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명단도 보도자료로…클린스만의 태만, 협회는 통제 못하나?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남자 축구 대표팀 감독이 다음 달 유럽 친선 경기에 동행할 선수 소집 명단 발표 기자회견을 건너 뛰고 보도자료로 대체했다. 앞서 코로나19 대유행 국면도 아닌 상황에서 사상 초유의 온라인 기자회견을 했던 것도 모자라 이마저도 않겠다고 거부한 것이다. 대한축구협회가 클린스만 감독을 아예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한축구협회는 28일 김준홍(김천 상무), 김지수(브렌트퍼드), 이순민(광주FC) 등 새 얼굴이 다수 포진한 유럽 원정 친선 경기 소집 명단을 발표했다. 클린스만호는 다음 달 8일 웨일스와 원정 친선경기를 치르고, 13일에는 영국 뉴캐슬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맞붙는다. 새 선수 발탁 배경, 전술·전략, 내년 1월 열리는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대표팀 구상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 보이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이 절차를 생략했다. 그는 유럽파 점검, 다른 개인 일정 소화 등을 이유로 한국을 떠나 현재 미국에서 재택근무 중이며 9월 유럽에서 대표팀에 바로 합류할 예정이다.
클린스만 감독이 기자회견을 생략한 이유에 대해 축구협회 관계자는 “명단 발표 후 실제 선수들이 소집되기 전까지 일주일 동안 부상 등 여러 변수가 생길 수 있고, 기자회견을 하면 특정 선수에 관한 질문이 집중되면서 많은 얘기를 할 수 없으니 선수 소집 첫날에 질문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부상 선수 변수 등을 언급했지만, 결국 기자가 직접 웨일스나 영국에 가서야 감독의 의중을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협회 관계자는 파주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에 선수들이 처음 소집될 때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클린스만 감독의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협회와 조율 없이 클린스만 감독이 하고 싶은 대로 대표팀이 운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집 명단 발표 관련 기자회견 생략은 전례 없는 일이다.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끌었던 전임 파울루 벤투 감독도 클린스만 감독처럼 유튜브 등으로 온라인 기자회견을 진행한 적이 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방역이 강화된 시점에서 꺼내든 방편이었다. 벤투 전 감독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터를 잡고 상주하며 오랜 기간 K리그 선수들도 관찰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팀 소집 명단 발표 전날 공개된 클린스만 감독의 인터뷰는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는 영국의 타블로이드지 미러와의 인터뷰를 통해 토트넘(잉글랜드)에서 최근 자국 최고 명문 구단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해리 케인에게 독일어를 배우는 등 현지 문화에 빨리 적응하라고 조언했다. 이를 두고 소셜미디어 등에는 한국 상주 약속도 지키지 않는 감독이 할 조언은 아닌 것 같다는 비난이 줄을 잇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과거 어느 외국인 감독도 누리지 못한 특별 대접을 받고 있다. 해외 재택근무는 물론 유럽축구연맹(UEFA) 자문위원, 미국의 스포츠전문 채널 ESPN 방송 패널 등 겸직을 허락받았다.
과거 K리그에서 감독을 지낸 한 축구계 관계자는 “협회와 계약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나라의 대표팀을 맡은 감독이라면 적어도 겸업을 하지 않거나 본업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계약 조건 변경이든 압박이든 클린스만 감독을 움직일 수 있는 건 협회밖에 없다”고 협회 책임론을 띄웠다.
김대길 스포츠경향 해설위원도 “감독의 선수 발탁 배경 등을 브리핑받을 수 있는 대표팀 기술강화위원회 같은 기구가 정상적으로 작동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대표팀 감독은 성적을 잘 못 내도 돌아가면 그만”이라면서 “협회가 우리나라 축구 발전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대표팀이 시스템으로 움직이게끔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안 되니까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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