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무빙' 강풀 작가 "'원작보다 낫다'는 반응, 웃어야 할지…"

박정선 기자 2023. 8. 2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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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 작가.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한국 웹툰을 대표하는 '웹툰계의 시조새, 웹툰계의 전설' 강풀 작가가 신인 드라마 작가로 변신했다.

강풀 작가가 직접 집필한 첫 드라마는 디즈니+ '무빙'이다. '무빙'은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아픈 비밀을 감춘 채 과거를 살아온 부모들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액션 시리즈. 2015년 공개된 자신의 동명 웹툰을 가져다 20부작 드라마로 재탄생시켰다.

류승룡, 한효주, 조인성, 류승범 등 호화 캐스팅으로 먼저 이목을 끈 이 작품은 출연진 라인업보다 더 강력한 '강풀의 저력'을 널리 알리고 있다. 멜로, 액션, 휴먼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한데 잘 섞어내고, 모든 캐릭터에게도 납득 가능한 서사를 부여하고, 신인 배우들로도 시청자의 집중력을 극대화하는 '강풀 마법'이다.

'무빙'을 향한 관심이 최고조에 다다른 때, 직접 만난 강풀 작가는 "'원작보다 낫다'는 반응에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강풀 작가.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호평이 나오고 있다.
"기분 좋다. 제가 거꾸로 물어보고 싶다. 반응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 주변 반응밖에 잘 모르겠는데, 주변 사람들이야 워낙 좋게 말해주니까. 만화 그릴 때도 제 댓글을 잘 안 봤다. 끝나고 나면 보고 그랬다.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보면 검색해본다. 반응이 제 생각보다도 더 좋은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었나.
"'원작보다 낫다'는 반응.(웃음)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어봤다. 항상 원작과 비교당하는 입장이었는데. 대부분이 원작보다 더 좋다는 반응이어서, 내가 그린 만화에 미안하기도 하더라. 기분 좋다."

-직접 대본을 쓰게 된 이유가 있나.
"내 만화는 영화화할 때 항상 벽에 부딪히더라. 처음엔 다들 좋다고 계약하고 가져가는데, 두 달 뒤 '이상하다'며 전화가 온다. 축약하거나 변형을 해야 하니까. '무빙'은 원래 다른 작가가 대본을 썼었는데,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진지하게 됐다. 영화를 할 때는 시나리오가 와도 안 봤었다. 만화는 내 것이지만, 영화는 감독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호흡이 길고, '무빙'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축구 보다가 '네가 한 번 뛰어봐' 처럼, '네가 해보라'는 말을 들었다. 역으로 제안해서 '한번 써볼 테니 판단해달라'고 했다. 만화 그릴 때는 저만 알아보면 되는 시나리오를 써놓고 시작한다. 근데 이건 모두가 알아봐야 하는 시나리오여야 했다. 그렇게 썼는데, 좋다는 반응이 나왔다."

-드라마로 만들며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만화는 어쩔 수 없이 덜어내는 부분이 있다. 마감이 있으니까. 그러다 보니 캐릭터가 납작해지는 부분이 있더라. 드라마로 만들면, '내가 미처 못 했던 것들을 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도 어시스턴트들과 함께하지만 모든 걸 제가 책임진다. 근데 이건 하다 보니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 예전엔 저 혼자 망하면 끝인데, 이건 많은 사람과 같이 하는 것이라 자세가 달라졌다."

-원작의 추어탕이 남산 돈가스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돈가스를) 좋아하긴 한다. 하하하. 상징적으로 안기부가 남산에 있었으니까. 한국만화가협회가 남산에 있다. 실제 안기부 구청사 건물이다. 그곳 지하를 아직도 못 들어간다더라. 이상하게 음산하다. 안기부라는 게 중요한 요소인데, '미연과 두식이 어디서 데이트를 할까'했는데, 남산 돈가스가 생각났다. 실제로 남산 돈가스를 먹어본 적은 없다.(웃음)"
강풀 작가.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드라마를 만들며 가장 중점에 뒀던 부분은.
"무조건 재미다. 만화를 20년 넘게 그렸다. 시대가 변하는 걸 느낀다. 사람들은 점점 서사를 보지 않더라. 릴스, 숏폼 이런 짧은 걸 보는 시대가 됐다. 저는 줄거리와 서사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결국 중요한 건 인물이다. 인물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 그걸 다 풀려면 사람들은 지루해할 텐데. 그걸 끌고 갈 수 있는 건 재미밖에 없더라.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이 보지 않지 않나. '나만 재미있으면 어떡하지'라며 매일 고민한다. 대중이 재미있어하는 걸 맞춰가는 게 힘들었다."

