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비주류였지만…이제 구겐하임 가는 '실험미술 거장'
네 아이 찍다 실패한 사진
331장 모아서 전시하고
몸을 부풀리고 수축하는
기이한 퍼포먼스 펼쳐와
팔순에 재조명돼 세계로
팔순의 작가가 웃통을 벗었다. 성능경은 구두를 벗고 맨발이 되더니, 맨손 체조를 시작했다. 팔 돌리기 등을 하다 거친 숨을 고르며 앞구르기를 했다. 이어 팔다리를 들더니 배로 몸을 지탱하는 자세로 버텼다. 요가가 아니라 몸을 부풀려 팽창하고 다시 수축하는 행위를 사진으로 기록한 대표작 '수축과 팽창'을 재현한 것이다.
핑크색 샤워캡과 선글라스를 쓰고 1층에 가득 채운 '현장' 연작에 펜으로 이름을 하나씩 달았다. 그는 "작명을 하면 개념의 심도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몇 년에 걸쳐 수집한 1000여 장의 보도사진을 촬영해 먹과 세필로 편집 기호를 그려넣어 인화한 작품. "신문 편집자가 제시하는 사진 해석을 다시 쓰는 행위"를 통해 '사진'은 '설치' 작업이 됐다. 1970년대 보도 사진들은 2023년 갤러리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전시장에서 만난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 성능경은 여전히 청년 같았다. '성능경의 망친 예술 행각'은 한국 실험미술을 재조명해온 갤러리현대와 그가 만난 첫 전시다. 시대별 대표작 140여 점을 엄선한 회고전 형식으로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 김구림, 리안갤러리 이강소 개인전과 함께 올해 프리즈 위크의 K아트는 '실험 미술 쇼케이스'를 성대하게 연다.
권영숙 갤러리현대 디렉터는 "구겐하임미술관 순회전을 앞두고 연구를 통해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작업을 많이 알게 됐다. 실험미술을 한번 제대로 다뤄보자는 포부로 1년여간 준비했다"고 말했다.
'망친 예술'은 삶과 예술의 경계에서 생각의 틈새를 제시하고자 한 작가의 예술관을 응축한 단어다. 작가는 "1990년대 작품이 팔릴 거라 기대조차 못했다"면서 "젊은 시절, 퍼포먼스를 하다 떠난 작가들이 많다. 평생 비주류로 살았지만 젊을 땐 가족, 이후엔 교사 아내가 뒷바라지를 해준 덕에 나는 하고 싶은 예술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개념은 작품 내부가 아닌 관객 머릿속에 있다. 그걸 끄집어내는 게 내 작업"이라고 했다. 실험미술에서 사진의 중요성을 여실히 느끼게 하는 전시다. 그에게 개념미술은 미술에 재산 가치를 부여하는 물질성을 제거하는 작업. 회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1974년 니콘 카메라를 사 처음으로 작업한 '수축과 팽창'(12점), '검지'(17점)는 1층에 빈티지 원본이 나란히 걸렸다. 미술가에 부여된 영웅적 관념을 해체한 작업이다. "이걸 누가 예술이라고 하겠냐. 예술이 뭔지 저도 모른다. 퍼포먼스는 재미있고 형식 중 가장 강력하다. 다른 장르들의 틈새를 후비고 들어가는 것이다."
2층에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자전적 사진 실험이 이어진다. 'S씨의 자손들-망친 사진이 더 아름답다'(1991)는 무려 331장의 사진과 사탕 봉지가 거대한 벽면을 채운다. 네 아이를 찍은 사진 중 실패한 사진에서 미(美)를 발견했다. 2001년작 '안방'(18점)은 플래시를 터트려 화려한 색감을 보여주는 사진이 실은 누추한 집안이란 반전을 선사한다. 신작 '손씻기'는 팬데믹 시기가 낳은 작품이고, '밑그림'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배설물을 닦은 휴지를 휴대폰으로 촬영해 형형색색으로 편집해 걸었다.
신문 읽기가 어린 시절부터 중요한 일상이었던 작가는 고정코너인 '그날그날 영어'를 열독해왔다. 70대의 작가는 이 습관을 바탕으로 신문콜라주와 드로잉을 접목한 작품 '그날그날 영어'를 완성했다. 전시장에서 그는 퍼포먼스를 직접 보여줬다. '수축과 팽창' '현장'을 30여 분간 보여준 뒤 구슬픈 목소리로 전시에 방점을 찍듯 노래를 불렀다. 가난한 예술가 시절부터 그는 '희망가'를 부르며 버텼다. "희망은 바람을 타고 길을 잃을지라도 우리 모두 함께 떠나갑시다. 거기 그곳. 희~ 희~ 희망의 나라로."
전시는 이 공간에서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9월 6일 밤 9시, 서울 고덕동 스테이지28에서 외국인 100명을 초청해 해외 신문 읽기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1970년대 유신정권에 대한 비판을 신문을 읽고 오리는 행각으로 표현했던 대표작 '신문 읽기'가 다시금 태어난다.
수십 개 언어로 뉴스가 울려퍼지는 광경을 기대하며 작가는 "다음 세대에 없어질 수도 있는 신문을 통해 국제 도시 서울의 달라진 시대상을 보여주는 작업이 될 것이다. 오래전 매뉴얼을 만들어둔 걸, 드디어 실현할 수 있게 됐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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