부적 강경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국가보훈부는 헌법소원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시정명령과 감사원 감사 청구도 검토 중이다. 시정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사업 취소·정지도 가능하다. 공원 조성이나 정율성 동요대회에 국고가 들어갔다면 감사원 감사 청구도 검토할 방침이다.

논란은 광주 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광주 지역 보수 성향 단체인 전국학생수호연합 광주지부는 27일 오후 4시 남구 양림동 정율성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율성은 6·25 민족상잔의 원흉인데 광주시는 단순히 독립운동가나 걸출한 음악가로 규정하며 공원 조성을 강행하고 있다"며 공원 조성 철회를 요구했다.

광주시는 굴하지 않고 사업을 강행할 방침이다. 혈혈단신으로 맞선 강기정 시장은 26일 지리산 등정에서 올린 SNS에서 "냉전은 이미 30년 전 끝났는데 철 지난 이념 공세가 광주를 향하고 있다. 광주 정신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화순 능주초등학교에 그려진 정율성 벽화 ⓒ시사저널 정성환

"현안마다 입장 밝힐 필요 있나"는 시의회 고위 관계자 

이처럼 전국적으로 정율성 공원 논란이 가열되고 있지만 그간 광주시의회는 이 사태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의회 차원은 물론 시의원들도 이와 관련해 공개적으로 별도의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지난 24일 시의회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갖는 등 일본 정부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대해 즉각적인 행동을 보인 것과 대조되는 행보다. 시의회의 소극적 대응은 김용집 시의원이 지난 2018년 당시 시의회에서 "정율성은 광주출신이라는 점 빼고는 대한민국에 기여한 부분이 없다"고 한 발언이 되레 여권 공격의 빌미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광주시의회는 의회 차원의 결의안 채택 등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의원들은 결의안 채택 필요성에 의견을 나누고 개인 자격으로 성명 발표도 검토하지만 시의회 차원에서 결집된 의사는 없다. 전체 시의원 중 국힘 소속 의원 한명이 포함돼 있어서라는 이유에서다. 일반적으로 결의안 채택은 전체 의원 중 5분의 1의 동의가, 의회 명의 성명서는 전체 의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현재 광주시의원은 민주당 22명, 국힘당 1명이다.

이에 따라 겨우 28일 오전에야 민주당 소속 시의회 의원 일동 명의로 '윤석열 정부는 철 지난 색깔론과 이념몰이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A4 용지 두장 짜리 성명서를 내놓았다. 시점도 문제지만 이유로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 소속 광역·기초의원 전원이 24일 광주시의회에서 일본의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주당 광주시당​

이는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광주시의회 수뇌부의 안일한 현실 인식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시의회 한 고위 관계자는 광주시정의 한 축으로서 의회 차원의 대응이 미진한 것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모든 현안에 대해 일일이 (시의회가)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느냐"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시의회를 바라보는 시민사회의 시선 또한 곱지 않다. 지역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광주가 일주일 가깝게 전국적으로 이념 몰이에 난타당하는 동안 시의회는 보이지 않았다"며 "이날(28일) 본회의가 열리자 겨우 자다 봉창 두드린 격으로 그 흔한 규탄 기자회견이나 결의안도 없이 달랑 성명서만 내놓았다. 시의원들이 표가 되는 잿밥에 신경 쓴 나머지 스스로 정치사회적 영향과 기능에는 손 놓아 버린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뼈있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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