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범죄’로 흑인 3명 희생…빛바랜 “내겐 꿈이 있다” 마틴 루서킹 연설 60주년

최서은 기자 2023. 8. 2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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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범죄가 발생한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한 매장. AFP연합뉴스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인종 차별 철폐를 촉구하며 “내겐 꿈이 있다”고 연설한 워싱턴 행진 60주년이 인종 혐오로 얼룩졌다. 킹 목사의 유족들은 “1963년과 2023년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2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전날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한 매장에서 총기를 난사해 흑인 3명을 숨지게 한 20대 백인 남성의 집에서 2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인종차별적 글이 발견됐다. 범행에 나서기 전 언론과 부모, 사법당국을 상대로 흑인에 대한 증오심이 상세히 담긴 여러 입장문도 작성해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범행 당일 아버지에게 자신의 노트북을 확인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이를 본 가족들이 당국에 신고했지만 이미 사건이 벌어진 뒤였다.

이 남성이 사용한 총기에는 나치 문양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고, 당일 매장 안팎에는 백인 고객들이 훨씬 많았지만 흑인들만 골라 총을 겨냥했다.

잭슨빌의 보안관 T.K. 워터스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가 더 큰 (범죄) 집단의 일원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면서 총격범이 신원조회 등을 거쳐 적법하게 총기를 구매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번 공격을 증오범죄이자 인종차별적 동기를 지닌 폭력적 극단주의 행위로 규정하고 조사 중이다. 지난 3월 FBI가 발표한 2021년 증오 범죄 분석에 따르면 2020년 이후 미국에서는 전반적인 증오 범죄가 11% 이상 증가했다.

공화당 대선주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이번 사건에 대해 “그는 겁쟁이의 길을 택했다”며 “그는 인종에 따라 범행 대상을 찾았고, 이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건이 발생한 잭슨빌은 주민 97만명 중 약 30%가 흑인이다. 63년 전인 1960년 수백명의 백인들이 야구 방망이와 도끼로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흑인들을 공격한 사건이 벌어졌던 곳이며, 5년 전에도 흑인을 겨냥한 총격 범죄로 2명이 숨진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해 성명을 내고 “우리는 백인 우월주의가 미국에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분명하고 강력하게 말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마트에 가는 흑인 가정이나 학교에 가는 흑인 학생들이 총에 맞아 쓰러질까 봐 두려워하는 나라에서 사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며 “증오가 있을 곳은 없으며 침묵은 공모”라고 밝혔다.

범행이 발생한 날은 워싱턴 행진 60주년 기념식이 열렸던 날이다. 킹 목사는 1963년 8월28일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역사적 연설을 마친 후 25만여명을 이끌고 워싱턴 행진을 주도하며 인종차별 철폐를 촉구했다.

킹 목사의 가족과 친척들은 이번 일에 대해 “비양심적이며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마틴 루서 킹 3세의 부인은 “많은 사람들이 왜 우리가 다시 모여야 하는지, 1963년과 상황이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1963년과 비교했을 때 2023년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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