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리스크' 수렁 빠진 이재명 1년, 무력감 시달리는 제1야당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사법리스크', '방탄 국회' 논란 속에 취임 1주년을 맞이했다. 취임 전부터 예견된 사법리스크 정국은 1년이 지난 지금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되는 상황이다.
열흘 전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이 대표는 오는 9월 중순께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을 계획이다. 검찰은 이 대표가 소환 조사를 마치는 대로 곧바로 구속 영장을 청구할 태세다.
사법리스크가 정점을 향해 달려갈수록 당은 극심한 내홍에 빠져들고 있다.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취임 1주년을 맞이하면서 이 대표는 축하 인사 대신 사퇴 요구를 듣고 있다. 마침 정기국회를 앞두고 의원 워크숍이 열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1박2일간 이 대표 리더십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이유 여하 불문, 큰 책임 느낀다"
이 대표는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지 꼭 1년이 된 28일 국회에서 기자들로부터 취임 1주년 소회를 묻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소회를 말하는 대신 "해병대 사망 사건 수사와 관련해 대통령이 개입했다는 충격적인 보도를 봤다"며 "우리 대통령께서 직접 해명하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동문서답을 했다. 이 대표는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 종종 이와 같은 '동문서답 화법'을 구사하곤 한다. 이어진 검찰 소환 관련 입장, 당 대표 임기 완주 여부에 대한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다만 이날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 워크숍 인사말에서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큰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신의 사법리스크로 인해 대정부 투쟁 동력이 떨어지는 데 대한 유감을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국민들께서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에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안겨주셨다. 그러나 우리가 국민의 기대에 충실히 부응했는지 되돌아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다"며 "국회 다수당으로서 우리 민주당이 앞장서서 정권의 무자비한 폭주를 바로잡고 민생 회복의 불씨를 꼭 마련해야겠다"고 말했다.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를 '무자비한 폭주'라고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검찰 출석 일정과 관련해선 당사자인 이 대표를 대신해 당에서 설명에 나섰다. 박성준 대변인은 이날 소통관 브리핑에서 "(이 대표가) 9월 정기국회 본회의가 없는 주간에 검찰에 출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야는 다음 달 1일 개회식을 시작으로 5~8일 대정부 질문과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진행한 후 18일과 20일에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기로 했다. 아울러 본회의를 오는 21일, 25일 열기로 해, 이같은 일정에 따르면 이 대표는 9월 중순께 조사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 대표 소환 조사 직후 검찰이 구속 영장을 청구하게 되면, 국회 체포동의안 투표는 추석 연휴 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박 대변인은 다만 검찰과 일정이 합의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앞서 민주당과 이 대표는 지난 24일과 26일 조사를 받겠다고 했으나 검찰이 이를 거부해 불발됐다. 박 대변인은 "이 대표는 당당히 소환에 응하겠다며 비회기 중 (구속)영장 청구가 가능하도록 소환 조사 일정에 협조했지만, 검찰은 이를 모두 거부했다"면서 "체포동의안 표결 절차로 야당의 분열을 유도하겠다는 야욕의 발로"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국민과 함께 윤석열 정권의 폭압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고 말했다.
9월 정기국회는 '사법리스크 화약고'...1박2일 워크숍, 계파 갈등 분수령 될까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조사가 끝을 향해 감에 따라, 오는 9월 정기국회는 사실상 '사법리스크 화약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당내 적잖은 의원들이 원내 활동에 대한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이번 워크숍 분임 토의가 상임위별로 이뤄지는 데 대해 "상임위에서 열심히 전략을 짜봤자 결국 모든 초점이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에 맞춰질 테니 힘이 빠지지 않겠느냐"라고 우려했다.
이 의원은 아울러 오는 10월 국정감사가 내년 총선 전 마지막 국감임에도 당 대표 구속 여부에 모든 이슈가 빨려 들어가 각 의원이 개인기를 발휘할 수 없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의원들은 정기국회 준비 및 내년 총선 전략 논의를 마련된 이날 워크숍이 이 대표 거취를 둘러싼 계파 갈등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非)이재명계 의원들은 이 대표 체제 1년에 대한 평가와 아울러 대의원제 폐기, 공천룰 변경 등 '김은경 혁신위원회'가 제안한 혁신안을 토론 의제로 올릴 것으로 관측된다.
대표 비명계 의원인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전 한국방송(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이재명 체제 1년'에 대한 점수를 매겨달라는 사회자 질문에 "구체적인 점수보다 과락(科落)"이라고 했다.
그는 "1년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고 팬덤 정치가 심화됐고 당내 민주주의가 약화됐고 우리 당의 도덕성 문제가 전면으로 올라왔다"며 "그래서 내로남불 이미지가 고착화돼 정부·여당이 실정을 하고 자살골을 쐈는데도 그에 대한 반사이익·득점을 전혀 못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 의원은 "민생과 경제 열심히 하겠다고 했는데 아무 성과가 없고, 대신에 방탄·내로남불·도덕성·팬덤·사당화 이런 것밖에 남는 게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복당 이후 '친(親)명'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에서 이 대표 체제 1년에 대해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박 전 원장은 "이 대표는 차기 대통령 후보 선호도에서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다"면서 "사법리스크의 곤혹을 치르면서도 국민의 지지를 받고 가는 일을 했다"고 했다. 그는 내년 총선도 이재명 체제로 치러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면서 "이재명 있는 민주당이 제대로 돼야 한다"고 밝혔다.
친명계 우원식 의원도 비교적 호평했다. 우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 대표) 개인에게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을 것"이라며 "굉장히 어려운 시기였지만 탄핵으로 받은 정권을 5년 만에 빼앗긴 아픔을 딛고 민주당이 윤석열 정권을 견제할 수 있는 근거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밝혔다.
다만 친명계에 속하는 안민석 의원은 이날 불교방송(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총선이라는 게 이 대표 리더십으론 안 된다"며 "또 다른 비명계라든지 NY(이낙연 전 총리)계 쪽의 보완도 필요하지 않겠나"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친명계는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을 두고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박 전 원장은 "그것(당론 가결)은 되지를 않는다"면서 "당론을 대표가 마음대로 하느냐"고 말했다. 이에 반해 안 의원은 "이 대표가 (국회) 대표연설을 통해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했으니까 이 약속은 지켜야 된다"면서 "자유 투표를 하든 당론을 결정하든 간에 (결론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비명계는 '무조건 가결'을 외치는 상황이다. 조 의원은 "이번에 만약에 또 정당한 영장청구가 아니라는 이유로 부결을 시킨다면 우리 당은 이제 영원히 방탄 지옥으로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당 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분당론'에 대해선 계파를 막론하고 대부분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 의원은 "이(상민) 의원이 더 이상 분당 얘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내 갈등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의원도 "그거는 너무 나간 이야기"라며 선을 그었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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