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조? 그래도 진행!” 이재용 ‘회장’의 삼성 운명 건 ‘결단’ [K-파운드리가 미래다②]
이재용 회장 승진 시기 결정
고객사에 생산능력 신뢰 핵심
삼성 이긴다면 ‘이 전략’ 덕분
[헤럴드경제=김지헌·김민지 기자] “삼성이 ‘쉘 퍼스트(Shell First) 전략’을 한다고 하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이런 배포가 있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의 삼성이 아닙니다. 더 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반도체업계 고위 관계자)
삼성이 선제적으로 파운드리(반도체 칩 위탁생산) 생산공장 투자를 확대하며, 업계의 이목을 크게 집중시키고 있다. 삼성 파운드리 투자의 핵심에는 이른바 ‘쉘 퍼스트’가 있다. 지난해 10월 삼성 반도체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쉘 퍼스트 전략은 반도체 위탁생산에 필수적인 공간인 생산공장 ‘클린룸’을 수조원을 들여 먼저 조성하고, 이후 고객사의 주문이 들어오면 즉각 생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선제적 투자 방식을 뜻한다. 칩 고객사의 파운드리 수요가 발생하면 언제든 곧장 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략으로, 삼성만의 치밀함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수익이 나기도 전에 많게는 수십조원의 투자를 먼저 단행하는 승부수라 이재용 회장의 뒷심과 결단이 의사결정 기저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클린룸 조성을 위해 막대한 금액을 먼저 쓴 뒤 고객사의 수요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에서도 리스크 규모가 기존 사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에 삼성이 애플·엔비디아 등 글로벌 반도체시장을 이끄는 IT기업들의 칩을 수주하기 위해 절박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2017년 5월 파운드리사업부 출범을 본격화한 후 삼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사업지원TF’를 중심으로 글로벌 파운드리 1위 TSMC에 대한 벤치마킹(그 대상과 비교 분석을 통해 장점을 따라배우는 행위)에 나섰다.
특히, 당시 삼성은 파운드리사업의 본질을 ‘캐파(CAPA·생산능력) 업’으로 규정하고, 효율적으로 칩을 생산하기 위한 다양한 구상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TSMC가 어떻게 설비투자를 조절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삼성에는 중요한 벤치마킹 과제였다.
파운드리사업의 본질이 캐파업이란 의미는, 우선 설비투자를 확보해 고객사들에 ‘고객사가 원하는 만큼 양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뒤에 고객사의 칩을 수주한다는 뜻이다.
회사가 시장의 구매 수요를 확인하고 그에 따라 생산일정을 대응하는 기존의 메모리반도체 비즈니스와 정반대다.
D램이나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고객사들은 삼성에서 제품을 사지 못하면 다른 업체에서 구매할 수 있다. 삼성전자 제품을 대체할 반도체를 SK하이닉스와 미국의 마이크론에서 구입하면 되는 식이다.
그러나 파운드리시장은 생산부터 근본적으로 다르다. 고객사가 만들려는 반도체는 오직 이 위탁생산을 맡긴 파운드리 회사 한 곳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고객사로서는 해당 파운드리회사의 생산능력과 양산 규모를 꼼꼼히 따져볼 수밖에 없다. 파운드리시장에서 수십년간 노하우를 쌓은 TSMC를 삼성 역시 추격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본격적으로 고객사를 유치하기 위해 삼성 입장은 “우리도 고객사 양산을 위한 생산공장을 이미 어느 정도 지어놨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쉘 퍼스트 전략이 도출됐다는 설명이다.
삼성은 지난해 10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2’에서 파운드리 성장 전략으로 쉘 퍼스트 전략을 처음 공개했다. 비슷한 시기인 지난해 10월 말 이 회장은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했다. 이 회장의 리더십이 경영 전반에 부각되는 시점과 쉘 퍼스트의 본격화 순간이 맞아떨어지며, 삼성의 공격적 투자가 가능해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 회장은 파운드리사업에 공을 들여왔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메모리사업을 지휘해 세계 최고 수준 기업 반열에 올려놓았다면, 파운드리사업은 이재용 회장 시대의 최고 당면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 회장은 2000년대 상무였을 당시, 메모리용으로 계획된 기흥공장 2층을 300㎜ 시스템LSI 전용라인인 S라인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해 삼성의 파운드리기술력 확보의 포문을 연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은 올 상반기 기준 25조3000억원이 설비투자를 집행했다. 반도체시장 불황으로 투자를 줄이는 기업들과 달리 하반기에도 이 같은 기조를 이어가 사상 최대 수준의 투자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대부분의 투자가 파운드리사업에 집중될 전망이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은 사회연결망서비스(SNS)를 통해 “오직 투자를 통해서만 기업은 새로운 혁신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요즘 같은 경기침체기에 투자는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삼성의 쉘 퍼스트 전략은 현재 ▷평택캠퍼스 ▷경기도 용인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파운드리공장 등 주요 3곳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각각에 반도체 초격차 확보를 위한 수백조원 단위의 투자를 단행했다.
우선, 삼성전자 최첨단 반도체 생산허브인 평택캠퍼스는 세계 최대 규모로 조성됐다. 지난 2015년 상반기 착공을 시작해 총 85.5만평(283만㎡) 부지에 총 6개의 반도체 라인이 들어서고 있다. 현재 약 3개의 라인이 완공됐다. 제1라인 P1이 지난 2017년 6월, P2가 2020년 8월, P3가 2022년 7월 가동을 시작했다. 네 번째 P4가 현재 건설 중이며, 내년 상반기 가동이 예상된다. P5, P6은 아직 착공을 시작하지 않았다.
제일 먼저 지은 P1에서는 주요 메모리 반도체인 D램과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다. P2와 P3는 메모리반도체와 파운드리를 모두 양산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팹이다. 극자외선(EUV) 공정 기반 D램, 낸드, 5나노 이하 EUV 파운드리 생산이 가능하다. 지난해 낸드제품으로 가동을 시작한 P3에서는 올 하반기 파운드리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를 목표로 삼은 만큼, 향후 완공될 P4~P6 라인은 파운드리 생산 중심으로 가동될 가능성이 크다.
아직 평택캠퍼스 사업이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삼성전자는 또 다른 수백조원대 장기 프로젝트를 선언했다. 2042년까지 300조원을 투입하는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근방의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가 주인공이다.
용인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는 향후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사업 허브가 될 전망이다. 삼성은 이곳에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 5개를 구축한다. 아직 생산제품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단일 단지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로 조성되는 만큼 주로 파운드리 라인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최대 150개의 소부장·팹리스기업을 용인 클러스터에 유치하며 힘을 보탠다. 국내외 주요 파트너사들과 함께 파운드리 생태계 강화에 나설 전망이다.
당장 연내 완공될 예정인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에서는 4나노 공정 기반의 파운드리제품이 내년 하반기 양산을 시작한다. 벌써 고객사도 확보했다. 삼성은 최근 미국 AI 솔루션 혁신기업 ‘그로크(Groq)’와 파트너 계약을 체결하고, 내년 말 테일러 공장에서 그로크의 4나노 AI 가속기 칩을 생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이 4나노 공정 수율을 75%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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