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윤석열 정부 장관 등 국회 불출석 29번, 전 정부 ‘10배’

문광호·조문희 기자 2023. 8. 2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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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불참자들이 “여야 합의 안됐다”
야당 “대통령부터 내각까지 국회 무시”
25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권인숙 위원장과 야당 의원들이 전체회의에 출석하지 않는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을 찾아 국회를 돌아다니고 있다. 연합뉴스

“장관이 상임위 회의장 앞에 나와 있는데 안 들어오고 있다고?” “저희를 지금 놀리고 있는 겁니다.”

지난 25일 새만금 잼버리 파행 관련 현안 질의 차 열린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불참하자 야당 의원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김 장관은 이날 국회를 찾고도 정작 전체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민주당 의원들이 그를 찾으러 나섰지만 김 장관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여가부는 다음날 입장 자료를 내고 “여야 간 참고인 채택 합의 문제로 회의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다”며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는 즉시 회의에 출석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16개월간 정부 부처 장·차관 등의 국회 상임위원회 불출석 사례가 문재인 정부 말 같은 기간의 10배 가까운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김 장관처럼 대다수 불참자들은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핑계로 상임위 전체회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반복되는 국무위원들의 국회 불출석은 입법부와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향신문이 이날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국회 사무처로부터 받은 ‘상임위원회 및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불출석 사례’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5월부터 이날까지 1년4개월 간 정부 부처 장·차관급 및 소속기관 기관장의 불출석은 29번이었다. 문재인 정부 말기인 2021년 1월부터 2022년 4월까지 1년 4개월 간 3번에 비해 10배에 가까웠다.

문재인 정부 시기 불출석 사례는 2021년 2월18일 질병으로 인한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불출석, 2021년 2월24일과 8월23일 국정현안 대응을 이유로 각각 신현수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진국 전 민정수석의 운영위원회 전체회의 불출석 등이다. 신 전 수석은 당시 이미 사의를 표명한 상태였고, 김 전 수석은 민정수석이 운영위에 불참하는 관례대로 불출석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첫 상임위 불출석은 정부 출범 3개월 만인 지난해 8월18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오태석 전 과기부 1차관, 박윤규 과기부 2차관, 안형환 전 방송통신위 부위원장의 불출석이었다. 과방위는 이날 소위원회 구성과 2021회계연도 결산 처리를 위해 전체회의를 열었는데 국민의힘은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장(제2소위원장)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의사진행에 항의하며 퇴장했다. 여야 모두 방송 관련 법안에 대해 안건 상정 권한이 있는 제2소위원장을 원해 벌어진 사태였다. 이 장관 등은 회의장에 들어가려 했으나 당시 권성동 원내대표 등 일부 여당 인사들의 만류로 회의에 불참했다.

첫 불참자로 기록된 이 장관은 최다 불참자라는 불명예도 안았다. 그는 이후로도 여야 간 의사일정 협의 이견을 사유로 3번 더 상임위에 불참했다. 여야 이견은 전체 불출석(29건) 사유를 놓고 봐도 22건으로 가장 많다. 이 장관은 지난해 8월24일에는 같은 날 열린 결산소위와 전체회의에 연달아 불출석했는데 당시 과방위원장이었던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불출석 경위에 따르면 이 장관은 “의사진행에 대한 여야 간 갈등 상황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불참을 결정했다”며 “평생 대학에서 반도체 연구를 해 온 사람으로서 국회 업무 등 그동안 겪어 보지 못한 낯선 환경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나온 판단이었다”고 밝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해 11월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화물연대 운송거부 철회 촉구 정부 담화문 발표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 안형환 방통위 부위원장도 상임위·예결위에 3번씩 불참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 위원장과 안 부위원장은 이 장관과 마찬가지로 과방위 파행의 영향이 컸다.

3선 의원 출신인 원 장관은 지난해 11월 정기국회 일정상 매년 비슷한 시기 열리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심사일에 사우디아라비아 출장을 이유로 불참했다. 원 장관은 같은달 24일 열린 예산안 심사에도 불참했다. 당시 원 장관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화물연대 파업 철회를 촉구하는 정부 담화문을 발표한 뒤 수송대책 점검차 부산 신항을 방문했다. 지난해 12월 안전운임제 기한 연장 법안 처리를 위해 열린 국토교통위 전체회의에도 인천에 위치한 공동주택 공사현장을 방문해 화물연대 파업에 비판 메시지를 냈다. 야당 측 국토위 관계자는 “국무위원이 상임위에 참석해 국민들을 상대로 설명하는 게 우선인데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다”며 “이 장관과 달리 정치경력이 많은 원 장관은 여당에서도 출석 관련 협조가 잘 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입법부 무시가 그대로 내각의 기조로 자리 잡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국회에서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데 이어 간호법에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해 8월30일 취임한 이재명 대표와 회담도 한 번도 가지지 않았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날 기자와 통화하며 “대통령이 탈정치, 정책 중심을 강조하다보니 장관들, 내각의 힘이 더욱 커지면서 국회를 좀 무시하고 여야 협상 등에 별로 의존하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 같다”며 “국무위원이 국회에 출석해 답변하는 건 헌법적 의무”라고 말했다.

강병원 민주당 의원은 “장관의 국회 불출석은 삼권분립이란 헌법정신을 무시하는 행위이며, 의회주의에 대한 폭거나 다름없다”며 “윤석열 정부는 예결산 심사·법안 처리 등 민생 현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국회의 요구에 성실히 응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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