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알퍼의 영국통신] 오늘의 영국 일군 성실한 기부
재정 어려움 겪는 학교·병원
지역사회 모금으로 다수 운영
학부모들 나서 모범 보이기도
혹시라도 영국에서 살게 된다면, '잠깐 시간 있으세요?' 물으며 미소와 함께 다가오는 젊은이들로 에워싸일 각오를 해야 한다. 이들의 목적은 자선단체를 위해 매월 자동이체를 하겠다는 사인을 받으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Charity'와 'Mugger'의 합성어인 'Chugger'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영국에서 이루어지는 모금활동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영국 경제는 2차대전 이후 줄곧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이는 교육, 의료, 문화시설을 위한 정부 예산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에서 모금활동이 가장 절실한 곳은 학교다. 영국의 많은 학교들은 재정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교사의 급여 인상, 전기·가스비용 상승 등으로 10개 중 9개의 학교가 다음 학년 예산이 바닥날 것이라고 보도되기도 했다. 영국에는 비가 새는 지붕과 군데군데 움푹 파인 콘크리트로 덮인 운동장에는 잡초가 무성한, 100년쯤 전에 지어져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학교가 수두룩하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 영국에서는 학부모 교사 모임인 PTA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2019~2020학년도(영국은 9월에 학년이 시작된다)에 그들은 1억2000만파운드가 넘는 금액을 모금했다. 가장 성공적인 모금활동을 한 30개 PTA는 거의 400만파운드에 달하는 돈을 모았다고 한다.
과연 이들은 어떤 방법으로 그 엄청난 돈을 모을 수 있었을까?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학부모들이 집에서 케이크와 쿠키를 구워와 하굣길에 학부모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학교 강당에서 한두 시간 춤을 출 수 있는 스쿨디스코 티켓을 판매하거나, 학부모들이 상품을 기부하고 티켓을 구매해서 자신들이 기부한 선물을 제비뽑기하는 이벤트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금액을 만들 수 있는 행사는 학교를 벗어나 지역사회의 돈을 끌어모을 수 있는 10㎞ 달리기 대회다. 영국에서 대부분의 10㎞ 달리기 대회는 운영자와 진행자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하기 때문에 어떤 PTA에서는 수천 파운드 이상의 수입을 거두기도 한다.
병원들 역시 기부금과 모금행사에 점점 의존하고 있다. 국영의료서비스의 기본적인 유지는 정부 예산으로 가능하지만 새로운 의료 장비 구매나 새로운 기술 도입, 상담치료 관련 비용은 관련 자선단체에서 모금한 돈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렇게 영국의 학교와 병원은 기부와 모금 없이는 근본적으로 운영이 불가능하다. 6세기 이전에 세워진 역사적인 교회들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 미술관 또한 마찬가지다. 문화와 의료 그리고 교육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는 나라는 어떻게 될까? 영국의 어디를 가도 그럴 만한 이유를 대며 모금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영국인들은 큰 행운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영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팀 알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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