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 단 한순간도 지지 않았던 위대한 ‘그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김윤정,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

기자 2023. 8. 28. 15: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윤정


intro

“나는 독서 중의 독서, 구극(究極)의 책 읽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라고 생각한다.”(김무곤 교수 ‘종이책 읽기를 권함’ 중에서)

가정을 이루었고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나는 늘 자신의 쓸모에 대해 걱정했다. 하지만 2011년 겨울. 이 짧은 문장 하나가 내 인생을 극적으로 바꾼다. 어떠한 용도도 없는 가장 순수한 읽기라니! ‘별 의미도 목적도 없이 읽는 행위’ 위에는 시간이 나이테처럼 축적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지나면서 나는 진정한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쓴다. ‘김윤정,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 그 여덟 번째는 송원근 작가의 ‘그 이름을 부를 때’(도서출판 다람)다.

‘그 이름을 부를 때’ 표지


모처럼 저녁 약속이 생겼다. 아이를 키우는 주부가 아니라면 이해가 어려울 것이다. 우리에게 저녁 약속이란 신데렐라의 왕궁 무도회나 다름없다. 우아하게 앉아 있긴 하지만, 시간에 맞춰 미친 듯이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9시 뉴스 앵커였던 박혜진 다람출판사 대표와의 저녁 식사였다. TV에서만 보던 사람을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그 이름을 부를 때’는 그가 나를 위해 선물로 준비한 책이었다. 출판인들은 직접 만든 책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듯하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자기 소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름을 부를 때’는 뉴스타파 송원근 PD가 영화 ‘김복동’(영화 ‘김복동’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였던 김복동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다)을 만들 당시에 적어둔 기록을 모은 에세이다. 진짜 일기는 아니지만 날짜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썼으니 일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별생각 없이 책장을 열어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 없이 책을 펼친 것을 후회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숨이 턱턱 막혔기 때문이다.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는 자주 호흡을 가다듬어야만 했다.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 그러나 이번엔 책장을 덮을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진퇴양난이다.

“생각지도 못했다는 말, 몰랐다는 말, 그것은 아주 오랫동안 무관심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저자도 내 마음과 똑같았다. 차라리 김복동 할머니의 이야기를 자세히 몰랐더라면 속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이 참혹한 역사 앞에서 나는 내 무관심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가증스러웠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미안함과 분노가 뒤죽박죽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침 학교에서 돌아온 중학생 딸아이가 요거트 스무디를 사 달라고 졸랐다. 그 핑계로 나는 겨우 책을 덮었다. 스무디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몸이 뒤집힌 채 죽은 매미를 보았다. 매미의 모습에 김복동 할머니가 겹쳐졌다. 지금의 내 딸과 같은 나이, 열다섯 김복동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책을 열어볼 용기를 내야만 했다.

단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김복동 할머니의 이름을 아는 것은 다른 일이다. 끌려간 여성들이 군수품으로 취급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열대여섯 살의 소녀들이 하루에 열다섯 명, 많게는 쉰 명의 일본군을 상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한 사람이 지닌 마지막 존엄성까지 무참하게 짓밟힌 삶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더 최악인 것은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코가 매워지고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2019년 1월에 김복동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많은 사람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진정한 애도란 떠난 사람을 기억하고 동시에 그가 못다 한 삶까지 살아내는 책임성을 의미한다고 했다. 애도는 단지 죽음을 슬퍼하는 것을 넘어서 그의 치열했던 삶을 더듬어 알아보고, 그들이 이루고 싶었던 꿈이 무엇인지, 왜 그런 꿈을 이루지 못했는지를 알아내려는 노력으로 시작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복동 할머니는 승리자일까? 아니면 끝내 원하던 것을 이루지 못한 패배자일까?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그토록 싸우며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설사 사죄받고 배상받았다고 한들 그 한이 풀어지고, 모든 것을 성취한 것이 되는 걸까? 생각해 보면 세상 그 누구도 자기 마음먹은 것을 다 이루고 살지는 못한다. 그녀가 ‘나라 때문이야’ ‘전쟁 때문이야’ ‘가난 때문이야’라며 남의 탓만 하고 주저앉았다면 그녀는 패자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인생의 단 한순간도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았고, 실제로 죽는 날까지 인권운동가로 투쟁했다. 이러한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승리가 아닐까? 어떤 인생이 이보다 더 큰 가치와 의미를 담을 수 있을까. 김복동 할머니의 이런 불굴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야말로 그녀에 대한 진정한 애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 공원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코바늘로 얇은 목도리를 떴다. 한 땀 한 땀 뜨개질하는 동안 당신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 역시 지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겨울이 오면 내가 만든 목도리를 소녀상의 목에 둘러 줄 것이다. 계절이 바뀌길 기다린다.

김윤정(서평 칼럼니스트)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