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방위산업의 글로벌 트렌드: 첨단기술, 기업주도, 수출산업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초반, 러시아 폭격으로 우크라이나 기간 통신망이 파괴됐다. 열세의 우크라이나는 통신두절까지 더해져 패배할 뻔했다. 이때 구세주로 나타난 것이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다. 550㎞의 저고도 우주에 약 4000대 인공위성을 발사해 세계를 연결하는 상업통신망 '스타링크'가 전장을 바꿨다. 우크라이나 군사 통신이 재개됐을 뿐만 아니라 민간인도 접속해 적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며 결정적 반격의 전기를 마련했다. 이처럼 전쟁 양상과 방어 수단이 변화하며 글로벌 방위산업도 새 시대를 맞고 있다.
군사 대국인 미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 일본도 군비 증가에 적극적이다. 세계 국방예산은 2031년 2조2000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전망됐지만, 지난해 이미 이를 넘어 예측보다 9년 앞당겨졌다. 지난해 미국의 국방예산은 8160억달러로, 그중 1450억달러를 국방 연구개발(R&D)에 투입해 신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독일은 내년, 그리고 일본은 2027년까지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기준 세계 방산시장 규모는 5348억달러로 추정된다. 세계 100대 방산기업 중 41개가 미국기업으로, 가장 많다. 이어 러시아 9개, 영국 7개, 프랑스 6개, 중국이 5개, 한국은 3개다. 전차, 함정, 전투기 등 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방위산업은 기계, 전자, 통신, 화학 등 전통 민간산업에 인공지능(AI), 로봇, 빅데이터 등 최신 첨단기술을 더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처음 발발한 러·우 전쟁은 방위산업 향방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하이테크 무기의 일반화다. AI는 적의 위치, 무기, 병력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드론은 저고도 우주위성과 통신하며 적을 정밀 타격하고 있다. 자율 주행하는 로봇전차와 무인 차량은 전투와 운송의 제일선에서 활약한다. 빅데이터 기술은 적군의 배치, 동태와 무장 상황자료를 신속하게 분석해 최적의 방어·공격 수단을 분초를 다투며 제시한다. 군인은 웨어러블 장비를 착용하고 날렵하게 전장을 누비며 로봇과 드론, 무인차량을 지휘한다. 그야말로 하이테크 방산 제품이 전장의 핵심 전력이다.
둘째, 기존에는 인터넷,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 신기술을 국방 당국이 개발하고, 민간에 군수 기술을 이전했다. 이제는 AI, 자율주행, 로봇, 반도체 등 최신 첨단기술을 민간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스타링크'는 드론제어와 정밀타격에 활용돼 전쟁 판도를 바꿨다. '씨쓰리에이아이(C3 AI)'는 제조, 유통 산업에 적용하던 AI를 장거리 조준, 전투기 예방정비에 활용한다. 에어택시 제조업체 '조비'는 도심항공(UAM) 기술을 군사용 드론에 적용한다. 또한, 최근 방산시장 확대는 첨단기술을 보유한 민간기업의 진입을 유발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도 지난 5월까지 170억달러를 방산에 투자하는 등 스타트업의 진출도 활발하다.
셋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방산기업의 해외 진출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방산 수출은 2021년 360억달러에서 지난해 819억달러로 급증했다. 프랑스는 독자적 외교 관계를 무기체계 판매에 활용, 세계 방산시장의 11%를 점유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GDP의 5% 이상을 국방에 투입하는 정부 정책에 힘입어 생산 무기의 75%를 수출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국정과제에서 '첨단전력 건설과 방산 수출 확대의 선순환 구조 마련'을 제시하며, 방산 수출 확대라는 정부 정책 기조를 강조했다.
우리 방위산업은 자주국방을 모토로 하는 국군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개발됐다. 자동차, 조선, 전자 등 주요 산업이 수출지향형 성장궤도를 걸어온 반면, 방산은 국방 조달 시장에 집중된 산업 생태계가 형성됐다. 기술혁신보다 가격경쟁력을 갖춰야 협소한 조달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2000년대 국내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해외로 눈을 돌렸고, 탄탄한 제조역량을 바탕으로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쌓아갔다. 특히, 러·우 전쟁에 따른 수요 확대에 신속히 대응, 2020년 30억달러이던 방산 수출은 2021년 73억달러, 지난해에는 173억달러로 고속 성장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최근 방산 수출은 기술 우위보다 빠른 공급능력과 가격경쟁력으로 성공한 측면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 방산기업은 주문생산방식(Build-to-Order)이라 급증하는 수요에 맞춰 공급을 늘리지 못했고 제조역량이 뛰어난 우리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그러나 수급 상황은 언제든지 급변할 수 있으며, 하이테크 방산 제품 개발없이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 국내 민간산업은 AI, 빅데이터, 로봇, 자율주행차, 드론, 수소·전기차, 반도체 등의 첨단 산업기술을 개발 중이거나 이미 보유하고 있다. 민간의 첨단 산업기술이 방위산업에 접목될 수 있다면, 지금의 방산 수출 호조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방산 수출은 단지 경제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해외에서 검증된 첨단 방산 제품을 국내에도 적용함으로써 국군의 첨단전력이 강화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첨단기술을 보유한 민간기업과 전통의 군수기업간 공동 연구개발을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 우리의 방산기업이 기존의 전술 무기와 함께 첨단 방산 제품을 갖추게 되면, 방위산업은 빠른 공급역량, 가격경쟁력 그리고 첨단기술의 3박자를 갖춘 수출 선도산업으로 성장해 세계 방산시장을 주도할 것이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원장 art@keit.re.kr
〈필자〉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원장은 정책·경제·통상 분야에 능통한 관료 출신 기관장이다. 군산제일고, 서울대 경제학과, 영국 리즈대 경영대학을 졸업했다. 행정고시 36회에 합격, 1993년 상공자원부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지식경제부 투자유치과장, 산업통상자원부 정책기획관·통상협력국장·통상교섭실장 등으로 활동했다. 주유럽연합(EU)·벨기에 대사관 상무관, KOTRA 교역지원센터장, KAIST 과학기술정책센터 연구교수 등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지난해 9월부터 R&D 기관 KEIT에서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취임사에서 KEIT를 '혁신성장 촉진자', '산업 대전환 견인차'로 거듭나도록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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