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율성 공방…박민식 "장관직 걸고 저지" vs 강기정 "당당히 추진"(종합)
강기정 시장 "철지난 이념논쟁…더이상 국론분열 조장 말라"
(광주=뉴스1) 박준배 김동수 이수민 기자 = 광주 출신 중국 귀화 음악가인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가보훈부와 보수단체는 "정율성은 공산주의자"라며 광주시의 사과와 사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광주시와 시의회, 지역 정치권 등은 "철지난 이념논쟁으로 광주를 고립화하려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맞서고 있다.
◇ 박민식 장관·자유통일당·보수단체 "광주시 사업 중단·강기정 구속"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28일 전남 순천역 광장에서 열린 6·25전쟁 호남학도병 현충시설 건립 계획 발표 자리에서 "장관직을 걸고서라도 정율성 관련 사업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정율성은 우리 국민과 국군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공산주의자"라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그런 사람에게 국민 예산이 쓰인다는 것은, 단 1원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도 모르고 광주시민들도 모르는 그런 사람 아니냐. 그분의 공에 대해서도 사실상 상당히 회의적이다"며 "헌법 1조를 정면으로 배반하고 배신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업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박 장관은 "지방자치단체(광주시)의 자율성이 존중돼야 하지만 국민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광주시가 강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사업을 저지하기 위한 법적 조치도 여러 방면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또 "김원봉의 의열기념관이 지어졌다고 해서 정율성 기념공원이 합리화되는 건 아니다"며 "김원봉을 대한민국 독립 이래 최고 훈장을 주고 싶다고 한 문재인 정부의 역사관도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유통일당과 자유마을 지부원 등 보수단체 회원 100여명도 가세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광주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민주화 성지 광주에서 공산당 정율성 공원이 웬말이냐"며 "광주시는 사업을 즉각 취소하고 강기정 시장을 구속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집회 과정에서 5·18민주화운동을 폄훼·왜곡하는 전단지를 배부했다.
'세계 최고 정보기관 미국 CIA비밀보고서 요약'이라는 이름의 전단에는 '5·18은 공산당 간첩과 김대중 지지자들의 합작품'이라며 '폭도들이 전남대 의대 옥상에서 국군 헬리콥터를 향해 발포했다', '당시 국군의 발포 명령은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5·18 기념재단은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한 혐의로 자유통일당을 경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광주시·광주시의회·지역 정치권 "오염수 방류 덮으려는 술책"
강기정 광주시장과 광주시의회, 지역 정치권 등은 강하게 반발했다.
강 시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은 광주시민이 뜻을 모아 해온 일이고 전세계적으로든, 국가적으로든, 광주시 차원이든 하나도 부끄럽거나 잘못된 사업이 아니다"라며 "당당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강 시장은 "정율성 기념사업은 30여년 전 정부가 시작했고 민선 6·7·8기까지 이어온 사업"이라며 "여전히 한중관계는 중요하고 이미 예산이 집행됐다는 점에서 '중지'라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지난 30년간 정율성 선생은 국익을 위해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됐다"며 "처음에는 북방정책의 맥락에서 '공산권과의 교류' 목적으로, 이후에는 '한중우호 교류사업'의 일환으로, 최근에는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 등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목적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정율성 선생이 우리정부의 대 중국 외교의 중요한 매개였음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강 시장은 "박민식 장관을 보면 2013년 박승춘 처장 당시 보훈처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당시 보훈처는 수십년간 광주시민이 마음을 담아 부르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을 금지했고 이념의 잣대로 5·18을 묶고 광주를 고립시켰다"고 역공했다.
그러면서 "당시에도 보훈처의 철 지난 매카시즘은 통하지 않았고 광주시민들은 이를 잘 넘어섰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며 "국가보훈부는 오랜 기간 대한민국 정부도, 광주시민도 역사 정립이 끝난 정율성 선생에 대한 논쟁으로 더이상 국론을 분열시키지 말라"고 촉구했다.
광주시의회도 성명을 내고 "윤석열 정부는 철지난 색깔론과 이념몰이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시의원들은 "광주는 노태우 정부부터 이어져 온 한중 친선과 문화교류를 충실하게 이어가고 있을 뿐"이라며 "정율성 선생을 영웅시하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율성 논란은)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찬성하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감추려는 술책이라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며 "오로지 총선을 승리하기 위한 정략적인 꼼수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김명진 김대정 정부 전 청와대 행정관도 성명을 내고 "중앙정부가 못하는 대중국 균형외교를 지방정부가 나서 명맥을 유지하고, 정부가 못하는 일을 민간이 나서 역할을 분담하면 미래국익 관점서도 유익한 일"이라며 "중앙정부는 어깃장이 아니라 적극 후원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 정율성 기념사업은 35년 전 노태우 정부시절 시작
정율성(본명 정부은)은 일제강점기였던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에 가입했다. 이때 의열단장이자 조선혁명간부학교장이던 김원봉이 '음악으로 성공하라'는 뜻으로 '율성'(律成)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1936년 '오월의 노래(1936년)'를 시작으로 '팔로군 행진곡(현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1939년)' 등을 작곡했다.
1945년 광복 뒤 북한에서 조선인민군 구락부장·협주단장으로 활동하며 '조선인민군 행진곡' 등을 작곡했다. 6·25전쟁 시기엔 중국 인민지원군의 일원으로 전선 위문활동을 했으며, 1956년 이른바 '8월 종파사건'을 계기로 중국에 귀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율성 기념사업은 35년 전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기인 1988년 중앙정부에서 먼저 시작했다. 서울올림픽 평화대회 추진위원회에서 정율성의 부인인 정솔송 여사를 초청하며 한중우호의 상징으로 삼았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1993년 한중 수교 1주년 기념으로 문체부가 정율성음악회를 개최했다. 96년에도 문체부 주관으로 정율성 작품 발표회를 진행했으며, 국립국악원은 그가 소장했던 자료를 기증받았다.
기증에 감사의 뜻으로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양국 간의 상호 이해 증진과 문화교류에 이바지한 감사를 담아, 부인 정솔송 여사에게 감사패를 문체부 장관이 직접 전달했다.
이후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참여해 정율성 음악이 연주되는 퍼레이드를 참관했다.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1년에는 국립국악원 70주년을 기념해 정율성 선생을 포함 미공개 소장품을 전시하는 특별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정율성 기념 공원 논란'은 지난 22일 박 장관이 "정율성은 인민해방군 행진곡을 작곡한 장본인으로, 자유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앞장섰던 사람을 세금으로 기념하려는 광주시 계획에 우려하며 전면 철회돼야 한다"고 SNS에 글을 올리면서 불거졌다.
광주시는 2020년 5월 동구 불로동 생가 일대에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계획을 발표하고 올해 연말까지 48억원을 들여 완성하기로 했다. 애초 올해 12월 완공 예정이었으나 토지소유자와 분쟁이 있어 지연됐으며 계약 체결은 마무리됐고 내년 4~5월쯤 준공할 예정이다.
nofatejb@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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