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억원 쏟아 부었는데…파리만 날리는 검찰 영상녹화조사실
“실시율 개선 위해 영상녹화물에 증거 능력 부여해야”
(시사저널=이동혁 인턴기자)
검찰이 지난 20년간 영상녹화조사실 사업에 300억원 이상을 투입했지만 영상녹화조사 실시율은 1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자릿수에 불과한 활용실적 개선을 위해 영상조사물에 증거능력을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검찰은 2004년 영상녹화제도를 도입했다. 조서에 의한 수사 과정에서의 오류나 과잉·강압 수사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영상녹화제도 도입 초기 12개이던 영상녹화조사실은 지난해 말 기준 899개까지 늘어났다. 여기에는 320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됐다.
하지만 영상녹화조사 비율은 10% 전후에 불과하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전체 조사 건수 대비 영상녹화조사 비율은 평균 11.5% 수준이었다. 특히 최근 3년간 영상녹화조사 비율은 2020년 5.9%, 2021년 7.5%, 2022년 8.1%로 한 자릿수를 맴돌고 있다.
그럼에도 예산은 꾸준히 투입되고 있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검찰이 영상녹화장비 구매(노후장비 교체 및 신규 장비 구입)에 사용한 비용은 2021년을 제외하고 매년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영상녹화장비 구매에 집행된 예산은 3억7000만원으로 2018년(2억4100만원) 대비 약 65% 늘었다.
이는 그동안 검찰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인권 침해 사례가 꾸준히 제기돼온 점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2022 국가인권위원회 통계자료'의 기관별 인권침해 상담 현황에 따르면, 영상녹화조사실이 설치된 2004년부터 최근까지 검찰로부터 인권 침해를 받은 사례는 매년 세 자리 수를 유지하고 있다.
전체 피해 사례 5514건 중 '불리한 진술 강요·편파 부당수사' 사례가 1842건(33.4%)으로 가장 많았고, '폭언, 욕설 등 인격권 침해'가 902건(16.3%)으로 뒤를 이었다. 이어 '공소권 남용'과 '폭행, 가혹행위' 등의 순이었다.
학계에서는 영상녹화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영상녹화물에 증거 능력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장은 "공판중심주의인 우리 법원은 공판, 즉 공개법정에서 이뤄지지 않은 영상조사물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검사로서도 시간이 많이 들고 업무 부담이 높은 영상 녹화조사를 굳이 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영상을 정확히 찍어놓는 게 실제 진실을 밝히는 가장 유용한 방법"이라며 "2024년부터 형사소송 전자화가 추진되는 가운데 해당 변화가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인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 역시 영상녹화조사 기피 이유로 증거능력 부족을 꼽고 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2020년 검사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영상녹화제도가 본래 취지대로 잘 운영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잘 되지 않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의 74%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운영 미비에 대한 원인으로는 '형사소송법상 증거사용 규정 미비(85.1%)'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특히 '영상녹화물을 공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선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의 96%를 차지했다. 그 이유로 '피의자신문조서보다 훨씬 더 정확한 진술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45.8%)'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피의자가 임의로 한 진술이기 때문(34.3%)'이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현재로선 영상녹화제도 실시율 개선이 요원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검찰청이 내부 규정을 통해 영상녹화조사를 검사 재량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개정된 대검찰청 예규에는 원칙적으로 영상녹화조사를 실시해야 하는 경우가 명시돼 있다. 그러나 '검사의 판단에 따라 영상녹화를 실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도 함께 기재돼 영상녹화조사 실적 부진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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