-새로운 캐릭터가 투입된 것에 대한 기존 팬들의 반응 봤나.
"전계도와 프랭크는 1화부터 7화까지 텐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캐릭터였다. 급조한 캐릭터가 아니다. 프랭크는 다른 만화에 나올 인물이었다. 그걸 끌어온 거다. 전계도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아이들이 자라면 어떻게 자랄까'란 생각을 했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관계가 컸기 때문에, 중간 세대를 보여주고 싶었다. 전계도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15년 원작을 2023년의 이야기를 만들 때의 고민도 있었을 것 같다.
"무빙은 8년 전 작품이다. 2년 전부터 시나리오를 썼으니, 저에겐 10년이 된 작품인 거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무빙' 전에 타이밍이란 작품을 썼는데, 그건 20년 된 것 같다. '무빙'은 사실 타이밍부터 출발했다. 시간 능력자에 이어 신체 능력자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소시민적 히어로가 등장하는 작품은 이미 '스파이더맨'이 그러고 살았으니 항상 있었다. 흔해지더라도, 재미만 있다면 시대와는 상관없더라."

-안기부 설정을 요즘 어린 나잇대 시청자들은 잘 모른다더라.
"안기부는 역사에서 사라진 것이다. 국정원으로 바뀌었지 않나. 요즘 아이들은 안기부를 잘 모르더라. 한국형 히어로라고 우겼는데 먹혀들었고, 원래는 근대 한국의 역사를 넣고 싶었다. 완전히 픽션이긴 하지만, 한국의 역사를 넣으면 한국형 히어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풀 작가.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캐스팅 과정에 참여했나.
"캐스팅 과정에 참여했다. 같이 앉아있었다. 이 일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원래는 소속사에 이야기도 하고, 대본도 직접 전달하면 안 되는 거더라. 뭘 모르니까, 배우들에게 직접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했다. 젊은 세 배우는 감독님에게 맡겼다. 젊은 배우들을 잘 몰랐다. 경쟁률이 엄청 높았더라. 성인 배우들은 다 같이 캐스팅했다. 할 때마다 신기했다. 너무 유명한 배우들이니까 '한 번 부탁해 보자'였다. 의외로 다들 해주는 거다. '이게 진짜인가' 싶을 정도였다. 캐스팅이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차태현, 김성균, 문성근 배우에게는 직접 연락했다. 류승범, 박휘순 배우도 직접 전화했다. 전부 다 이전에 같이 했던 분들이다. 고맙다. 류승범은 섭외 당시 우리나라에 없었다. 동네에서 친했던 사이다. 형인 류승완 감독과 친하게 지내는 과정에서 사적인 자리에서 만났다. 프랭크라는 캐릭터를 하기 위해선 이방인의 분위기가 나야 했다. 저는 류승범밖에 생각나지 않더라. 류승완 감독에게 가서 '이거 하고 싶은데, 승범이 영상통화 좀 시켜달라'고 했다. 류승범이 굉장히 장고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하겠다고 하더라. 너무 고마웠다."

-애정하는 캐릭터는 무엇인가.
"지금 시점에서는 류승범에게 가장 고맙다. 1화에서 7화까지 텐션이 낮아질 수 있었는데, 우리 배우들은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다 잘해줬다. 진짜 스타 배우들인데, '이 사람들이 괜히 이렇게 된 게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주가 되는 장면이 아닌데도, 배경이 돼 주더라. '이렇게 대단한 배우들을 모아놓으니까 시너지가 대단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정원고 3인의 활약을 보며 흐뭇했겠다.
"이 친구들이 얘들이 아니지 않나. 촬영장에 저는 진짜 많이 놀러 갔다. 몇십번을 갔다. 원래 작가들은 촬영장에 안 간다더라. (웃음) 이 친구들은 저에게 아직도 학생처럼 보인다. 고윤정, 김도훈, 이정하 셋이 진짜 사이가 좋다. 진짜 친구들 같다. 이 아이들이 친한 모습이 진짜 작품에 보이더라. 정하랑 윤정이랑 도훈이가 너무 예쁘다."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은 무엇인가.
"시간 순서대로 가자는 의견이 많았다. 안기부부터 고등학교 이야기까지. 저는 지금의 순서대로 가고 싶어서 끝까지 반대했다. 웹툰을 연재할 때도 초반에 반응이 안 좋았다. 어떤 드라마 제작진이건 다 똑같은 말을 했을 것 같다. '시간 순서대로 가는 것이 어떠냐'고. 근데 고집을 피웠다. 첫 번째로 미스터리 구조가 사라질 것 같았고, 두 번째로 텐션이 떨어질 것 같았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지루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순간보다 전체를 봐야 했다. 모든 이야기엔 이유가 있을 것이니까. 거액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작품 앞부분을 하이틴으로 밀어붙인다는 건 굉장히 모험이었는데, 제작진에게 고맙다."
'무빙'

-500억 원 제작비로 주목받아서 부담됐을 듯한데.
"저도 정확한 제작비를 솔직히 모른다. 쓰고 싶은 게 많은데, 이걸 제작비가 감당할 수 있을지 (마음이) 쪼그라들더라. 고맙게도 박인제 감독님이 '일단 쓰라'고 했다. 오히려 풀어줬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됐다."

