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신부와 꽃의 스님 만나다…‘빛섬에 꽃비 내리거든’
종교 장벽·스무살 나이차 넘어 함께 책 출간
‘빛의 신부’와 ‘꽃의 스님’이 만났다. 종교의 다름은 예술이라는 이름 안에서 하나가 됐다.
세계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로 프랑스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인 김인중 신부와 서울에서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시인이자 북한산 심곡암 주지 원경 스님이 시와 에세이, 그림이 어우러진 책 <빛섬에 꽃비 내리거든>(파람북)을 펴냈다.
김인중 신부와 원경 스님은 28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고 책을 만든 과정과 소회를 전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올해 4월 비 오는 어느 날. 충남 청양군 빛섬 아트갤러리에서였다. 사실 두 사람 사이 세상의 벽은 높다. 종교의 장벽에다 세속적 나이 차이도 스무 해가 넘는다. 첫 만남인데 두 사람 모두 낯설지 않았다. “언제 뵌 적이 있는 분처럼”(김인중 신부), “오래전 만난 사이처럼”(원경 스님) 느껴졌다.
원경 스님은 “저는 불교 수행자이고 신부님은 가톨릭 수행자이다 보니 처음 시화집을 함께하자는 제안이 조금은 익숙하지 않은 정서라서 주저했다”면서도 “종교라는 틀에 갇혀 있기보다는 절집의 노승을 섬기듯이 모셔야겠다는 마음으로 다가섰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꽃을 좋아했다는 김인중 신부는 원경 스님의 시에 ‘꽃’이 자주 등장한다는 말에 관심이 커졌고 무료 급식소를 운영한다는 말에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전했다.
<빛섬에 꽃비 내리거든>은 ‘화중시 시중화(畵中詩 詩中畵)’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책이다.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다. 원경 스님이 먼저 김인중 신부를 생각하며 시를 짓고, 김인중 신부의 그림을 엮었다. 책에는 김인중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과 여러 그림들, 원경 스님의 시 54편과 산문 3편이 실렸다. 두 사람의 작품은 종교적 색채가 비교적 옅다. 시와 그림은 예술 안에서 잘 어우러진다. “백합꽃(가톨릭)과 연꽃(불교)은 하늘 아래에서 같이 피고, 하늘을 우러러 서로를 시샘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김인중 신부)
시 ‘무상을 넘어’에는 구도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고운 이도/ 세월이 빛을 바래게 하고/ 정든 이도/ 세월이 이별을 안겨줍니다// 이 무상한 세월 속에/ 영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 참된 기도 속에/ 영원의 빛과 닿습니다’.
김인중 신부는 원경 스님의 여러 시 중 ‘무상을 넘어’가 가장 좋았다고 꼽았다. “우리가 수도복을 입고, 승복을 입어서 참 거룩해 보이죠? 그러나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보다 낫지 않아요. 운이 좋아서 수도복을 입었을 뿐, 수행은 다 같이 하는 겁니다. 우리는 사랑 하나를 위해서 살아야 하고 사랑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원경 스님은 김인중 신부의 그림을 “승무의 긴 옷깃이 펼쳐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빨강과 주황, 노랑이 어우러지고 파랑과 보라가 맞닿은 그림이다. “신부님의 그림에는 시야를 환하게 해주는 묘한 세계가 있습니다. 시가 그림 안으로 스며듭니다.”
책 제목에 들어간 ‘빛섬’과 ‘꽃비’는 두 사람의 인연을 잘 말해주는 단어다. ‘빛섬’은 김인중 신부의 한글 호이면서, 원경 스님이 쓴 시의 한 대목을 나타내기도 한다. 원경 스님은 북한산 암자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야경을 보면서 “마치 하늘의 별이 땅으로 내려오는 듯한 이미지를 받아 우리 삶이 하늘 같은 마음을 닮고자 한다”고 했다. ‘꽃비’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 내린 비를 뜻한다.
김인중 신부와 원경 스님은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이 쉼과 새로운 길을 찾았으면 한다고 했다. 김인중 신부는 “사람이 한 방에 꽉 막혀 있으면 다른 방이 있는 걸 모른다. 그래서 방(문)을 열어야 한다. 독자들이 살아가는 길을 열어가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경 스님도 “저희들의 마음이 독자들의 삶 속에 편안하게 전달되길 바란다”며 “자기 생각에 갇히지 않고 성찰을 통해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인간 의식의 가치”라고 말했다.
간담회를 마치며 두 사람은 서로의 묵주와 염주를 교환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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