-워낙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무빙'이 망하면 디즈니도 망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잘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디즈니+를 편들자는 게 아니라, 저는 다른 OTT와 유튜브에서 1.5배속 되는 게 싫다. 근데 디즈니는 안 되더라. 창작자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구독자의 의견이 더 중요해졌다. OTT 8개를 구독하는데, 1.5배속으로 보는 게 이해 가지 않는다. '내가 옛날 사람이구나'란 생각이 자꾸 들더라. 근데 저는 그런 면이 좋았다. 디즈니가 어렵다고 하는데, 심지어 (디즈니+가) 철수한다 이런 건 다 오보로 알고 있다. '무빙' 공개 방식도 마음에 든다. 8, 9화 두 개를 합치면 영화 한 편 분량이다. 그걸 두 개씩 하니, 매주 하나의 영화를 발표해보자는 마음가짐이었다."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으로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15세도 가능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표현에 있어서 한계를 보고 싶지 않았다. 장주원이란 캐릭터가 중요했다. 장주원이란 캐릭터는 재생 능력자인데, 이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인공들의 싸우기보다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표현의 수위를 낮추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초짜여서 저도 좀 당황하기 했다. 글에서 '뼈가 부러진다'인데 영상을 보니 진짜 부러진 거다.(웃음)"

-드라마 대본은 처음인데.
"사실 드라마를 많이 안 봤다. 일단 티빙과 시즌을 구독해서 과거 드라마를 찾아봤다. 극본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이전에 쓰신 다른 작가님들의 스타일이 저랑 안 맞더라. 쓸 자신도 없었다. 제 극본은 (기존 드라마 대본과) 형식이 다르다. 말 그대로 그림을 그리듯이 극본을 썼다. 양도 진짜 많다. 한화에 60쪽까지 나왔다. 대사보다 지문이 많은 경우가 있던 거다. 몰라서 그랬다. 그렇게 해놓고 감독님에게 전달했을 때는 '극본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제가 만화만 그려서 대사가 다 문어체다. 말풍선에 있으면 문어체가 괜찮은데, 배우들이 발음했을 때는 문제가 생기더라. 현장에서 찍으며 당황했을 거다. 감독님에게 '이 극본은 그냥 내비게이션이다. 목적지로 같이 잘 가면 된다'고 했다."
'무빙'

-드라마 작가로서의 칭찬도 많다.
"흐뭇하면서도 이상하다. 영화를 할 때는 평가로부터 자유로웠다. 근데 '무빙'은 잘못되면 내 책임이란 생각이 든다. (호평이) 흐뭇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누구보다 원작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에 대한 반응이 좋으니까 좋고, 제작진에게 가장 감사하다. 투박한 극본을 가지고 다듬어서 만들어줬으니까. 이번에 많이 배웠다."

-오리지널 대본을 집필할 생각도 있나.
"제 앞날을 저도 모르겠다. '무빙' 이후에 내 행보가 정해지지 않을까. 지금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오히려 머릿속을 비우려고 한다. 많은 제안이 오는데, '내일 뭐 먹을지' 이런 생각만 하고 있다."

-악역을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를 주로 만든다.
"착한 사람이 이기는 이야기를 그냥 좋아한다. 그런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한다. 저희 아버지가 목사님이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성경 말씀이 있다. 그런 가정환경이라서 그런지, 제 모든 이야기가 같이 힙 합쳐서 이뤄내는 것이더라. '무빙'에선 악역이 두 명 정도 더 있다. 착한 사람이 이기려면 악당이 있어야 하니까. 원작에서는 악당이 민차장 한명이었다면, 여기선 제작비가 늘어나며 악당도 늘어났다."

'무빙'
-히어로의 정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미연이 '가장 중요한 건 공감 능력'이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이해해주는 게 공감이지 않나. 전체를 지배하는 기조가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시청자들이 어떤 걸 느꼈으면 하나.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무빙'이 모두 공개된 후에도, 어떤 화는 따로 빼놓고 복습할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한다."

박정선 엔터뉴스팀 기자 park.jungsun@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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